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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Oct 27. 2022

환자의 영혼은 모든 걸 보고 듣고 있는 걸까?-2

sedation 환자(진정제를 이용하여 재운 환자),박영자-중

sedation 환자(진정제를 이용하여 재운 환자),박영자-상


"박영자 환자분 보호자들이 환자가 빨리 죽었으면 한대서 오더 좀 바꿀게요."

주치의는 DNR(*) 동의서를 건네며 이야기하였다.

*DNR: Do Not Resusciate,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응급상황 시 심폐소생이 소생에 큰 의미가 없는 경우(중증, 고령 등) 보호자에게 사전 의사 DNR동의서를 받을 수 있다. DNR 동의서에는 기관 내 삽관, 가슴압박, 지속적 혈액투석, 승압제 사용, 중환자실 치료 항목별 동의할 수 있다. 최근에는 DNR동의서와 별개로  '연명의료 중단 동의서(치료 자체를 멈추겠다는 동의서)'도 존재한다.


"네? 보호자들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 보호자가 치료비가 부담스럽다고 빨리 보내드리고 싶으시대요. 너무 적극적인 치료는 원치 않는 다고 그러네요."

"... 아,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깜짝 놀랐네."

"그래서 약물도 다 싼 약물로 쓰고 싶다 하셔서, sedative 종류 다시 낼 게요. 지금 들어가는 sedative들 얼마나 남았죠?"

"님벡스주(*)는 2시간 후면 connect(*연결) 해야 할 것 같아요. 나머지는 내일 아침까지는 들어가고요."

"음, 그러면 님벡스는 끝나면 미다졸람류로 변경하죠."

"네. 오더 주세요."

*님벡스주: Nimbex, sedative 중 '근이완제'에 해당되는 주사 약물. 근이완제는 이렇게 인공호흡기를 하는 환자의 경우, 다른 sedative를 사용함에도 자발 호흡이 남아있는 경우 억제시키는 역할을 하는 약물이었다. 다른 근이완제로는 베카론, 에스메론 등이 존재했다.



어찌 되었든 보호자의 비용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님벡스주 대신 미다졸람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미다졸람은 향정신성 약물로 환자를 재우는 용도로 쓰이는 약물이기 때문에 크게 보면 다른 종류의 약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sedative를 사용한 지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지라 충분히 미다졸람으로 바꿔서 환자의 자발 호흡을 억제시켜보는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나는 당시 '아, 님벡스주는 미다졸람보다 비싼 약이구나.'라 생각하였다.



의사는 당직실에 들어가자마자 미다졸람을 처방했다.

머지않아 2시간은 들어갈 줄 알았던 님벡스 주의 infusion pump(*) 알람이 울렸다. 수액이 거의 다 없음을 감지했다는 알람이었다. 님벡스의 남은 용량이 생각보다 적었던 건지 기계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얼마 남지 않은 건 사실이니, 미다졸람을 준비해 놔야 한다.

*infusion pump: 인퓨전 펌프, 의약품 자동주입기, sedative(진정제) 혹은 inotropic(승압제, 혈압을 올리는 )  시간당 정확한 양으로 환자에게 주입해야 할  사용한다.


미다졸람주는 항정신성 약물이기 때문에 약물을 약국에서 미리 받아올 수 없고 사용 직전 항정신성 처방전을 뽑아 약국에서 받아야 했다. 나는 이송 요원에게 처방전을 건네며 미다졸람주를 받아다 달라고 말했다.


.

.

미다졸람이 올라오자마자 믹스했다.

의사는 미다졸람으로 연결 시 시간당 몇으로 줄 지 정해서 알려준 상황이었으나 혹시 몰라 오더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갑자기 환자의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렸다.



환자의 혈압이 후두둑 떨어져 갔다. 너무나도 갑자기,


"가, 갑자기.."





나를 포함해 우리 중환자실에 있는 모든 간호사들이 무슨 일이지-.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모든 환자의 상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맞다만, 꽤나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던 환자의 vital sign(*바이탈 사인, 활력징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sedative!!” 스테이션에 계시던 차지 선생님이 내게 소리치셨다. 화내는 건 아니었고, 그냥 얼른 해라-! 의 의미였다.


나는 정신 차리듯 당장 환자에게 달려있던 모든 sedative의 infusion pump를 꺼버렸다. 그래, 임상경험이 부족한 덕에 응급상황 또한 많이 겪어본 턱이 없던 나는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판단이 서지 못했다. 그래, 그래.  sedative는 환자를 재우는 용이기 때문에  혈압을 떨어트리고 의식을 더 쳐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어-. 속으로 빠르게 복습했다.


0으로 수렴하던 환자의 수축기 혈압(*)이 그나마 70대 mmHg에 머무르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당직실로 뛰어가 주치의를 급하게 불렀다.

