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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Dec 07. 2022

가망 없는 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뇌출혈 사고 발생 후 너무 늦게 발견된 환자, 조철식-상




주말, 데이 근무.


항상 데이 근무는 피곤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병원 어플을 열어 내가 일하는 부서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읽어본다. 이는 내가 내 환자를 잘 파악해서 케어하기 위함은 물론, 사실 신규이기에 인계가 자신 없어서, 즉, 다음 듀티(이브닝)로 들어오는 선생님에게 내 환자를 좀 더 잘 파악한 상태로 넘기기 위함이다.

아무리 내 듀티 동안 일을 잘했어도 인계가 형편없으면 '환자 파악도 안 한 채로 해야 하는 일만 기계처럼 한, ' 결국 하루 동안 일을 못해낸 사람으로 치부되니까.



데이는 아침 7시부터 근무가 시작되지만, 신규니까 가서 이것저것 체크해보려면 적어도 30분은 일찍 가야 했다. 즉, 6시 반 도착을 목표로 하려면 우리 집 앞에 있는 버스가 돌아가는 루트를 밟는 바람에 5시 45분쯤에는 출발해야 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데이면 인계를 준비해야 하니까,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인계 준비를 하고 2시간 동안 환자 파악에 허덕이다 간신히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몇 달 전 병원에 노조가 없을 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30분 일찍이 아닌 한 시간은 일찍 갔어야 해서 첫 차를 타고 출근했다. 한 겨울의 첫 차는 난방이 틀어진 지 몇 분 되지 않아 버스 안은 영하의 공기를 그대로 맛보는 환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데이는 피곤했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나마 독립하고 조금씩 업무를 손에 익힌 상태였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기상시간과 생활 루틴.


비몽사몽 한 채로 어플을 켰다.

"......"

내가 보게 될 환자는 3명에서 4명으로 보였다. 베드가 두 베드정도 비워져 있어서, 3명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A룸하고 E룸.. 그리고 앞 듀티(전날자 나이트 근무)에서 막내 그레이드(*grade, 지위, 연차를 칭할 때 자주 사용)가 본 환자들이 누구인지까지 파악하고 환자를 원격으로 exam했다.



환자 중 40대 남성이 보였다. 100%의 확률로 내가 보게 될 환자였다.



조철식, 44세/M(male)

공사장 근무자로 3일 전 근무 중 위에서 떨어진 철근에 머리를 맞은 채로 발견됨. 발견 당시 의식 없었으며 이미 수 분 지난 것으로 예상되었다고 함. ER 도착 시 양쪽 pupil 7mmF, Coma.




양쪽 pupil 7mmF(*), 이미 뇌손상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응급실에서 뇌 CT를 응급으로 촬영하였고, 외상성 경막하 출혈(*t-SDH, Traumatic Subdural hemorrhage)진단받았다. 그리고 그의 뇌와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사이 출혈량이 상당하게 고여있다는 판독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양쪽 동공이 7mm까지 열리고, fix되었다는 것. 정상은 약 3mm정도로 불빛을 비추면 동공이 바로 작아져야 하지만, 7mm까지 동공이 열린 상태에서 빛에 반응이 없다면 뇌 손상이 이미 많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함.


뇌출혈이 되면 출혈된 피가 뇌의 조직(brain tissue)이 위치해야 할 자리를 차지하면서 뇌가 제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소량일 때 즉시 수술을 받아야 그나마, 그나마 빠르게 환자의 의식이나 움직임 등 여러 뇌 기능의 손상을 덜어줄 수 있다.

해서, 뇌수술 시 고인 피를 빼주는 카테터(*catheter, 관)를 꽂아 배액 시키는 수술이 흔한 편이다.

그리고 아무리 출혈량이 소량이어서 출혈 교정을 빨리 했다 하더라도 환자의 컨디션에 따라 깨어나는 시점이 모두 달라, 그 전까진 그저 '오매불망'.



하지만 이 환자는,

이미 뇌출혈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시간이 많이 흘러, 뇌 안쪽의 출혈 정도는 심해져만 갔고, 결국 피를 빼내지 못해 뇌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수두증(*)까지 와서 뇌가 많이 부어있다고 하여 수술을 해도, coma(*무의식 상태)에 사망 가능성이 너무나도 현저했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뿐더러 눈을 뜨는 것은 기적이 아닌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수두증: hydrocephalus, 뇌척수액의 순환 통로가 막혀 뇌척수액이  뇌에 쌓여 뇌압 상승을 일으킨다. 뇌출혈 환자 역시 뇌에 고인 피가 순환 경로를 막아 수두증이 오기 쉽다.




