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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Oct 14. 2023

파리목숨에서 철밥통으로 바꾸는 방법

서로를 몰아세워서라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모든 인력이 특화된 자리에서 일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그저 우린 그 어디든 파견직으로 '발령'만 받으면 되었다.



그래-. 수술실 출신 간호사들은 수술실에 파견 발령이 나고, 중환자실 출신 간호사들은 중환자실에, 병동 출신 간호사들은 병동으로 발령이 나면 자신의 소속 안에서 그동안 쌓아 온 경험이나 지식, 스킬들이 있으니 그 누구도 파견 첫날부터 생 초짜처럼 일하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모두가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간호사인데, 출신 소속이 중요하냐고?



환자 및 보호자를 대하는 서비스 스킬,

특수부서 출신 간호사들 중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출신 간호사들은 아무래도, 일반 병동이나 외래 출신 간호사들보다는 아무래도, 중요한 덕목(?)은 아니었다. 특수부서 중 하나인 중환자실만 해도 폐쇄적이고 보통 환자를 재우는 곳들이었기 때문에 대화가 가능한 환자를 대하는 데에 있어서 부족했다. 게다가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중환자실에서 일하다 보면 옵쎄(*) 해지는 경우가 많아 환자들의 사소한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기 때문에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병동이나 외래 간호사들보다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융통성 없이 엄격하게, 즉 그들이 느끼기에 기가 세다고 느끼게끔 대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환자 및 보호자를 대하는 것이 어렵고 불편하다고 느끼는 간호사들은 중환자실이나 수술실 원티드를 하는 경우도 많았던 수준.


즉, 라뽀, Rapport를 형성하는 게 조금 많이 달라서-. 게다가 쓸데없이 융통성이 없을 때도 있어서, 넘어가도 되는 일에 쉽게 넘어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객을 대하는 것에는 사실 일반 병동이나 외래출신 선생님들보다 훨씬 냉랭하기도 하다. 즉, 환자 및 보호자에게 친절한 것이 간호 스킬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부서들에는 일반병동, 외래 선생님들이 발령 나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옵쎄: Obssessive, 강박적인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흔히 병원에서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 예민하고 강박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경우에 쓰인다. 이 경우 경증 환자에게서 융통성 있게 넘어가도 되는 피검사 수치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 써 manage 하려 하는 식. 보통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소수의 환자를 집중적으로 보다 보면 다수의 경증환자를 볼 때 융통성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상 정규직 간호사들은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실 등 일반 병동과 달리 '특수부서 수당'이 붙었지만 파견 간호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선별진료소에 발령이 나든, 생활치료센터에 발령이 나든, 중환자실로 발령이 나든 간에-.

우리는 모두 같은 일급을 받으며 일했다.


나중에 생활치료센터의 환자 컨디션이라던지, 내가 방호복을 입고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간호를 제공하는 시간과 노동력의 차이를 듣고 같은 일급을 받는다는 게 은근슬쩍 억울하기도 했지만. 한 달 만근을 하고 받는 일반 정규직 간호사와 2-3배 차이가 나버리는 파견직의 급여에 결국 많은 간호사들이 '쉬운 곳에서 일하는 것'보다, '어디 부서든 상관이 없으니, 어디든 발령이라는 게 내게 어서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니까-,

"아니, 우리 업무량이 거기보다 훨씬 많은데 똑같은 급여를 받는 게 말이 돼?" 라기엔-.


"그래서, 추가 수당 안 주면 관둘 거야?"라면

말 그대로 '깨-갱',

특수부서 수당을 받지 않더라도 정규직으로 일할 때 받던 급여차이가 너무 커서, 관둘 수 없다. 아니, 관두고 싶지 않아 진다.


즉, 그저 내 업무량이 다른 곳과 월등히 차이 나도록 일해도 급여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숫자를 내 통장에서 언제 보겠냐며- 만족해야 했다.



2021년 1월, 정규직 간호사와 파견직 간호사의 급여차이 대한 기사가 속출했다. 그로 인해 많은 간호사들이 파견직을 하기 위해 본 직장을 때려치우고- 코로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사직한 간호사가 19-20만 명이었는데, 약 일 년 사이에 1-2만 명이 더 늘어나 21만 명이 되었다.

