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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Nov 23. 2022

내 환자가 사망했지만, 칭찬받았다면.

뿌듯해도 되는 걸까? (feat. 사망 시 간호사의 업무),박영자-하




그렇게 박영자 환자가 조용히 익스파이어(*expire, 사망)했다.


'... 보호자들이.. 환자가 빨리 죽었으면...'

의사가 내뱉은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환자가 들었을 게 뻔해.. 환자가 듣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익스파이어를 하겠어..'

환자는 그렇게 마지막 가는 길마저 환영받지 못하고, 보호자들의 그리움을 느끼지도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찌 되었든 간에, 찝찝한 이 정신을 붙잡아야 했다.


환자가 익스파이어하고 우리 간호사들은 '사망 간호'를 해야 했다. 사망 간호는 퇴원하는 환자들과 비슷하게 전산을 마무리 짓는 것부터 환자를 깔끔하게 한 후 보호자가 원하는 장례식까지 이동시키는 것들이 포함되었다.


사망 처치, 환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관(*카테터, 도뇨관 및 각종 주사관, 기도관 등)을 제거하고 지혈이 되었는지까지 확인한 후에 환자를 말끔하게 닦아 시트에 싸야 한다. 보호자에게 환자가 남긴 마지막 짐들을 전달해야 한다.


전산상 환자에게 끊어져 있는 처치 행위 및 재료대 중 사용하지 않은 것들, 투약하지 않은 약들을 정리해야 보호자가 오버로 요금을 물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행해진 행위 처치대, 재료대, 사용한 약물들이 올바르게 끊어져 있는지, '사망 간호'에 대한 처치 행위대, 사망 처치 시 사용했던 드레싱 등의 재료대를 끊어 주어야 한다. 만일 약물이나 재료대 중 사용하였는데도 끊지 않았을 경우, 환자가 이 병원을 떠나면 추가로 오더를 넣을 수가 없어 우리 부서로 약품과 물품이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곤란해지니까-.

그리고 보호자에게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확인 후 발급해주고, 사용할 장례식장을 확인 및 환자 이송방법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


이것들이 모두 확인되면 심사 및 수납처리를 최종적으로 확인한 후에 시트에 싼 환자를 영안실까지 보내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환자가 이 사망, 전원, 집으로 등의 루트로 퇴원을 한다고 해서 결코 간단하게 이 병원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일단, 환자 사망 처치를 해야 해..'

정신을 붙들고 주섬주섬 꺼내 든 노트를 차근차근히 읽어내 린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관들을 모두 제거하고.. 닦아야겠다.'

중요 관들을 빼기 위해 인턴을 불렀다. 아무래도 살아있는 환자들의 관을 제거하려면 의사가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유는 출혈이나 이후 색전증 등의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망한 환자들의 관을 제거하는 일은 간호사가 해도 되지만 사망한 환자에게서의 지혈이 은근히 안 되는 경우도 많아 간호사가 시간을 과하게 소비하는 경우도 잇따르는 데다가 지혈이 너무 안되면 suture, 즉, 정맥에 들어가 있는 관의 크기가 클 경우 꿰매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어 인턴을 불렀다.



"인턴 선생님, 중환자실익스파이어하신 환자분이 계셔서 처치하러 와주셔야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네, 갈게요.' 라 대답하는 음성이 들렸다.


.

.

전화를 끊고 전산에 앉아 사망 간호에 대한 전산을 정리하려 했다. 그때 함께 일하고 있던 선배 간호사 두 선생님이 환자를 닦는 용으로 나온 티슈 제품을 들고 익스파이어한 환자의 자리로 향해 커튼을 열고 들어갔다.



'어, 나는 환자의 관들을 모두 뺀 다음에 하려고 했는데-...'

관을 빼면서 이런저런 체액(*침, 가래, 혈액 등 모든 액)이 나오면 다시 환자의 몸이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선생님들이 계시는 환자의 자리로 향했다.



"지금 할까요?" 나는 커튼을 젖히고 환자 곁으로 향하면서 AP gown(*)을 입기 시작했다.

*AP gown: 비닐로 된 1회용 가운, 환자 간 감염 예방을 위해 착용한다. 접촉주의 환자에게 접근 시 주로 입으나 예방적으로 입기도 함.


