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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선 Sep 16. 2020

낮에는 한여름 밤에는 한겨울, 몽골여행 날씨 실화냐

<웰컴 투 삽질여행> 7월에 몽골을 여행하는 방법

<웰컴 투 삽질여행>

7월에 몽골을 여행하는 방법


엄마와 함께 10월에 떠날 해외 여행지를 물색한 적 있다.  

“엄마, 우리 동남아 갈까?”

“그 좋은 계절에 왜 동남아까지 가?”

“그럼 일본 갈까?”

“일본은 많이 갔잖아.”

“그럼 중국으로 갈까?”

“….”

“그럼 국내여행 하든가.”

“그럴까?”

“아니. 해외 가고 싶어.”

동남아는 싫고 일본도 중국도 시큰둥하던 엄마의 반응을 보고 색다른 여행지를 찾아오겠노라 호언장담했다. 그때 새로이 찾아온 게 바로 몽골 패키지 상품이었다.

“이거 봐봐! 가격도 저렴하게 나왔어! 엄마도 좋아할 것 같아.”

엄마는 몽골에 관한 설명을 읽어보더니 몽골이 꽤 마음에 드는 듯했다.

“날씨 한번 알아봐봐.”

“응! 알았어.”

하지만 ‘몽골 10월 기온’을 검색한 결과….

‘울란바토르의 10월 평균 최저기온은 -4.6도, 평균 최고기온은 8.1도로 우리나라의 초겨울의 날씨를 보이지만….’

뭐? 평균 최저기온이 벌써 영하로 내려간다는 말이야? 그래도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나라인데, 이 정도로 기온 차이가 심하다니….

“엄마, 10월 평균 최저기온이 영하 4도래. 10월에 첫눈이 내린대.”

“헤엑. 아서라. 그런 덴 못 간다. 가격이 싼 덴 다 이유가 있네.”

“그래도 낮 기온은 영상이니까….”

“안 된다.”

그렇게 10월의 몽골 여행이 잠시 수면 위로 올라오나 했더니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로부터 2년 뒤, 10월이 아닌 남들처럼 무난한 7월에 몽골로 떠났다. 여행사에서 건네준 준비물 목록에는 패딩을 준비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7월에 패딩이 웬 말이야? 짐을 싸다가 겨울에 입고 다니는 무스탕을 챙길까 말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속는 셈 치고 무스탕을 캐리어 안에 집어넣었다. 겨울옷의 등장에 순식간에 캐리어가 빵빵해졌다. 으, 공간 차지하는 거 봐! 아무리 생각해도 겨울 점퍼까진 오버인 것 같은데….     


새벽 비행기를 타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새벽 4시. 저녁 9시에 공항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새벽 1시에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줬고, 이제는 또 5시에 아침식사를 하시란다. 평소 같으면 저녁 9시와 새벽 5시 사이에는 단 한 끼도 먹지 않는데 세 끼나 먹게 되다니. 저를 그만 사육해주세요. 패키지여행의 장점은 밥을 잘 준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밥을 너~무 잘 준다는 것이었다. 첫날부터 사육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이른 새벽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니 동이 터 온 도시가 환해졌다. 드디어 울란바토르가 어떻게 생긴 도시인지 눈에 들어왔다. 마주한 울란바토르는 너른 초원 위에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기묘한 풍경이었다. 이곳이 과거에 공산국가였음을 물씬 풍기고 있었는데, 오히려 동유럽에서도 쉽게 느껴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도심 한가운데서도 몽골의 전통 이동식 천막인 게르를 간간이 만날 수 있었고, 고급 아파트와 예쁜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기도 했다. 이질적인 존재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울란바토르의 대표 관광지인 자이승 전망대에 올라보기로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일주일간 몽골 여행을 책임져줄 커다란 승합차에 올라 전망대로 이동했다.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아 보이더니 하늘에서 비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몽골은 원래 비가 잘 안 오는 나라 아니에요?”

“네. 잘 안 오는데…. 여름엔 가끔 와요.”

가이드가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건조기후로 유명한 몽골에 와서 첫날부터 이렇게 쏟아지는 비와 만나다니. 게다가 점점 뭔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비가 내린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는데, 온 도로가 홍수 상태가 된 것이다. 뉴스에서나 봤지 이렇게 도로에 물이 가득 찬 모습은 처음 봤다.