*혈압: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상 혈압은 120/80mmHg이다. 앞의 120은 ‘수축기 혈압’으로 심장이 수축할 때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고, 중환자실에서는 90-140~150mmHg까지는 특별한 처치 없이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즉, 정상으로 취급한다. (뒤의 80은 ‘이완기 혈압’은 심장이 이완할 때 혈관에 가해지는 압력이나 보통 수축기 혈압과 평균 혈압(Mean BP)을 더 유의 있게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주치의는 당직실 컴퓨터 앞에 거의 누워있듯이 앉아 처방창을 켜놓고 있었다.

"선생님, ICU(*Incentiva Care Unit, 중환자실)입니다. 박영자 님 A-line 상 BP(*)가 sudden drop 보여 현재 70/40mmHg, NIBP(*)는 66/32mmHg입니다. rate(심박수)는 120-150 대회/분으로 rapid 한 상태입니다."

"그.. 그래요? 아까 몇 분 전까지만 해도 vital stable(*안정) 하지 않았나요?"

주치의는 휘둥그레진 채 반응하며 바로 일어나 의사 가운을 입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당직실을 나왔다.

"네.. 면회 마치자마자.."

"보호자 불러주세요."

*A-line상 BP: A-line(동맥에 꽂아놓은 카테터)을 환자 모니터에 연결 시 혈압을 실시간으로 측정하여 보여주며 이 카테터를 이용하여 동맥혈 가스검사도 쉽게 가능하여 혈압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경우/동맥혈 가스검사를 주기적으로 나가야 하는 경우/기타 중증의 환자에게 많이 사용한다.

*NIBP: Non-invasive Blood Pressure, 비침습성 혈압, 우리가 흔히 측정할 수 있는 혈압으로 혈압계를 팔에 감싸 측정하는 혈압이다.



이미 스테이션 차지(*) 선생님께서 내가 당직실에 뛰어가자마자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상황이었다. 차지 선생님은 나를 보며 고개를 1-2차례 끄덕였다. 이미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두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속으로 면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보호자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아 금방 내원하겠구나를 알 수 있었다.


“보호자 10분 안에 오신다고 하네요.” 차지 선생님이 주치의를 향해 말했다.

“……” 주치의는 환자 모니터를 한번 쓰윽 봤다. 의사의 미간이 0.5초간 찌푸려지다 이내 풀어지고 눈빛이 멍한 듯, 차가웠다. “보호자 내원하시거나, 그전에 심박수 30 대회/분까지 떨어지면 저 불러주세요.”

주치의는 이상 별말 없이 당직실로 다시 들어갔다.



환자에게 더 이상 무언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서, 그나마 혈압이 조금이라도 오르라고 머리를 조금 내리고 다리는 올리고 있었다. 차마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편평하게 눕히지는 못했다.


“환자가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하려는 건 맞는 것 같은데.” B룸의 5년 선배 선생님께서 환자의 발치에 서있는 나와 차지 선생님께 다가와 이야기했다.

“꼭 그거 같지 않아요? 익스파이어전에 환자들 심장 쥐어짜는.”

차지 선생님은 옆에서 조용히 끄덕이며, “.. 그러게.. 우리 퇴근 전일 수도 있고..” 우리 듀티 안에 환자가 익스파이어 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못해둔 업무를 얼른 마무리하라고 하셨다.



심박수, 현재 환자의 심박수는 120-150 대회/분으로 매우 날뛰는 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했다. 흔히 성인의 정상 심박수는 60에서 100회/분. 심박수가 30대라는 건 그냥 심장이 서서히 멈춰가는 중인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익스파이어를 앞둔 환자들이 rate가 늘어지기 전(*)에 오히려 rate가 방방 뛴다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발악’이라고 이야기했다.

임상적으로 말하자면 환자의 vital sign,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즉 온몸에 혈액이 돌게 하기 위해 심박수를 높이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rate는 여기서 HR(심박수, heart rate)에서 rate로 줄여 말한다. 정상 심박수는 60-100회/분, 심박수가 60회/분 이하로 느려지는 것을 ‘rate가 늘어지다’라 흔히 표현한다.


.

.


오후 9시경, 환자의 모니터에서 알람이 울린 지 1시간 정도 되고 환자는 익스파이어 했다.



박영자 환자,

보호자가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 쓰이는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밝혔다는 그 이야기를 의사가 내게 건넨 지 정말 머지않아 익스파이어 했다.


마치 환자는 그 대화들을 모두 듣고 있던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갑작스러웠고 그 타이밍은 내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왜 의사는, 의사가. 환자가 ‘죽었으면’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그것 때문은 아닐까. 그를 끌고 좀 더 먼 곳으로 향할 걸 그랬어..’ 라며 곱씹었다.



인간의 오감 중 청력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고 한다. 해서, 의식이 없는 환자라도 앞에선 말조심을 하는 말이 진실이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던 하루.



익스파이어 환자는 시끄럽지 않게 떠났지만, 의료진으로서의 감정은 역시나.

끔찍했다.






* 해당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쓰였습니다.

sedation 환자(진정제를 이용하여 재운 환자),박영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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