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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Jan 11. 2023

그 어떤 순간에도, 우선순위를 잊지 말아야 하는 우리.

'뇌출혈 사고로 사망한 환자가 있더라도', 조철식-에필로그



오전 8시 18분,

CPR 40분째, 조철식 환자는 결국 소생되지 못하고 사망했다.



인턴 선생님들의 사망처치가 끝나고 이제 보호자가 환자를 병원에서 보게 될 마지막 모습을 가장 깨끗하게 해 주기 위해 환자의 몸을 닦아야 하는데,

환자의 수술 부위였던 머리, 그것을 감싸고 있던 붕대는 환자의 수술 부위로 새어 나오던 뇌 조직들과 혈액들로 더러워져 있었다.


차지 선생님은 환자의 몸을 닦으며 수술 부위까지 깔끔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기로 했고,

차지 선생님은 사망 처치에 더 필요한 것은 없을지 살피고 있었다.


나는 멀뚱히, 아니 멍청하게, 비효율적으로 차지 선생님의 옆에 서서 함께 환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

"너, 근데 정규 약은 다 돌렸어?"

".. 아, 아직 못했습니다."

"야, 뭐가 우선순위야. 여긴 어차피 당직의가 오더 정리도 못한 거 아냐?"

"... 네. 맞습니다."

"하.. 사망환자 정리도 중요하고. 정신 팔린 거 아는데 어차피 지금 우리가 정리해 준다고 못 빼내 주는데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까지 내던지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항생제 들어가는 시간 중요한 거 알아 몰라? 식후 당뇨약 들어가는 환자는 밥 먹고 늦지 않게 줘야지 저혈당 안 올 거 아냐?"


나는 간결하게 죄송하다, 얼른 하겠다 대답하였으나 차지선생님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다, 더 지체되면 나가서 일 안 하고 뭐 하냐- 욕을 들을 것 같아 후다닥 커튼사이 틈으로 보이는 A룸 널싱카트로 향했다.


‘이따 꼭 B룸 선생님께 감사하다 인사드려야겠다..’ 나는 A룸 카트 위 녹여져 가는 항생제 바이알들을 보며 다짐했다.

그리고 정각으로부터 20분이나 지났지만,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환자에게 향했다.





“환자분,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요?” 내 두 손은 정신없이 뛰느라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면서, 발걸음은 두 번째 환자에게 향했으며, 두 눈은 환자의 모니터를 향했고, 내 입은 환자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 두 번째 bed에 있던 환자는 80대 남성, 이기항 환자였다.

이기항 환자는 심부전으로 입원해 온몸에 부종이 생겼고 숨 쉬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환자는 그래도 의식이 또렷했다. 환자는 쌔-액, 쌔-액 거리는 숨소리로 나의 말에 대답했다.

“.. 그냥, 숨이 좀 가빠. 말고는 괜찮아-.” 환자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pale(*창백한)했다.



이기항 환자처럼 중환자실에 간혹 가다 있는 의사소통이 또렷한 환자들이 환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입원해 있는 곳이 중환자실이라는 것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CPR이 터진 이런 살벌한 상황은 '아, 맞다. 나,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구나. 사망 가능성이 다분했기에 여기 입원시켰을 텐데..'라는 사실을 맞닥뜨리게 한다.

해서 어떤 환자들은 그 두려움에 평소보다 더 예민해지기도 하고,

어떤 환자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의료진들을 보니 나 하나쯤은 아주 말짱한 환자여서- 의료진이 저런 중환자에게 시간을 쓰는 게 마땅하단 생각이 들어서 그 무엇을 요구하기가 미안스러워 평소보다 의료진을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막상 그때에 의료진을 부르면 요구사항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건 어찌 보면 인력 문제 같다고- 3초간 짧게 마음속으로 투덜대다 머릿속에서 '이럴 때가 아니다. 일해.' 라며 행동을 다잡는다.



환자는 현재 마스크로 8L/min 가량의 산소를 마시고 있었다. 모니터상 환자의 SpO2(*산소포화도, 95% 이상 정상)는 93-95%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으며 RR(*respiratory rate, 호흡수)은 18-26회/분을 왔다 갔다 거리고 있었다.