“이거 괜찮은 거 맞아요? 너무 심한데?”

“네, 괜찮아요.”

가이드가 또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면 거의 수륙양용 자동차 투어를 떠난 것 같은데, 이게 괜찮다고요? 듣자 하니, 몽골은 비가 많이 안 오는 나라다 보니 도로에 배수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단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오면 금세 이렇게 물바다가 되는 것이라고.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수륙양용 투어를 즐기고 있던 차, 자동차 위로 무언가가 투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세상에, 우박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나로선 난생처음 만난 우박이었다.

“우박 사이즈가 꽤 큰데?”

내 인생의 두 배를 산 엄마에게도 인생 두 번째 우박이란다.

“몽골에는 원래 우박도 자주 내리나요?”

“음, 1년에 두 번쯤?”

가이드가 또다시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1년에 두 번 있는 확률에 당첨되다니, 오히려 행운이라 해야 할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날씨 상태가 도저히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우리는 전망대 관람을 포기하고 울란바토르 인근 초원의 게르 캠프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 등장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초록빛 초원과 파란 하늘뿐이었다. 몽골의 이동식 천막집인 게르는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인생에서 꼭 한번은 체험해보고 싶은 특별한 숙소였는데, 울란바토르를 벗어난 여행자들은 높은 확률로 게르에서 묵을 수밖에 없다. 여행자들을 위한 게르 캠프가 곧 여행자들의 숙소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이렇게 집 같아 보이지도 않는 것이 제대로 집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늘 궁금했다. 게르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모든 짐을 말에 실어 이동할 수 있다고 하질 않나(최근에는 이곳 사람들도 트럭으로 옮기긴 한다.), 이 큰 게르를 단 30분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다고 하질 않나, 소름 끼치게 추운 몽골의 겨울도 끄떡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하질 않나…. 소문에 의하면 게르의 존재는 거의 판타지 장르에 가까웠다. 게다가 게르 안에는 사람이 살기에 필요한 것은 또 다 갖추고 있다니. 

좁다란 문을 통해 게르로 들어오면 겉보기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원형 공간이 나타난다. 여행자 숙소의 경우 조립해체가 가능한 침대가 인원수대로 들어서 있다. 어두컴컴하지 않을까 했지만, 해만 떠 있다면 아주 밝은 채광을 자랑한다. 천장 꼭대기에 창이 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어떡하냐고? 요즘은 게르도 21세기 게르인지라 전기도 들어오고 콘센트도 다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밤에는 장작불을 지펴 난방한다. 난로의 연기는 천장과 연결되어 있어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게르란 본디 자연 친화적인 숙소인지라, 벽의 역할을 하는 가죽 천을 슬쩍 걷어내면 바로 초원이 있다. 그러니까 그냥 초원 한가운데에서 뚜껑을 덮고 자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은 즉…. 벌레들이 들어온다는 얘기다. 파리나 꿀벌이 왱왱거리며 돌아다녀서 식겁했는데, 대부분 원형 천장 꼭대기에서만 돌아다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외면이 가능했다. 풀벌레도 종종 들어온다. 다행인 것은 그 벌레들의 형체가 그렇게까지는 혐오스럽지 않았다는 것이고, 벌레라면 귀신보다 싫어하는 나조차도 적당히 감내가 가능했다.



초원의 오아시스인 어기호수의 호숫가에서 보낸 게르는 가장 버라이어티한 게르였다. 오지로 간다는 느낌이 들더니, 어느 순간부터 통신망이 아예 먹통이 되었다. 배터리만 잡아먹을 것 같아서 그냥 휴대폰을 껐다. 도착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한낮에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꼼짝없이 게르 안에 갇혀 침대에서 뒹굴었다. 휴대폰은 이미 먹통이니, 가져온 책이라도 읽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전기가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할 일이 없네. 낮잠이나 자자.”

