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절기 ‘망종’
예부터 오뉴월에는 보릿고개라 하여 작년에 농사지어 저장한 곡식과 작물은 떨어지고, 이른봄에 피워난 들나물은 억세져서 이맘 때 수확하는 보리를 먹으며 이 시기의 고개를 넘겼다고 한다.
지금이야 하우스와 시설재배로 여름부터 먹을 수 있는 고추, 가지, 토마토 같은 작물들을 일찍이 먹을 수 있지만 노지에서는 마늘과 양파, 쪽파 정도로 수확이 가능하고 조금 더 기다려야만 감자를 거둘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선조들은 보릿고개에 무엇을 먹고 지내셨을까? 이맘 때 나는 야생의 열매와 구황 작물을 드셨다고 한다. 텃밭으로 나가보니 여전히 먹을 것들이 지천이다. 아무래도 밭을 갈아서 풀과 함께 작물을 키우지 않았다면 오로지 마트에만 먹거리를 의지했을 테지만 지금 노지텃밭에는 여름에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풀이 싱싱하게 살아가고 있다.
개비름과 왕고들빼기, 차조기가 여름의 속도만큼 올라오고 있고, 열매가 달콤쌉쌀한 까마중 역시 푸릇하게 자라있어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겨울이 오기 전 뿌리를 캐내어 장아찌로 담궈왔던 돼지감자순, 줄기부터 잎이 여려서 날씨가 따뜻해져도 억세지 않고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별꽃과 쇠별꽃, 한창 개화하고 있는 개망초를 일찍이 베어 다시금 새순을 먹을 수 있는 망초순도 밥상위에 올려본다. 마지막으로 새콤한 괭이밥을 곁들여 먹으면 오색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게 된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땅으로 내려오면서 계절이 변화하고 먹는 음식도 달라지고 있다. 국이 놓여있던 밥상에는 물김치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몇해전부터 돌나물로 물김치를 담아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올해 마음먹고 성공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들어가면서도 솔직히 그보다는 채취하기에 아직은 돌나물이라는 식물과의 거리감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속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몇년 전에 돌나물 물김치를 담궜을 때 실패했다는 이력때문에 다시 도전하기가 두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텃밭에 가득한 잡초요리를 연구하면서도 실패하는 것이 무척이나 두렵다.
돌나물 물김치는 지난 토요일에 만들어 실온에 이틀간 숙성시킨 후에 먹어보니 살짝 신맛이 도는게 맛이 아주 잘 들었다. 옆지기인 짝꿍도 자기가 딱 좋아하는 맛이라며 여름내 먹자고 좋아라한다. 날이 더워지면서 절묘하게 물김치가 알맞게 익은 것이다.
망종에 나는 잡초들, 풀을 채집하여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보았다.
이름하여 ‘망종의 풀나물 비빔밥’
잡초라고만 불리기에 아쉬운 풀을 채집하여 밥상 위 나물로 무친 것이다. 개비름 개망초 까마중 돼지감자 별꽃 나물은 미리 하나씩 무쳐놓고 양푼에 넣은 다음 위에서 왕고들빼기 차조기 잎을 더해 비건 맛간장과 들기름을 넣어 쓱싹쓱싹 비볐다.
나는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지니들처럼 광활한 자연에서 그날그날 눈앞에 나타나는 음식에 감사를 느끼며 식단을 바꿔 나가고 싶다.
현대의 음식들은 맛있고 화려하지만 이러한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트에 나가야하고 세계화된 음식들은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에서부터 가공되어 넘어오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텃밭의 작물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나는 야생초를 직접 손끝으로 채집해 먹는 것이 향으로나 맛으로나 건강하고살아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며 경제적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음식을 먹기 전 틱낫한 스님의 먹기명상 책인 'How To Eat‘을 읽곤 하는데 식사 전 손길 닿는대로 책을 펼쳐서 나온 오늘의 구절을 적어본다.
‘식사에 대한 숙고’
먹기 전에 잠시 음식을 숙고하면 큰 행복이 찾아옵니다. 음식이 실재가 되도록 음식을 깊이 바라봅니다. 이 음식을 나의 접시에 가져온 모든 조건과 사람, 동식물, 광물을 생각합니다. 음식은 지구별과 모든 존재,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내줍니다. 나의 건강과 행복을 보존하고 지구별의 건강과 행복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먹겠다는 결심을 기억합니다. 다음에 수록한 숙고, 명상과 시는 식사 중 마음다함 수행을 도와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