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오름 Dec 30. 2022

이렇게 패션에 진심일 수도 있네요

남편과 나는 회사 동기로 만나 패션에 관한 관심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그는 내가 생각했던 수준 이상으로 옷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만일 조용히 핸드폰을 응시하는데 화면 위에서 손이 움직인다면, 십중팔구 패션 아이템을 물색 중이다. 매번 구매로 이어지진 않지만, 그는 늘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온라인 아이쇼핑, 그것이야말로 그에겐 취미생활인 것이다.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다양한 쇼핑영역을 구축한 그는 “자기, 이거 예쁘지?” 하면서 이런저런 아이템을 보여주는데, 신기한 아이템들이 많아서 어떻게 검색했는지 궁금해질 정도다.


옷을 가게에서 입어보고 구매했다면 귀가해 옷장으로 넣어버리는 나와 달리, 남편은 가게에서 입어봤더라도 집에서 다시 입고 기존 아이템들과 여러 번 매치해 본다. 가끔은 야근하고 온 남편에게 “자기 뭐 해?” 물으면, 남편은 택배로 배송된 옷을 여러 스타일대로 바꿔가며 “자기 이건 어때?”하고 되묻고 웃는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패피지!’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끔은 검정 트위드 조끼 혹은 인도에서 배송된 빈티지 셔츠를 구매해서 나를 놀라게 할 때도 있지만, 그는 멋스럽게 패션을 즐길 줄 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차분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링을 구사하는 그는 ‘남자분 옷 잘 입으시네요.’라는 칭찬을 듣는 게 익숙하다. 안경도, 시계도, 모자도 옷차림에 맞게 활용하고, 가끔은 브로치로 포인트도 주는 남자다.


그와 만나기 전 나는 몸에 착 붙는 치마, 소위 ‘꾸꾸’ 패션을 고수했다. 그런 내게 그는 바지로도 멋스러움을 연출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키가 작아서 바지는 요원한 아이템이라 여겼던 나는 그와 쇼핑을 하며, 품이 넉넉한 바지와 티에도 익숙해졌다. 힘을 빼는 패션의 멋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엔 다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패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되어서, 긴장을 내려놓고 옷을 입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여자친구 혹은 아내가 쇼핑을 하면 “잘 다녀와, 난 저기서 쉬고 있을게.”라며 자리를 뜨는 보통의 남자와는 달리, 그는 나와 쇼핑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심지어 본인 옷보다 내 옷을 쇼핑할 때 신이 나있다. 남성복보다 다채로운 여성복을 돌아보며 트렌드를 파악하는 게 재밌고, 내게 적극적으로 아이템을 추천하는 게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쇼핑할 땐 남편이 있어야 좀 더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패션을 향한 진심은 남편이 훨씬 더 깊지만, 명품 브랜드에 구속되지 않으며, 각자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즐길 줄 알고, 개성을 몇 스푼 곁들인 패션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닮았다.


결혼식 때 내가 그에게 건넨 사랑의 서약 중 첫 번째를 떠올리고, 다짐한다.


“첫째, 패션에 있어선 평범함을 거부하는 신랑이 한평생 패션피플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아무리 처음 본 아이템일지라도 편견 없이 세심한 감상을 건네고, 문 앞에 놓인 택배박스에도 늘 평정심과 웃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일단 해 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