“음, 산소포화도가 93에서 95%로 왔다 갔다 하시고, 호흡수는 빠르신 편이네요. 조금 힘드시겠지만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어볼까요?"

나는 환자의 소변량을 체크하고 이야기했다.

환자는 나를 슬쩍슬쩍 보며 깊게 들이쉬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후-’하고 내쉬었다.


모니터상에 호흡수가 조금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며 그의 팔에 혈압 측정 커프를 감았다.

“네-. 그런 식으로 계속 숨 쉬시면 가쁜 게 조금 나아지실 것 같아요. 이따 나아졌는지 다시 확인해 보도록 할게요. 혈압이랑 체온 재겠습니다."

나는 왼쪽 손으로 모니터의 혈압 재는 버튼을 누르고, 오른쪽 손으로 그의 오른쪽 귀에 체온계를 꽂으며 이야기했다.


‘.. 그래-. 아직까진 괜찮아.'


.

.


보통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에게 혈압 측정 커프를 계속 감아 놓고, 일정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풀며 측정되는 팔을 바꿔가며 통풍이 되게 하는 편이다.

해서, 3,4번 베드에 있는 두 명의 환자들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재우고 있어 혈압 커프 기를 상시로 적용하고 있었고, 혈압도 1시간마다 자동으로 측정되게 모니터 세팅을 해놓은 상태였으나,


이기항 환자는 순환기내과, 그리고 명료한 정신상태.



대다수의 내과 환자들, 특히나 심장 쪽이나 신장 쪽에 문제가 있는 내과환자들은 특히나 예민한 편이다.

내과 환자들은 외과 환자들에 비해 장기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 입원 경험이 많은 편이라서 병원 시스템에 대해 잘 안다. 게다가 신장질환이 있는 환자들 중 투석을 받는 환자들 투석을 받기 위해 일주일에 2-3번씩 병원에 오기 때문에 더더욱 예민한 편이다.


그래서 순환기내과(심장내과) 환자들이나 신장내과 환자들에겐 특히나 조심하여 행동하기 마련이다. 간호사가 빨리 일하여 환자에게 더 빠른 처치를 제공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한 번의 처치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모든 게 완벽하게 비추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모든 걸 명료한 정신으로 지켜볼 수 있는 내과 환자들은, 예민하여 “혈압을 다 쟀는데 이거 왜 안 풀러 줘-!”라며 윽박을 지르곤 한다.

해서, 나머지 환자들은 8시 혈압이 자동으로 측정되고 CPR와중에도 모니터에 보이는 숫자들이 정상범위에 속하는지 정도만 빠르게 확인하였으나, 이 환자만 혈압측정이 20분이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

.


나는 널싱카트를 끌고 다니며 환자들에게 8시에 주어야 할 약들을 투약했다.


이기항 환자에게 심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약, 하지만 혈압과 맥박수를 떨어트리는 약이 8시에 주기로 되어 있어 약을 주기 전 그의 혈압과 맥박을 꼭 체크해 봐야 했다.


“이기항 환자분, 여기 아침 약 드릴게요. 이 약은.." 나는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에 중첩되는 초조함을 안고 환자에게 약을 설명했다.

“혈압을 떨어트리기 때문에 어지럽거나 핑 도는 것 같다 하시면 꼭 말씀하세요.”



다른 환자들에게 향했다. 이들도 먹는 약이 있어서, 흡인성 폐렴이 오지 않도록 가래를 뽑은 후 비위관을 통해 약을 투약했다.


시간은 8시 45분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금쯤 9시 바이탈을 해야 하지만..

‘사망 간호 처치 재료대도 넣어야 하고.. 8시 것도 정리해야 해.’ 생각을 정리하며 가지고 있던 종이에 색깔펜으로 흘려 적었다.


일단 8시 바이탈을 먼저 정리했다. 간혹 가다 주치의나 당직의가 전화해 ‘왜 아직도 바이탈 정리가 안된 거죠? 확인을 못하고 있어요.’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활력징후를 빠르게 저장했다.

