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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May 09. 2023

양가감정 4_공익 vs 사익

파견직 모두가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이 1순위는 아니었다. -6



"지금 두 선생님은 이 통을 갈려고 하는거에요. 데이 1팀이 한가할 때 하는 일이에요."

".. 선생님들, 둘이서 하기 어려운데 도와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

.



오늘 환자들의 대다수가 명료한 정신 상태였다.(*)다만, 최근 수많은 코로나19 환자들이 숨찬 증상을 호소하지 않음에도 산소포화도가 80프로대(*정상 95-100%)를 보이거나 엑스레이 상에서 폐가 뿌옇게 보일 정도로 경과가 안 좋아 중환자실에서 High Flow 치료를 받아야 했다.

스스로 변기에서 소변을 볼 수 있는 환자들에게 소변줄을 꽂는 것은 감염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가 배뇨를 권장했는데, 침상 변기(*)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치 않았던 많은 환자들이 이동식 변기를 갖다 달라 요청했다.

*명료함(Alert):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일상생활에 지장없이 대부분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은 명료하지 않은 상태가 흔하다. 즉, 보통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인공호흡기 치료를 위해 재우거나 여러 문제들로 인해 혼돈을 겪어나 졸려함, 섬망증세 등을 겪는다.


자신의 앞에 있는 환자가 이동식 변기를 가져다 달라 요청하는 모습을 본 다른 환자들 또한 이동식 변기를 요구할 때가 많았다. 간호조무사들은 이송과 청소 외에 업무를 거부했던지라 무조건 간호사가 갖다 날라야했다.


뭔가, 뭔가 뿌듯하지 않은 바쁨이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큰 이동식 변기를 나르고 환자들에게 달려있는 모든 선들을 정리해가며 낙상하진 않는지 꼼꼼히 살피며 그들을 변기에 안전하게 앉혀야 했다.



최근 환자가 많아져 한 팀당 세 명이서 일을 했는데 오늘은 왠지 둘이서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이동식 변기 나르는 것 빼곤 한가해서 다행이에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참아냈다. 말에 뼈가 있는 것은 뿐더러 그 말은 꺼내는 순간 꼭 바쁜 상황이 휘몰아치는 경우들이 많아 일종의 병원에서의 금기어이기 때문이었다.


"... 환자들이 alert해서 이동식 변기를 가져다 줄 때가 있는데, 환자 모니터에 붙어있는 선들을..."

채준용 선생님은 우리가 환자에게 변기를 나르고 부축하여 앉히는 것마저 중계했다. 한 번은 내가 서소윤선생님에게 "같이 환자 부축 좀 할까요?"라 하여 환자들에게 변기를 내어준 6번 중 딱 한 번 거들었다.

OT기간이 아니라 Observation(*) 기간인건가-. 생각이 들었다.

*Observation: '관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흔히 병원에서는 1) '옵저베이션하겠다.' 혹은 '옵저한다.'라 하면 '특별한 조치없이 경과를 지켜보겠다.'라는 뜻으로 쓰이거나 2) 실습나온 학생간호사들이나 신규간호사들에게 '옵저베이션 기간'이라 하여 특별한 간호술기 행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따라다니며 술기를 눈으로 보며 배우는 기간을 뜻함.

(이 경우 두 번째 뜻으로 쓰임.)


.

.


대부분의 환자들의 방광을 비워서 그런지 이제서야 여유가 조금 생겼다. 우리는 오염존내 스테이션쪽에 앉아 전산을 끄적거리며 함께 보고 있었다. 사실 파견직 간호사들은 액팅간호사로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산을 볼 필요는 없었다.


"우리 이동식 변기 어디에 있죠?" 그때 최수빈 선생님이 A룸을 흘끗 쳐다보더니 몸을 일으키며 이야기했다.

"오물처리실에 다 놨어요." 서소윤선생님의 시선끝이 잠시동안 오물처리실에 머물렀다.

최수빈 선생님은 말없이 오물처리실에 가 이동식 변기를 가져왔다.


나는 슬쩍 따라 일어났다.