게르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와 시시때때로 들리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어기호수에서의 밤잠은 조금 더 힘들었다. 샤워장의 온수 공급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소문에 의하면 그 온수마저도 물이 졸졸 흘러나와 샤워할 만한 여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화장실 곳곳에 붙어있는 벌레들의 포스가 남달라서 나는 이날 샤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 안소정

밤이 되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기온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빨리 불을 지펴야 하는데, 게르 캠프 직원들의 일하는 속도가 영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 챙겼던 무스탕을 꺼내 입고 핫팩을 온 손과 발에 두르고 벌벌 떨면서 빨리 불만 지펴주길 기다렸다. 패딩 챙기란 말이 구라가 아니었군요….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장작에 불을 지폈지만, 며칠간의 장마로 잔뜩 수분을 머금은 장작들은 불이 제대로 붙어있기를 거부했다. 붙으면 꺼지고 붙으면 또 꺼지길 반복하던 밤, 핫팩에 의존해 춥고 긴 밤을 버텼다. 7월의 이야기다.      

다음날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하라호름에 들렀다. 전날 밤의 추위는 어디로 갔냐는 듯, 이날은 낮 기온이 30도까지 올랐다. 무스탕을 입고 시작했던 아침이었지만, 서서히 봄옷으로, 여름 반소매로, 나는 한 꺼풀 한 꺼풀 탈피하듯 벗어나갔다.

게다가 우리를 나르던 승합차는 에어컨 시설이 부실해 더위를 앓는 강아지처럼 헥헥대며 긴 이동 시간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창문이라도 실컷 열어뒀지만,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흙먼지의 습격에 창문을 모두 닫아야만 했다.



이날 저녁에는 쳉헤르 온천으로 이동했다. 이곳 또한 휴대폰이 전혀 터지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몽골에서 흔치 않게 침엽수림을 만날 수 있는 산지이기도 했다. 낮에는 햇빛이 눈이 부시게 쏟아져 내리더니, 해가 지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돌변했다. 오들오들 떨면서 무스탕을 다시 껴입었다. 7월 맞아? 여기 7월 맞냐고!!!

“자, 오늘 밤 춥습니다. 기온이 4도까지 떨어진답니다. 다들 단단히 껴입고 캠프파이어 하러 나오세요.”

가이드가 게르 안을 돌아다니며 충격적인 말을 전달했다.

“헉, 4도요…? 빨리 게르 안에 불이나 지펴주세요. 추워 죽을 것 같아요.”

하루 안에 사계절을 다 만났다. 낮에는 반소매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다가, 밤에는 무스탕을 껴입고도 오들오들 떨다니. 이것이 바로 일교차 큰 지역의 위엄인가. 오들오들 떨면서도 캠프파이어 앞에 가서 춤추며 엉덩이를 씰룩대니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몽골 여행을 버킷리스트로 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쏟아질 것 같은 초원의 별이 아닐까? 나도 별구경을 간절히 원했는데, 매일 비가 쏟아지니 아무리 몽골이어도 별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었다.

“여러분, 오늘이에요. 하늘에 구름도 별로 없고, 오늘이야말로 별을 보셔야 합니다.”

추워서 죽을 것 같았지만, 이왕 온 김에 할 건 다 하고 볼 것도 다 봐야 했다. 7월에 떠났으나 추운 겨울 노천욕 즐기듯 온천탕에서 푸근하게 별을 바라보았다.

“밤에 별 보러 언덕배기까지 올라갈 사람 있어요? 불빛이 아예 없는 곳에 가야지 별이 더 잘 보인다고요.”

보조 가이드가 별을 보기 위해 이미 운전기사를 섭외해놓았다는 소식을 소곤소곤 알렸다. 기존 패키지 일정에 없는 내용이니 조용히 하라는 당부까지 했는데, 이렇게 책에 공개까지 하게 되어 조금 죄책감이 든다. 10명 정도가 모인 밤 12시, 영상 4도의 여름. 언덕 위로 올라가 돗자리를 깔고 별 아래서 한껏 떠들며 웃다 내려왔다. 몽골에서 별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다음날도 먹구름, 그 다음날은 세찬 비가 또 내렸으니까.


테를지에서 묵은 마지막 게르는 영상 15도의 비교적 포근한 밤과 함께했다. 게르 안이 홧홧해지니 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이날 엄마는 애써 직원이 붙여준 불을 끄고 자느라 애를 먹었다. 소문에 의하면 내가 자는 동안 화장실에서 물을 길어오고 별짓을 다 했단다.





* 이 글은 <웰컴 투 삽질여행>에서 발췌했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05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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