"넌 그냥 가서 전산 잡아."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내 환자에게 처리를 취해주려고 하시는 선배 2명을 두고 전산 앞으로 향하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인지, '아닙니다. 같이 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욕을 덜 먹을 상황인 것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가서 전산 잡으라니까? 사망 간호 배웠지?"

".. 네. 배웠습니다."

"여긴 우리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가서 전산 잡아."

"네!"

일단, 힘차게 대답해본다.

이전에 사망한 환자가 있었어도 당시 프리셉터(*멘토, 사수) 선생님이랑 스케줄이 겹치지 않아 스테이션 차지(*듀티마다 총괄자 역할을 하는 간호사) 선생님이 1:1로 옆에 앉아 가르쳐 준 적뿐이었다.

즉, 사망 간호 전산을 혼자, 스스로 잡아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래-.. 자신이 없다.



손에 들려있는 내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일단.. 아는 대로 하고 그때 혼나자. 전산을 잡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환자 처치를 다 했는지 AP gown을 벗은 채 커튼 틈 사이로 나왔다.


"다 했어?" 환자 가까이에 있는 전산 앞에 앉아 사망 간호 전산을 잡고 있던 내게 차지 선생님께서 말을 걸었다.

"지금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차지 선생님은 내 대답을 듣더니 대답 없이 스테이션으로 향해 가 앉았다.

"확인 끝나면 와서 말해." 네-. 짧게 대답했다.


.

.

"선생님, 전산 마무리 지었습니다." 마지막 확인은 금방 끝났다. 차지 선생님은 나를 짧게 쳐다보고 "확인할 테니 가서 일해."라고 하셨다.



"전산 처리 끝나면 뭐해야 되지?" 차지 선생님은 확인을 마친 듯, 내게 물었다.

"[퇴원 확인] 눌러야 합니다."전산상 환자 이름을 눌러 [퇴원 확인] 버튼을 누르는 것, 이건 사실 모든 전산 확인이 완벽히 끝나서 심사팀에 내 환자가 퇴원을 할 예정이니 수납하기 위한 심사를 거쳐달라는 표시를 하는 것이다.

"또 확인할 것들은 다 했어?"

".. 사망 진단서는 10부 출력해서 보호자분 드렸고, 장례식장은 저희 병원 장례식장 사용하신다 하셔서 원내 장례식에 자리되는지 확인해놓은 상태입니다."

".. 그래, 그럼 [퇴원 확인] 버튼 눌러."


네-. 짧게 대답 후 후다닥 내 전산으로 다시 향했다.


.

.

일정 시간이 흘렀다. 전산의 환자 이름에 떠있는 표시가 순차적으로 바뀌었다.


"선생님, 전산 다 넘어가서.. 이제 보호자분께 수납하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지금 환자 이름에 떠있는 표시가 뭔데?"

"이름 앞에 끝났다는 표시로 색깔이 바뀌었습니다."

"그래, 보호자분께 가서 수납하라고 말씀드려."

"네."


중환자실 문밖으로 나가 보호자에게 향했다. 보호자에게 수납을 해주셔야 환자에 대한 전산 처리가 모두 끝나고 영안실로 갈 수 있음을 재차 설명했다. 보호자 다수 중 한 명이 대표로 원무팀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확인했다.


.

.

"선생님, 이름 빠졌습니다."

"응. 이미 봤어. 장례식장 내가 전화해놨으니까 네가 안 해도 돼." 차지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 않은 채로 무심한 듯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망 간호 몇 번 해봤어?" 갑자기 스테이션 차지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뀐 것만 같다.




"몇 주전 배우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의 눈빛이 왠지 또랑또랑해진 것만 같아서, 순간 당황했다.



선생님은 왜인지 흐뭇하게 나를 슬쩍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잘했어." 칭찬에 인색하던 차지 선생님은 나지막하게 내게 말을 건넸다.


"가, 감사합니다.."






왜인지, 내 환자가 사망했는데. 마음이 너무나도 찝찝했던 상황이었는데-

며칠 전에는 내 환자가 상태가 좋아져서 일반 병동으로 이실했지만 난 전동 간호를 시행하다 실수를 해서 혼났는데-.



내 환자가 사망했지만, 칭찬받았다.


기분이 너무나도 이상했다.








* 해당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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