응급실에서 어떤 치료들을 받고 수술 후 중환자실에 오게 된 것인지 차팅을 차근히 읽어 보았다.

보호자는 40대의 아내였고, 어린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듯했다. 응급실에서 아내에게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며 소생의 가망이 희박하며 수술 후에도 의식이 깨어날 확률이 극히 드물다 설명하였으나 아내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결코 agree(*동의)되지 않았다.


해서, 억지 아닌 억지로 수술대에 오르게 된 환자였다.



그리고 내가 출근하면 그 환자를 봐야 한다.





병원, 중환자실



주말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병원이 고요하다.


주말에는 보통 입퇴원이 적은 편인데, 이는 환자가 아프면 대부분의 외래가 닫혀있어 무조건 외래가 아닌 대부분이 응급실을 통해 입원이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병동이 평일'보다는' 고요한 편이다.


물론, 중환자실로 입원해 오는 환자들은 상태가 이미 안 좋은 상태에서 응급실을 방문해 초기 진단부터 집중 치료가 요하다 판단되거나, 일반 병동에서 상태가 악화되어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외래를 통해 중환자실로 오는 환자들은 흔하지 않았다.


외래 환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중환자실 케이스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환자실이 주말에 고요한 이유는 아무래도 교수진들, 레지던트 등 주치의 숫자가 적고 당직의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담당이 아닌 환자가 아니면 사실 현재 입원해 있는 환자들 중 몇의 정보를 100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의사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째뜬, 그러한 이유로 당직의가 많은 주말엔 환자에 대한 오더를 새롭게 내려지거나 뭔가 치료 방향을 바꾸는 일이 드물다. 그러한 이유로 주말이 조금 더 한가하다.



조용한 중환자실, 스치듯 눈에 들어온 작은 창문 밖의 하늘이 유난히 맑게 느껴진다.


환자 assess(*)를 시작했다.

*assess, assessment: 사정. 보통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자신의 환자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극을 통해 상태를 확인한다. (비슷한 의미로 환자를 review, exam한다고도 표현하는데 유의하게 조금씩 다르나 임상 간호사들에게 많은 차이가 있지는 않은 표현 방식들이라 생각함: 글쓴이)



.

.

내가 보게 될 환자 4명, 스테이션과 가장 가까운 1번 베드에는 응급실에서 뇌출혈을 진단받고 응급 수술을 받고 온, 조철식 환자가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는 신경외과 수술을 받고 머리에 EB(*elastic bandage,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뒤쪽, 수술부위가 있는 곳의 붕대가 피를 포함한 체액들로 흠뻑 젖어있었다. 붕대뿐만 아니라 베개피까지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 혹시 1번 베드 OP site(*) oozing(*)되는 건 주치의는 아는 건가요?"

환자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전산에 자리 잡은 앞 듀티, 전 날 나이트 번 동기에게 말을 물었다.

*OP site: Operation site, 수술 부위를 의미함.

*oozing: 삼출, 진물이나 삼출물이 새어 나올 때 쓰는 말.


"... 네.. 수술 후로 계속 oozing 되고 있어요. 드레싱만 하루에 세 번 이상 change하고 suture(*)도 다시 했는데.. 나이트 직전에 신경외과 팀이 왔었는데 고개 저으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아마 신경외과에서 보러 올 것 같아요. 이따 추가 인계드릴게요."

*suture: 봉합, 찢어진 부분이나 갈라진 부분, 수술 부위 등을 꿰매는 것.




환자의 양안 위에는 saline(*)을 적신 부드러운 거즈가 올라가 있었다. 동공반사를 확인하기 위해 거즈를 잠시 치웠다. chemosis(*)이 생겨 양안이 잔뜩 부어 튀어나와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눈 건조를 위해 올려둔 거즈였다.

*saline: 생리식염수, 체액과 같은 농도로 만들어진 식염수.

*chemosis: 결막이 부은 것, 주로 삼출성 부종으로 인함.

*chemosis. 출처: Archieve of Facial plastic surgery -free article 중 발췌


펜라이트를 들고 양 눈의 동공반사를 살폈다.

기록대로, 양쪽 모두 7mmF이다. 움직임은 없었다.



"...."

새 거즈를 가져와 saline으로 적셔 다시 환자 눈 위에 살포시 얹었다.


.

.


2번 베드 환자를 assess기 시작하는데 중환자실 입구 문이 열렸다. 신경외과 팀이었다. 레지던트 2,3년 차 두 명이 들어왔다. 나는 2번 베드 환자 assess하던 것을 멈추고 1번 베드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지, 치료 방향 등이 어떤지, 수술 부위는 계속 그냥 지켜보는 것인지 궁금해 1번 베드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별일 없었나요?" 3년차 레지던트가 내게 물었다.

