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시 후기
뚜벅이 대학생 시절, 추위를 매우 타는 나에게 패딩은 필수 패션 아이템이었다. 한 번은 안에 멋진 원피스를 입고 위에는 빵빵한 패딩을 입고 약속에 나갔는데, 친구가 ‘패션 테러리스트’라 해서 같이 신나게 웃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아무리 멋을 내고 싶어도 도저히 패딩 없이는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비싸고 얇은 겨울 코트들을 본 적이 있다. “이 코트들은 얇은데도 얼마나 따뜻하길래 이렇게 비싼 걸까?”라고 이야기하며 코트를 매만지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코트들은 말이야, 한 겨울에도 밖을 백 미터 이상 걸을 필요가 없는 부자들이 입는 옷이야.” 아. 그 후로 나는 겨울 코트를 쇼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중에 아주 비싸고 반짝이는 높은 굽의 하이힐을 봤을 때도 나는 ‘이런 얇은 굽의 구두인데도 아주 발이 편하니까 이렇게 비싸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런 구두 또한 십 분 이상 걸어 다닐 필요가 없는 부유한 사람들이 장식처럼 신는 신발이라고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날, 예술의 전당으로 <앙드레 브라질리에> 전을 보러 갔다.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와인과 말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뮈로 지역의 출신의 작가다. 소뮈로는 프랑스 국립 승마학교가 있는 곳인데, 어렸을 때 봤던 수많은 말들과 부모님이 모두 예술가이신 영향 탓으로 그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배경 속의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장밋빛 석양과 청량한 파란색 속 수많은 말들과 거친 붓질 몇 번으로 기수의 동작을 완벽히 구현해 낸 그림들은 아주 아름다웠다. 바다, 하늘, 나무, 여름의 생명력과 겨울의 차분함이 그의 그림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며 여름의 공기와 그가 중요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삶의 기쁨’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바닷가 앞에서 나체로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그래, 나도 이런 사소한 것에서 매 순간 기쁨을 느끼며 살아야지 다짐했다. 작품에 그가 담아내고자 했던 에너지를 생생히 느끼며 우리는 신나게 전시를 보고 있었다. 가끔 마음이 가는 그림 앞에는 오래 멈춰있기도 하면서.
잘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에 속도가 붙은 것은 신기하게도 그가 그린 자연과 말의 풍경이 끝나고 그의 뮤즈이자 아내 상탈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나올 때부터였다. 그는 상탈을 만나 한눈에 반해 3개월 만에 그녀와 결혼했다. 그 이후로 그녀에 대한 각별한 신뢰와 애정을 담아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그림 속의 감정들이 전달되지가 않았다. ‘아, 여자구나. 여자가 꽃을 들고 있구나. 여자가 나체로 바다에 누워 있구나. 부인을 엄청 사랑했나 보네.’ 정도를 생각하며 그림들을 빠르게 지나쳐 갔다.
그러다가 우리가 멈춘 곳은 그와 아내가 일본 여행을 가서 그린 그림이었다. 창문 밖에는 눈 쌓인 후지산이 보이고, 그의 아내는 아마도 히노끼탕인 듯한 일본식 넓은 욕조에 행복하게 누워 있었다. 그 그림 앞에 멈춰 서서 우리는 이야기했다.
“와, 후지산 전망에 이렇게 넓은 개인 탕이 있는 료칸이면 대체 얼마나 비쌀까?”
멈춰 있다 보니, 우리 주변의 관람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다들 놀랍게도 얇은 코트 복장이었다. 각양각색 멋진 디자인의 아주 얇고 가벼운 코트, 그리고 구두. 패딩에 운동화를 신은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다들 반짝이는 가방을 메고 앙증맞은 모자를 쓰며 진지한 표정으로 앙드레의 기쁨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들의 옷은 그림 속 상탈의 옷과 닮았다. 그림 속 절제된 붓질 속에서도 상탈의 멋진 스트라이프나 도트가 가득한 옷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예쁜 옷을 입고 그녀와 앙드레는 뉴욕, 암스테르담, 로마,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들을 활보하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고 저녁식사를 먹거나, 멋진 차림으로 석양이 쏟아지는 야외에서 연주회를 듣고 폭죽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그린 앙드레의 작품은 18세기 로코코 양식을 연상하게 하는 궁정풍 그림이라는 평을 받는다. 유럽의 큐레이터는 그의 그림들이 로코코 양식의 작가 앙투완 바토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고 하였다. 물론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장식처럼 과시하고자 한 로코코의 그림과 2차 세계 대전을 겪고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하는 작품을 그린 앙드레의 목적은 다르다고 한다.
앙드레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얇고 세련된 옷을 입은 사람들과 전시장 밖을 나왔다. 전시를 보는 새에 해는 졌고, 추운 겨울 공기는 빛을 잃어 더욱 쌀쌀해졌다. 우리는 옷깃을 여미며 차가운 공기 속을 걸었다. 해변을 달리는 말들에게는 있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의 축제 속에는 아마 없었던 차가운 공기 속을. 공기는 감동과 힐링, 그리고 약간의 소외감과 질투의 향이 났다. 어쩌면 그것은 ‘금수저’의 아주 예쁜 필터를 입혀 잘 꾸며진 색감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한 후 원룸에서 밥을 데워 먹는 느낌과도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