독립 전에 ’ 전산 입력할 때 꼭 두 손 다 써. 한 손으로만 하려고 하지 말고. 업무 로딩이야.’ 라며 내 오른손을 계속해서 엔터 위로 올려다 놓으셨던 선배선생님의 가르침덕에,

이제 전산은 좀 빨라진 것 같다.


‘그다음으로.. 조철식 환자부터 정리해야겠다..’


매일 아침마다 하루동안 환자에게 행해질 처치 행위 재료대를 끊어야 하는데, 아직 못했다. 조철식 환자의 사망 처리를 빠르게 하기 위해 이 환자를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인공호흡기를.. 8시간 전으로 끊어야겠지..?’ 인공호흡기 행위재료대가 있었는데, 환자의 CPR시작시간은 7시 38분.

행위 재료대가 시간별로 나누어져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 심전도 침상 감시(1일당) : 1
- 경피적 혈액 산소포화도 측정(1일당) : 1
- 24시간 혈압 측정 검사(1일당) : 1
- 당검사 : 1
- infusion pump : 3
- Artificial Ventilation 4시간 이상 8시간 이하 : 1
.
.
- Regulator : 3
.



내가 한 것들, 나이트 번에서 했을 것들, 그리고 CPR때 했던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Artificial Ventilation 은 인공호흡기 환자에게 끊어주는 것인데, 4시간 이하, 4-8시간, 8-12시간, 12시간 이상 이렇게 나뉘어 있었다.

조철식 환자가 사망한 시간은 8시 18분이지만 7시 38분부터 인공호흡기를 분리하고 ambu를 짰으니, 4-8시간짜리로 끊었다.



‘분당 산소량….' 재료대는 또, 산소를 얼마나 마셨는가에 따라 또 바뀌는데 심사기준이 바뀌어서 상당히 복잡해졌다.



아침까지 환자는 인공호흡기 FiO2 100%였다.

심사하는 방법이 계속 바뀌었는데, 산소재료대 끊는 방법이 머리를 굴려야 했다.


가지고 있던 FiO2에서 20을 빼고 4로 나누어야 했다.

‘그럼.. 100-20 해서 4로 나누면 20L/min.. 에 7시간 38분 동안 마신 거니까.. 7 곱하기 60은 420에 38 더하면 458분..'

- 분당 산소량 20L/min : 458

나는 머리를 쥐어뜯는 느낌으로 분당 산소량 15짜리를 선택하였고, ‘횟수’ 칸에 458을 집어넣었다.


- 사망 처치 :1
- 시트(대) : 2
- Elastic bandage”6 : 2
- 헥시스왑: 2
- Cardiopulmonary Resusciation 30분 이상 : 1
- 분당 산소량 15L/min : 40
.
.


CPR 할 때, 사망 시에 썼던 재료대를 생각해 봤다. 7시 38분부터 8시 18분까지 40분의 CPR 치는 동안에는 O2를 최대(15L/min)로 하여 40분 동안 마신 것으로 계산했다. 


'ambu-bagging도 끊어야 되나..?'

CPR과 연관된 처치재료대를 확인하며 잠시 고민했다. 헐레벌떡 수첩을 펴 확인하니,

'ventilator(*인공호흡기) 환자의 CPR 경우 artifical ventilation 재료대에 ambu-bagging이 속해있으므로 따로 끊지 않음.'이라 메모한 것을 확인했다.



어느 정도 재료대를 끊은 것 같다.

‘이제, 장례식장이랑 퇴원 간호기록지 쓰고 오더 받을 것들 다 받고 사망진단서 뽑고, 수납확인 한 다음에 심사 넘기기..’

나는 입사 때부터 꾸준히 적어둔 수첩을 펼친 채 중얼거렸다.



"CPR 체크리스트는 했어?" 실시간으로 내 전산을 보고 계시던 차지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CPR 체크리스트..?' 수첩에 적어두지 않았던 내용 같은데- 뭐였더라.. 수첩을 빠른 속도로 넘겨보지만 사실 메모했던 기억은 없고 배웠던 기억마저 가물가물해서, 후다닥 차지 선생님께 달려가 그 화면을 확인했다.