나이트번 담당 간호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바이탈(*) 자체는 문제없었는데, OP site oozing이 너무 심한 상태입니다."

"... 어차피 여긴 사망하실 거라.. 이따가 드레싱만 한 번 더 할게요."

3년 차 레지던트는 환자의 가망이 없다는 말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이야기했다. 그 작은 희망조차 없다는 데에 꽤나 확신하나 보다. 다른 환자들의 라운딩을 끝내고 조철식 환자에게 다시 돌아와 드레싱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드레싱을 챙기러 오겠다 이야기하며 다른 환자에게로 발걸음을 뗐다.

*바이탈: Vital Sign, V/S. 환자의 활력 징후로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기본적인 지표가 된다. 혈압, 호흡, 체온, 분당 심박수, 산소포화도가 이게 속함.


3년 차 레지던트가 B룸으로 옮겨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다른 환자들의 review를 마저 했다.

.

.


"조철식, 44세 남성분 인계드릴게요. 환자분은..."

인계가 시작되었다. 동기는 그녀에 대해 기본사항부터 읊었다.

"OP 끝나고 나와서부터도 지금 OP site에서 oozing이 심한 상태입니다. 어제 나이트 시작할 때 마지막으로 당직 NS(*)가 와서 dressing 챙겼는데 suture site로 tissue가 다량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출혈 정도는 심하고 뇌가 많이 부어서.. 가망이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보호자가 insight(*)가 없어서,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DNR(*)은 계속 refuse(*, 거부) 상태입니다."

*NS: Neurosurgery, 신경외과

*insight: 인식, (임상에서는 환자/보호자가 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계속된 설명에도 이해를 잘하지 못해 협조가 안되거나, 의미 없는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에 흔하게 사용함.: 글쓴이)

*DNR: Do Not Resuscitate, DNR 동의하는 것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



동기는 다시 생각해도 믿기 힘든 광경이라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이야기했다. brain tissue(뇌 조직)가 수술부위에서 밀려 나오는 모습이 핑크색의 잘게 썰린 소시지 같았다 하였다. 뇌가 너무 부어있을 때 어쩌면 있을 법도 한 일이었지만 나와 동기는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지라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기에, 상상하자니 너무 끔찍했다. 동기는 손을 바들바들 떨며 드레싱 어시스트를 섰다고 한다.


여러모로, 안타깝고도 난감한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

.

.

조철식 환자의 인계가 끝나갈 무렵쯤, 신경외과 팀의 라운딩이 끝났는지 다시 이곳으로 왔다.


'제길, 아직 인계 한 명밖에 못했는데-.'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이렇게 닥터들의 라운딩 시간과 간호사의 인계 시간이 겹칠 때는 결국 업무 및 퇴근이 딜레이 되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간 7시 18분, 그래. 드레싱 어시스트 서고 나면.. 너무 늦지 않게는 나이트 번 선생님들이 퇴근하실 수 있을 것도 같다.



"여기, 드레싱 어시스트 좀 서주세요."

나는 수술부위를 확인해야 하니까, 담당 간호사로서 그 정도의 관심은 기본이니까. 동기에게 '내가 갈게, 아까 전산 마무리 안 된 것들 얼른 하고 있어.' 라며 친근하게 귓속말했다.

우리는 동기라서, '나라 사랑, 동기 사랑'이라기에 서로 의지해야 했으니까-. 얼른 친해지고 싶었다. 해서, 사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꾸역꾸역 시간을 맞춰 술자리를 한 번 가졌었다. 그리고 사석에서는 말을 놓는 사이이지만, 일할 때는 비즈니스의 끈을 놓는 순간 업무의 텐션이 떨어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존댓말로 대했다.

이렇게 귓속말할 때 말고-.



어찌 되었든 3년 차 레지던트가 환자의 머리에 둘러져 있는 EB를 풀었다. 나는 환자의 머리를 살짝 돌려 OP site가 레지던트에게 잘 보일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 아.." 그의 OP site가 보였다.


동기가 말한 그대로였다. 수술부위를 꽤나 탄력 있게 꿰매었으나 의미가 없었다. 너무나도 많은 양의 brain tissue가 삐져나와 EB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몸에 닭살이 돋는 것만 같았다.



"흠.. 진짜 드레싱이 의미가 없네.." 레지던트는 읊조리듯 내뱉었다.

나는 환자의 머리를 조심스레 들고 있었다. OP site에서 계속해서 tissue와 피가 섞인 체액이 삐져나왔다.



그때 차지 선생님이 우리 곁으로 다가와 레지던트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이 환자.. 치료 방향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하) 편에서 계속. -



* 해당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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