게다가 간호사들은 "역시 간호사의 가치와 업무량은 그 정도였던 게 맞았다. 그러니까 정규직 간호사들의 급여도 높아져야 간호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사명감을 가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간호사들보단, "뭔데 쟤넨 정규직인 우리보다 많이 받냐."라는 반응이 더 많았다.


상향 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


우리는 서로를 갉아먹기 바빴다.






아무래도 파견직에 발령 나는 간호사들은 3년 차에서 10년 차가 가장 많았다. 대부분 그 정도 연차는 병원에서 가장 갈아져 쓰이는 인력들이었다. 어느 정도 본인 역할도 할 줄 알아서 액팅이며 차팅을 제법 곧잘 해내고, 프리셉터(*멘토, 사수)가 되기도 충분했고, 스테이션 차지를 보기도 했다.


9월 입사자였던 나는 어영부영 4개월 만에 2년 차가 되고, 시간이 지나 첫 직장에서 일한 건 고작 2년 4개월 정도뿐인데도 그곳에서 나는 4년 차가 되었었다.

해서, 스테이션 차지를 보면서 내 환자도 케어하고, 일하면서 프리셉트(*멘티)도 몇 명씩 키우라하여 교육도 진행해야 했고, 의사가 모자란다며 인턴배치를 안 해줘서 인턴 업무도 다 커버 쳐야 했다. 적어도 인력이 풍족한 병원이었다면, 부서였다면- 역할 하나하나에 1명씩 충실해야 했는데, 결국 난 4인분을 해내야 했다.

나와 입사가 6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는 내 다음 연도 3월 입사자인 3년 차 선생님들은 그저 제 환자만 잘 돌보면 되었는데, 나는 왜 4인분을 하고도 이 선생님들과 급여차이는 고작 몇 만 원인 걸까. 속으로 억울한 적이 많았다.

 

그 무슨 하소연을 해보고, 건의를 해봐도 고쳐지지 않아 나는 첫 직장이 답이 없다 느끼고 때려치운 후 파견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관두고 몇 달간 파견직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그래, 필요하다는 곳에 가서 일하자.'며 사직한 지 3개월 후 지원했다.


지원한 지 2개월이 지나 처음 중앙수습본부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에는,

내가 그나마 익숙하게 일할 수 있는 중환자실이 아니라고 해서 거부했다.

근데 친한 동생이 그걸 왜 거부하냐며 본인이 더 당황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해서, 순간 내가 엄청난 실수를 한 건가-? 싶어 다시 급하게 중앙수습본부에 연락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간신히, 몇 시간 만에 연락이 닿았고 돌아오는 답변은 이미 내가 거부한 자리는 다른 선생님에게 돌아갔다며, 아쉽지만 발령은 좀 더 기다려보셔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었다.

사실 내가 차버린 자리에 아쉬움을 느끼는 아이러닉 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또 곧장 그곳에 발령되었다면 걱정했을 것이었는데- 자리가 찼다니 은근히 속 시원했다.


.

.


그렇게 2개월 넘게를 더 기다려, 원하는 부서에 발령받았다.


그래. 파견직 발령에는 적어도 2-3개월은 걸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거부하면 또, 기약 없이 발령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많은 간호사들이 발령전화가 오면 발령 병원이나 부서가 어디가 되었든 간에, 하루빨리 승낙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발령 날 곳이 나에게 너무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하더라도-.

'저는 그곳에서 아주 필요한 인력입니다.'를 어필하기 위해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치는 인력들도 생겨났다.







코로나19 거점병원을 맡은 병원들의 대다수는 기존에 어떤 병원들이었을 까-.

대부분 폐업, 그러니까 망해가는 병원들이나 수익을 위해 병원들이 코로나19 거점병원을 자처했다. 오히려 큰 병원, 즉 3차 대형종합병원에서는 코로나19 환자를 받으면 기존 환자들이 방문을 꺼려할 수 있어 코로나19 전담을 최대한 맡지 않고 싶어 하기도 했다. 결국, 코로나19 거점병원들의 대다수에는 시설이 낙후되어 있는 병원들이나 의료의 질이 떨어진 병원들이 많았다. 