아, 차지 선생님이 켜둔 CPR체크리스트, 이전에 배웠던 게 생각나는 것 같긴 하다.

"아.. 네. 지금 바로 하겠습니다..!"

대답은 없다.




다시 전산 앞으로 달려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전산의 메뉴를 더듬거리며 CPR 체크리스트를 켰다.

'CPR 시간.. 40분.. 전기충격기 사용.. 안 했고.. 할 게 많네..'

사실 속으로 욕지거리를 수십 번 한다.

어쨌든, 전산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다.



"다 했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쭈뼛대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차지 선생님께 말했다.

"자신 있어?"

"... 열심히 했습니다."

"대답이 늦다? 보고 알려 줄게. 보호자분한테 장례식장 어디 쓸 진 여쭤봤어?"





나머지 환자는 아직 정리도 못했지만..

그래, 일단 이 환자를 먼저 정리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어떻게 된 게 해도 해도 안 한 게 발견되는 걸까? 식은땀을 흘리며 헐레벌떡 조철식 환자의 보호자를 만나기 위해 중환자실 밖으로 나갔다.


.

.


보호자는 중환자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보호자분.. 담당 간호사입니다." 보호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장례식장은 어디로 가실지 정하셨을까요..?”


나는 보호자를 조심히 살피며 물었다. 이 순간이 가장 난감하고 어렵다,

“….” 보호자는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본원 장례식장으로 알아봐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나는 짧게 대답하고 보호자에게 휴지를 건넸다. 그리고 다시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와,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네. 장례식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중환자실에 조철식 사망환자분 장례식장 사용 원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한 자리 있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언제쯤 올라가면 될까요?”

“아직 당직의 선생님 오더가 안 나서.. 오더 정리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연락 주세요.”


나는 당직의에게 사망진단서 작성이 필요하며, CPR때 쓴 약이 무엇이 있는지 알리며 오더를 내달라 문자를 보냈다.


‘그래, 아직 58분..'

9시는 정각에 바이탈을 돌기로, 그땐 꼭 돌기로 다짐하며 퇴원간호기록지를 작성했다.







9시 바이탈을 돌고 돌아와 전산을 확인해 봤다. 추가 order 창은 깜빡거림 없이 고요한 걸 보니 당직의가 아직 오더를 주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의 바이탈 정리와 처치 행위 재료대를 끊고 정규 차팅을 넣기 시작했다.


“아직도 정리 안된 거야?" 차지 선생님이 물으셨다.

“당직의 선생님이 아직 오더를 안 주셔서…”

“달라고 하긴 한 거야?”

“문자 보냈는데, 확인만 하고 아직 안 내주셨습니다.”

“이따 20분까지도 안 주면 전화해 봐. 다른 환자들은 다 정리된 거야?"

“네-.”

“그럼 다 했다고 말을 해야지. 사망 환자 처치할 거 남지 않았어? “

“.. 아. 네! 죄송합니다.”

“환자한테 가 있어.” 선생님은 표정이 굳은 채로 이야기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 커튼으로 둘러싸져 있는 조철식 환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내가 혼자 닦을 수 있는 부분들을 닦기 시작했다.


이내 차지 선생님이 들어와, 함께 등, 목 뒤, 엉덩이를 닦고 머리를 드레싱 한 후 고무줄 시트 두 장으로 환자를 감쌌다.

“짐 싸서 보호자 갖다 드려.” 차지 선생님은 커튼 틈사이로 나가면서 시계를 흘긋 보더니, 15분이 채 안된 시간임을 확인하고 내게 말했다.

“네.”


나는 짐을 구분 짓기 시작했다. 아이스팩 주머니 등 체액으로 오염되어 쓰지 못할 만한 것들, 버릴만한 것들은 버리고 환자의 핸드폰과 귀중품은 이미 입원 시에 보호자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에 가지고 있던 옷이나 신발을 싸 비닐에 넣었다.

