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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Jan 11. 2023

나를 품어주는 그림

갑자기 여유가 생겼을 때 책을 읽는 걸 좀 더 좋아하지만, 활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칠 때가 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땐 텔레비전 앞에서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있지만, 며칠 지나고 나면 더 이상 무기력하게 보내는 게 지겨워진다. 그럴 때면 지하철이나 버스에 몸을 싣고 전시회장으로 향한다.

  

그림을 보면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머리가 잠시나마 말랑말랑해져 숨을 들이쉬는 기분이 든다. 나는 주로 보고자료를 만들거나 법률의 개정문을 구성하고, 기관을 대표하는 보고서를 쓰는 일을 한다. 많은 이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내용을 다루는 터라 자주 기사화된다. 자칫 오류가 생긴다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비난받고, 상사의 질책과 동료의 안타까운 시선으로 괴로워진다. 그래서 오류가 없는지 계속 확인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창의성 대신 논리성과 정확성을 길러왔다. 하지만 기사화는 피할 수 없는 법. 불가피하게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더라도 논란거리의 중심에 서지 않는 걸 덕목으로 여기는 곳에서 일해왔기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나만의 매뉴얼을 탑재하고 애매모호한 정치적 수사로 말하는 데 익숙해졌다.     


본래 감정과 표정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천성이라 처음 회사에 발을 디딜 때 나도, 주변 친구들도 걱정이 많았다. 밝고 솔직하지만, 묻는 말에 정확하게 답하는 학생의 문법만 익혔던 내게, 적당히 가릴 것은 가리고 포장할 줄도 알아야 하는 직장인의 문법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혹독한 사회생활을 거쳐 이젠 제법 야무진 태가 묻어나는 내가 기특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서글프다. 통통 튀던 나의 밝음은 무뎌지고, 새롭게 도전하려던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된 것만 싶을 때, 가끔은 솔직하고 싶을 때 그림으로 나를 위로한다.      


그림 대부분은 시를 제외한 글 대부분보다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래서 작가가 담은 의미가 쉽게 읽히지 않기도 하고, 관람객은 작가와 다른 메시지를 스스로 창조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의미를 굳이 언어화할 의무는 없으며, 그저 느끼기만 해도 충분하다. 귀여운 그림을 보며 몽글몽글해지기만 해도 좋고, 화사한 색감에, 바다와 풀의 청량함에 그간의 힘듦을 씻어내기만 하더라도 그림의 효용은 충분하다.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화가의 그림은 외국어로 표현된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 책을 그림보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좀 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하게 제 품을 나눠주는 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분홍, 노란, 초록처럼 화사한 색감도 좋아하고, 연노랑, 베이지, 브라운과 같은 채도가 낮은 색깔도 좋아한다. 하지만, 검정에는 특별한 애정이 없었다. 어떤 색깔의 옷이든 검정과 함께라면 그럭저럭 어울리고, 그림에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 고유한 매력이 있다고는 이해해도, 괜히 끌리지 않았다. 그러다 파주에서 우연히 갤러리와 와인바를 겸하는 곳에 들렀다. 여유롭게 작품을 관람하던 중, 한 작품에 자꾸 시선이 갔다.


김미경 작가님의 <Symphony of the Spirit>. 검정, 회색 등 무채색이 가득했는데, 작품 크기가 꽤 크긴 했지만,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특별히 없었다. 하지만, 계속 또 바라보았다. 저 그림을 바라보면 세상의 근심이 잠시나마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 은은한 행복을 몇 분이나마 길게 가져가고 싶었다.   

  

핸드폰 사진은 당시의 희열이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밋밋하게만 느껴진다. 감상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공기처럼 어느새 날아가 버린다. 손에 쥐고 싶지만 쥘 수 없는 그림과의 조우. 그래서 그림을 직접 관람하는 그 길이 한없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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