.. 의료의 질, 그에는 의료진의 능력치나 어떤 의료장비를 구비하고 있느냐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저희는 코로나19 전담 시작하면서 인공호흡기나 CRRT를 처음 들여왔어요."

즉, 거점을 시작하며 처음 다뤄본 기계들이 많아졌다는 것.



결국 거점 병원들 대다수에서 간호 파견인력을 받는 이유에는 단순히 인력이 모자라서 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처음 겪어보는 중증도나 기계들에 익숙지 않아 내부 인력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거점병원들에서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파견직 간호사들은 파견직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쓸 것이라 생각하고 갑질을 하곤 했다.


그에 따라 파견인력 사이에서는 자신이 파견직으로 오래 살아남기 위해, 기존 정규직 멤버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온갖 아양을 떨고 서로가 서로를 이간질하는 등 이기심을 보여 주기도 했다. 본원 소속 정규직 간호사들의 부족함을 앎에도 그를 채워주는 것은, 즉,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recommend가 아닌 일종의 반항으로 여겨질까 싶어 능력치 발휘를 삼가고 정규직 간호사들이 하라는 대로만 행하기도 했다.

즉, 파견직 간호사들의 존재가 양과 질적으로의 향상이 아닌 양적 향상만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

.

.



"선생님들, 오늘 stable 하니까 일찍 교대하고 들어가세요."

이브닝에서 나이트로 넘어가는 교대시간, 나이트번 선생님들에게 모든 인계를 마쳤음에도 퇴근시간까지 20분이 남았었다.


"아, 그래도 20분이나 남아서요."

"에이, 지금 더 계신다고 할 게 뭐가 있나요-! 이전에 저도 일찍 간 적 있었잖아요. 오늘 일찍 퇴근하세요!"


서현주 선생님은 이전에 인계를 마치고 퇴근 시간 전에 가버린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어 약간의 눈초리를 샀던 적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서 인지 다른 동료들에게도 할 것이 없으면 일찍 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와 이브닝으로 함께 일했던 다른 선생님이 멋쩍게 웃으며 '그래도 되나요, 허허.' 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하죠, 당연하죠!' 서현미 선생님은 우리의 등을 떠밀며 얼른 가시라 하였다.


.

.


"아니, 선생님. 어제 이브닝이었어요?" 다음 날이 되어 출근길에 만난 선생님이었다.

"네, 무슨 일 있었나요?" 왜인지 나에게 어제 일을 이야기하면서 찌푸려진 선생님의 얼굴을 보니 이브닝관련해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어제 이브닝 선생님들 20분 일찍 퇴근했다고 수선생님 귀에 들어가서 난리 났다던데?"

".. 네? 어제 현미 선생님께서 일찍 가라고 했는데요.."

"그, 그래요..? 제가 듣기로는 이브닝번이 퇴근시간보다 일찍 퇴근했다고 보고가 들어왔대요."



어이없게도, 나이트가 끝나고 데이번 선생님들이 출근하고 곧이어 수선생님이 출근하셨을 때,

나이트 차지였던 서현미선생님께서 어떤 사진 한 장을 수선생님에게 들이밀었다고 한다.





사진에는 이브닝 퇴근시간인 밤 10시 반보다 20분 빠른 10시 10분을 나타내는 디지털시계와 스테이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나이트번 멤버들이었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브닝번들 퇴근시간보다 일찍 퇴근했어요."라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이브닝번 멤버들이 원해서 일찍 퇴근한 것이었다면 아차 싶어도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근데, 근데..

등 떠밀려 퇴근했는데 퇴근길이 신고 현장으로 변할 줄은 몰랐다.



한 명이라도 쳐내기 위해,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을 최대한 쳐내어 파리 같은 자신의 목숨줄을 이어가는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팬데믹 속 파견직, 정규직으로 일할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업무 환경이나 급여.

그로서 필요에 의해 뽑혀야 했던 파견직이라는 자리는 '기회'가 되고 파리목숨일 뿐이었다.

협동이 되어야 하는 우리, 그 속에서 생겨나는 묘한 서로 간의 견제가 판을 쳤다.







안녕하세요 오늘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해당 글은 팬데믹 속에서 일어났던 파견직 사이에서의 견제가 일어나는 배경들과,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어났던 우리가 서로 갉아먹던 일화를 다루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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