다른 비닐에는 남은 기저귀, 물티슈, 깔개매트 등 가져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을 넣었다.


마지막으로 전산에 메모해 둔 귀중품이 있는지, 빠트린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그때 추가 처방 창이 깜빡였다.

“약 쓴 거 맞는지 확인하고.. 사망진단서 썼네.” 차지 선생님도 추가 처방 창을 확인하신 듯, 이야기했다.

“네.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쓴 약을 제대로 냈는지 확인하고, 사망진단서 10장을 뽑은 후 심사과에 전산을 넘겼다.


.

.

“보호자분, 사망진단서 10장입니다.” 나는 밖에 있는 보호자에게 사망진단서를 건네며 말했다.

“.. 네. 감사합니다.”

“원본 1부랑 사본 9부니 필요하실 때 쓰시면 됩니다. 전산 정리 다 되었고, 장례식장 자리도 확보해 둔 상태여서 현재 심사과에 넘긴 상태입니다. 심사 마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이건 환자분 옷이랑 짐이고 이건 기저귀랑 물티슈 쓰다 남은 것들입니다.."

보호자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환자의 옷이 든 짐을 꽉 쥐었다.

“… 이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폐기해 드릴까요?” 보호자는 작게 끄덕였다.



.

.

주말이어서 심사 과정이 짧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에게 다시 가 수납을 해야 함을 알렸다.





수납을 완료한 건가- 싶어 전산을 확인해 보니 환자의 이름이 사라졌다. 퇴원처리 된 것이었다.


장례식장에 전화했다.

“네. 장례식장입니다.”

“선생님, 중환자실이고요. 환자분 수납완료돼서 이송부탁드립니다.”

“.. 한 2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

“보호자분, 수납 완료 확인되었고 20분 후에 장례식장으로 이송될 예정입니다."

“.. 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다시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저, 저기..”

“네, 보호자분.”

“.. 마, 마지막으로 얼굴 볼 수 있을까요..? 아까 의사 선생님께는 말씀드렸었는데.."

“.. 아,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헐레벌떡 중환자실 안으로 다시 들어와 차지 선생님께 자초지종 설명했다.

“이따 영안실 가면.. 아니다. 내가 설명드릴게. 너 할 거 해."

“네. 감사합니다."



차지 선생님은 중환자실 문 옆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보호자분, 이따 영안실 들르셔서 충분한 시간 드릴 예정이에요." 라 이야기했다.

“…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잠시 기다려주세요.” 차지선생님은 짧게 인사하고 들어오다 그곳을 뻔히 쳐다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할 거 하라니까?”

“아아, 네.."


.

.

10시 바이탈을 돌고 나니 장례식장의 S-car가 도착했다.

환자는 사망한 지 무려 2시간가량 지나, 이제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되새김질했다.

CPR을 치던, 사망 환자가 있던 틈틈이 짬을 내서 다른 환자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선순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정규 업무와 응급 상황 정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한다는 건 몇 백배로 정신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내 환자가 빠진다 하더라도,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배웠다.

영안실에서 보호자가 인사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을..





*해당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어 쓰인 글입니다.





<글쓴이>

간호사는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고 과정이 복잡합니다.

담당 환자들 중 한 명 한 명이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기까지 체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 와중에 다른 환자들도 놓칠 수 없죠.

게다가 병원 타 직종과 손 발이 맞지 않으면 여러 면에서 딜레이가 생기기도 마련이기도 합니다.


중환자실에서 정신이 명료한 환자들 대다수가 CPR 전후로 조금씩 캐릭터(성격)나 애티튜드(태도)가 바뀌기도 합니다. 글에서 표현한 것처럼 두려움에 예민해지거나, 바빠 보이는 의료진에게 미안해 말을 걸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해 놓치지 않고 챙겨줘야 하죠.

글쓴이는 많은 간호사들이 이러한 바쁜 환경 속에서 일하다 보니 환자분들께 친절한 듯 무미건조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배경이 된다고도 생각한답니다.



이번 글에선 이러한 간호사의 업무 배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 에필로그를 통해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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