"괜찮아요. 저 환자분은 거동 잘 하셔서."

"오늘 근데 선생님 환자들 부축 너무 많이 해드려서 힘들지 않아요?"

"에이-. 괜찮아요. 선생님도 힘 많이 쓰셨잖아요."

최수빈선생님은 손사레치며 A룸으로 향했다. 나는 최수빈 선생님 뒤에서 "안되면 불러요-!"라고 외치고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채준영 선생님은 최수빈 선생님의 모습을 쳐다보도 있었고, 컴퓨터를 멍하니 쳐다보는 서소윤 선생님이 보였다.





다음 날 데이, 오늘도 서소윤 선생님과 같은 팀이었다.

오늘은 채준영 선생님이 우리 듀티에 없어서 얼떨결에 들어온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내가 그 선생님을 가르쳐줘야했다. 음-, 그렇다면 오늘은 액팅시스템 위주로 가르쳐주겠다 다짐하며 오염존으로 함께 들어갔다.


"선생님, 오늘은 직접 환자 exam 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

".. 아, 네."



나이트를 하는 본원 선생님들은 환자 상태에 대해 팅간호사들, 즉, 파견 간호사들이 체크해야할 것들에 대해 적어놓는 종이를 오염존에 넣어준다. 종이에는 인공호흡기 모드와 셋팅값, 각종 산소 요법들, 그리고 수액종류와 시간당 몇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해 적혀 있었다. 나이트번 액팅 간호사들이 새벽 5-6시쯤 수액을 갈며 한 번 더 확인하긴 하겠지만, 교대를 할 때마다 제대로 되어있는지 모두가 확인해야 했다.


"본원선생님들이 환자 상태 적어주신 거 보시면서 환자 수액이랑 인공호흡기 모드 똑같은 지 확인해주시고, 인공호흡기 환자분들은 Suction(*가래뽑는 것)셔서 가래 양상 어떤지 본원 선생님들한테 알려주시면 되요." 나는 서소윤 선생님에게 종이를 건네며 이야기 했다.


그녀는 멀뚱히 나를 쳐다보았다.


"가래는 처음 뽑아봐서요."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내가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내게 이야기했다.

약간 당황했다. 실 중환자실에서 가래를 처음 뽑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0년차라고 하는 선생님이었지만 디서부터 어디까지 가르쳐줘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

.


나는 그녀에게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 환자의 가래를 뽑는 방법를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쳤다. 파견의 특징이 모두가 내던져지듯 발령되어 특별한 가르침없이 병원 시스템이나 위치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갖고 첫 날이나 이틀째부터 당장 현장에 투입되어 일하기 시작한다.

파견, 긴급하게 인력이 필요한 곳에 투입되는 인력인 만큼 적어도 일을 어느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염존에서 나와 휴게장소로 향했다. 수선생님은 스케쥴표를 보며 수정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나는 수선생님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분명, 중환자실 출신들이라고 했는데..'



"왜?" 수선생님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채 서있던 나를 보고 말을 거셨다.


"선생님. 이번에 오신 선생님들 중환자실 출신이라고 하셨던 거 맞죠?"

"응. 맞는데-? CRRT(*)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만 발령냈다고 했어."

... CRRT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공호흡기를 못다룰 리가 없다. 가래를 못 뽑을 리가 없다.

*CRRT: Continuous Renal Replacement Treatment. 지속적 신장 대체요법. 만성 신장 부전 환자들은 보통 주에 2-3회씩 병원 투석실에서 2-3시간동안 투석을 하지만, 급성 신장 부전 환자들의 경우 초기에 CRRT 치료를 통해 비정상적인 신장기능과 혈액을 교정한다. 24시간 적용하는 투석요법. 은근 손이 많이 가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CRRT, 출처: 구글


"... 네."

"왜? 무슨 문제있어?"

"아, 아닙니다." 나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수선생님은 '그래.'라며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황파악이 필요했다.


서소윤 선생님은 가래를 못뽑는 척을 했거나,

중환자실에서 일해본 적이 없지만 파견 발령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쳤던 것.

두 가지의 결론뿐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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