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외부로 MBA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교육을 받던 사람들과 지금까지도 친목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교육 커리큘럼에는 해외 견학과 과제가 포함되어 있었고 교육을 받던 사람들과 해외에 나가 추억도 쌓고 함께 과제를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정이 들어갔다. 교육이 끝날 때쯤에는 서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친목 모임도 결성했다.
정이 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람들에게서 모임을 결성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에는 이 모임이 오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나는 반신반의 했었다. 서로 사는 지역도 다르고 일하는 분야도 각기 달라서 서로 접점이 없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 모임을 결성하면 처음에만 반짝하고 결국에는 서로 연락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버릴 것이 뻔할 것 같아서였고 그럴 바에는 서로 연락처만 주고받고 좋은 추억을 오래 간직하는 편이 더 나은 결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당시 모임에 있던 형님들이 우격다짐으로 나를 총무에 앉히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모임을 결성한 덕택에 그 모임은 지금도 명백을 유지하고 있다.
새해 들어 그 모임에 있는 형님 중 한 분이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보통 모임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회원들끼리는 주로 단톡방에서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었는데 나는 총무를 맡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간혹 형님들이 전화를 해 올 때가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루 루틴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징징 징징]
"○○야,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주말인데 뭐 해?"
"형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주말이라고 특별한 건 없어요. 흐흐."
"그래? 미안한데 내가 뭐 좀 부탁해도 될까?"
모임에 있는 형이 전화를 걸어와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니 내심 마음이 불안했다.
"부탁이요? 뭔데요?"
"내가 가족들이랑 오늘 서울로 놀러 가려고 호텔을 예약해 뒀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됐어."
"왜요?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애가 독감에 걸렸어. 그래서 말인데 네가 시간이 되면 대신 가줄 수 있을까 해서...?"
"네?"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런 사정이라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예약을 취소하고 환불을 받으면 될 일인데 굳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대신 가달라고 부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형님. 그런 거라면 그냥 환불하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응? 환불? 그....... 그게 약정이 좀 복잡해서. 귀찮겠지만 부탁 좀 들어주라."
나는 타 지역으로 여행 갈 때를 제외하고는 호텔을 잡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서울에 내 집을 놔두고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잠을 자다니....... 매월 일정한 수입이 있던 회사원 시절에야하루쯤 이벤트성으로 할 수도 있다 하겠지만 작가가 되겠다고 직장까지 그만둔 사람이호캉스가 웬말이란 말인가?
"아....... 형님, 제가 그러기가 좀......."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데....... 괜히내가 성가신 부탁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네? 아....... 그런 건 아니고."
누가 봐도 부탁이 아니라 선물을 주려는 상황 같은데....... 그 형님은 끝끝내 내게 해서는 안될 부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시종일관 미안한 말투를 보였다. 얼떨떨한 상황도 잠시,대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그 형님의 진짜 의도를 알아차리고 말았다. 동생에게 선물은 해주고 싶은데 혹시나 동생이 부담스러워하거나 자존심이 상해할까봐 마치 부탁을 하는 것처럼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현듯 형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아....... 형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더 감사하지."
"마침 내일이 제 아내 생일이거든요. 와이프가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그래? 잘됐네! 하하하."
내가 형님이 준비한 선물을 감사히 받으니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형님이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야. 나중에 훌륭한 작가 돼서 성공하면 그땐 네가 나 호텔 잡아줘라. 흐흐."
"네. 그럴게요. 정말 고마워요. 형님."
전화를 끊고 나서도 그 형님의 따뜻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져 와서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리고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지.......
'형님! 살면서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네요. 그 마음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