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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Oct 17. 2024

모세의 시간





나일에서 건져진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올려져 이집트의 왕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내려가 도망자가 된다. 그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사십 년이 지나 파라오 앞에 나타난 도망자는 어느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세우신 지도자가 되어있었다. 파라오를 넘고, 홍해를 넘어 하나님과 함께 광야를 동행했던-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썩 로맨틱하고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끝이 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전전하였으며 마실 물과 먹을 것을 달라고 불평하는 백성들을, 뒤만 돌아서면 우상을 부어 만드는 그들을 이끌어야 했다. 하나님께 간구하며 부르짖느라 눈은 자주 퉁퉁 부어있지 않았을까. 앞길을 가로막는 이민족들을 생각하느라 잠 못 이루지 않았을까. 그런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여 사십 년이 다 되었을 때.



느보산을 오르는 모세의 시계에 마지막 모래알들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광야생활 백전노장이 된 모세는 발아래 펼쳐진 약속의 땅과, 지금까지 건너온 광야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선을 그으셨다. 하나님과 모세는 만족감과 아쉬움이 묘하게 섞인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는 모세가 광야에서 묻혔다. 나일강에서 시작해 홍해를 건너 요단강을 앞에 둔 때, 모세가 백 이십 세가 되던 때였다.




모세는 하나님이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이다. 자신은 절대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으로 이끌어간다. 약속된 40년이 끝나면 자신은 광야에 남겨질 것이라는 것을, 자기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요단강이 피니쉬라인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은 이루어야 했다. 팔십에서 백이십. 그 사십 년만큼만 모세에게 부여된 사명의 시간이었다. 정해진 시간이었다. 그 시간 너머에 모세의 시간은 없었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을 다 했다. 그 이름이 '건져내어 지다'라는 뜻의 '모세'였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압제 속에서 건져내었다. 나일강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요단강 앞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길고 험난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끝과 자기 백성의 시작이 맞닿아 있는 접점을 향해 가야만 했던 모순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에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한 말씀 속에 남았다.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했을 때 그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할 수 있었고, 그 끝엔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사명하고 있는가, 그 사명을 기꺼워하며 자신의 끝이 요단강 이쪽 편이라도 멈추지 않고 있는가. 물과 식량을 달라 떼쓰고, 두려워하여 믿음을 놓아버리고, 되려 옛 우상을 끄집어내어 돌과 쇳덩이에 절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바로 앞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이끌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시간이 백이십 넘어서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뱉어낸 불평과 불만, 두려움과 믿음 없음을 생각하면 내 삶은 요단강 저편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 사명의 시간을 정성으로 채웠을 때, 우리는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다. 우리의 정해진 시간, 허망히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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