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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Feb 03. 2023

영하 5도

춥다 / 안 춥다



영하 5도 정도 됐었던 것 같다. 오도도도 떨면서 떨면서 침낭 속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그게 작년 10월 말이다. 10월 치고는 한파가 몰아쳐서 영상 10도 정도 온도에서 갑자기 영하 5도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급하게 핫팩을 분배했으나 혹한기 훈련도 아니고 해서 개인당 두 개 정도가 나누어졌다. 영하  5도는 그렇게 추운 온도다. 물이 얼 수도 있는 온도. 물론 산과 들에 있는 물이 하룻밤 영하로 떨어졌다고 해서 얼어붙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10월에 그 정도 온도면 온 마음과 손끝이 꽁꽁 얼어붙는다.


이게 영하  5도다.


1월 말 또다시 기록적인 한파가 몰려오고, 이번엔 영하 15도다. 한낮에도 영하권 온도가 계속되자 집 근처 도랑이나 저수지가 얼어붙었다. 바람까지 설설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개마고원이다. 정말 춥다. 더 추운 날도 가끔 있지만, 갑자기 10도 정도가 더 떨어졌다 보니 체감되는 온도가 아주 날카롭다. 애들 재우고 자정께 한 바뀌 뛰고 오니 손발이 유리잔처럼 질 것 같다. 코도 이마도 깨질 것 같다.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 그런지 반바지는 안 되겠다. "흐헙-!!" 소리를 내며 간신히 뛰었다. 아주 추운 날씨라고 생각되었다.


이건 영하 15도다.


11월 말에서 2월로 넘어가니 다시 영하 5도다. 이번에도 영하 5돈데 하나도 춥지 않다. 더 깊은 겨울로 들어서는 영하  5도가 아니라 겨울에서 벗어나는 길에 맞는 영하  5도라서 그런지 이젠 봄이 오는 것 같다. 영하 5돈데 왜 개나리가 안 피나 싶은 생각이 든다. 영하 5돈데 반팔을 입고 달리기를 했다. 한 시간 넘게 뛰니 손은 좀 시렸지만 몸에 열이 나서 그냥저냥 버틸만하다. 달리면서 본 개울가에 아직 푸른 기운은 하나 없으나 지난주 얼었다 녹아가는 얼음 조각들을 보며 "겨울 끝났네"라고 생각했다.


이것도 영하 5도다.


온도는 같은데 느끼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 실제로 뭐가 달라서 다르겠을까. 그냥 마음이, 마음의 준비상태가, 몸의 적응 정도가 다른 것뿐이다. 똑같은 영하 5도에서 10월 말에는 '너무 춥다'라고 생각했고 몸을 움츠렸다. 지금에 영하 5도는 '따듯하다'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운동을 한 번이라도 더 할까- 하며 스트레칭을 한다. 지어는 영하 15도, 25도에서 얼음물을 깨고 들어가 훈련을 하는 군인들도 있고, 미국에서는 얼마 전 강력한 한파로 영하 55도를 기록한 지역도 있었다.

 

우리 사는 삶이 다 이렇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에서는 '요만한' 고통과 어려움에도 좌절하고 포기하겠지만, 다른 어떤 사람,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같은 정도의 고난에도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더 튀오를 지 모르겠다. 고통뿐만 아니라 대인 관계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라든가, 아이들을 돌보면서 느끼는 고립감, 우울감, 무력감 등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특정 시간에 대한 생각, 특정 자극에 대한 감각, 어떤 말이나 생각에 대한 역치도 다 그렇다.


우리가 맞고 있는 이 자극이 과연 정말 그 정도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평소라면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진짜 넘어야 하는 산, 해결해야 할 문제, 이겨내야 할 고난이라면 '따듯한 영하 5도'라고 생각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움츠리고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부딪치고 밟아 일어서기 위해서 말이다.


특히나 포기할 수 없는 신념, 가족, 건강과 같은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과연 내가 마주하며 징징거리고 있는 이 상황은 어떤 영하 5도인가.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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