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식물원과 AI 시스템 데이터 수집
드디어 서울 식물원을 방문했다. 사무실에서 도보로 고작 20분 거리인데, 맘먹고 나서는데 세 달이나 걸렸다. 그것도 알바 사진 촬영을 위해서 나선 길이었다. AI 시스템 구축을 위한 영상 데이터 수집. 어두운 곳에서 ai가 사물 인식을 잘할 수 있게 학습시키는 데이터로 사용될 사진들이다.
날은 더웠고 오랜만에 들고 나온 장비는 무거웠다. 9단계 브라케팅으로 촬영하는 동안 움직임이 없어야 하기에 무거운 삼각대는 어쩔 수가 없다. 훨씬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지고 종일 낯선 곳을 서성이던 때가 전생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차별성 있는 장면들을 쫓아 셔터를 누르고 있으려니 청소를 하시는 분, 안내소의 분들이 묻는다. 어디서 나온 사람인지, 뭘 찍는 것인지. 나도 사진을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배우면 되냐 하는. 카메라를 들고 일하던 때 어디서나 듣던 질문이다.
이번에 만난 청년은 더 적극적으로 핸드폰을 뒤져 자신의 사진들을 봐달라고 다가왔다. 도시의 일몰 사진 같은 평범한 사진들이었다. 그런 사진에서 그가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지를 판명할 능력이 내게 있을 리 없지만 이제 감옥에서 나오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사진작가'가 될지 모르는 판에 (퇴임 후 사진작가나 해보겠다고 한 바가 있다.) 그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한껏 칭찬을 해주고 얼른 돌아서려는데 그가 뜬금없이 자기 얘기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요컨대 하는 일은 지루하고 조건은 열악하여 희망(결혼과 주택마련의 희망)이 없으니 다른 일을 도모해야 하는데, 나이만 점점 많아져 이제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에서 밀려나기 직전이라 고민이 많다는 얘기였다.
이런 고민에 대한 답변 역시 내게 있을 리가 없다. 하여 잘 될 거다, 원하시면 용감히 도전해보시라 같은 뻔한 얘기를 던져놓고 다시 무더위 속을 헤쳐 걸으며 생각했다. 가진 것도 없고 운도 없어 희망이 없다는 말을, 해답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처음 마주친 내게 털어놓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길을 잃고 무력감에 사로잡힌 그가 제대로 길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경험치, 얼마만큼의 데이터들이 필요할까? 우리도 AI처럼 일정량의 데이터만 학습하면 어둡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명확한 인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식물원은 생각보다 좋았다. 다채롭게 볼거리도 즐길 거리도 갖춰 잘 꾸며 놓았다. 하나 무더위에 온실이란... 게다가 마스크를 해야 하니 다채로운 식물들이 뿜어내는 향기와 기운을 맘껏 흡입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발을 떼었으니, 일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식물원을 보고 즐기러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이 무더위만 지나가면. 온실은 너무 덥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