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를 이용하는 모든 승객들은 아마 비행 중 터뷸런스를 경험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약한 터뷸런스만 경험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순간적으로 고도가 변화하는 Moderate Turbulence 이상을 겪어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고등학생 시절 미국을 가던 길에 순간적으로 항공기가 훅 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 있었고 당시엔 어린 나이였기에 정말 무서워서 안전벨트를 꼭 잡고 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이야 강한 터뷸런스를 겪어도 항공기의 구조적 손상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애초에 Severe 이상의 발생 지역은 여러 정보를 통해 지나가지도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현재 독자 여러분들이 타는 항공기들은 여러 최신 장비들을 통해 많은 기상 상황에 대해 정보를 얻고 항상 안전한 비행을 추구한다. 하지만 필자가 학생시절 타던 항공기는 훈련용 항공기였기에 민항기와 같은 최신 장비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순히 Pirep (Pilot Report)와 관제사님이 주는 정보 혹은 지상에서 브리핑 때 획득한 기상정보로 항로를 계획해서 다녔어야 했다.
<훈련용 항공기인 C172의 Cockpit, 아날로그 계기에 의존하여 비행하여야했다.>
하늘이 너무 높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어느 가을 오후, 말띠라 그런지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비행을 하러 공항에 갔다. (필자는 장거리 비행이 있으면 비행전엔 물과 음식의 섭취를 최대한 줄이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당일 비행은 애리조나의 피닉스에서 Page라는 도시를 거쳐 라스베가스까지 가는 비행이었다. Page는 그랜드캐니언의 북쪽에 있는 도시인데 한국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horseshoe Band라는 유명한 협곡이 있는 곳으로 그랜드캐니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겐 꽤나 인기가 있는 소도시였다. 해당 공항의 남쪽에서부터 접근을 하게 되면 좌측으로 Horseshoe Band를 볼 수 있는데 아침 점심 저녁 어느때가도 장관이지만 특히 노을이 질때 보는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던 기억이 있다.
<Horseshoe Band의 절경 이런 장관을 하늘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조종사의 특권인 것 같다.>
이제 비행계획서를 제출하고 날씨와 NOTAM등 비행에 필요한 브리핑을 끝마친 뒤 청명한 가을 날씨와 함께 항공기는 이륙을 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날은 바람 한점, 구름 한점 없는 비행하기 아주 좋은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당 공항의 출항절차를 따라 출항을 하고 접근관제소 관제사님들의 아주 기분 좋은 Good day!라는 인사들과 함께 Page공항까지 순항을 하고 있었다. Page 공항은 그랜드캐니언 북쪽에 있기에 고도가 굉장히 높은 지역이다. 특히나 그랜드캐니언 동쪽에 Flagstaff라는 도시를 옆으로 지나쳐가야하는데 해발고도가 상당히 높았고 해당 지역을 비행 할 땐 항공기의 최대상승한계에 거의 도달해서 비행을 했어야했기에 최대한 눈으로 보고 높은 지형지물을 피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행히 Page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아직 해가 떠있었기에 좌측의 그랜드캐니언과 우측의 많은 산들의 절경을 감상하며 요리조리 고고도 지역을 잘 피해 잠이 들정도로 아주 순조로운 비행을 하였다.
Page 공항에 착륙하면서 "정말 여기는 뷰 맛집이고만!" 하면서 안전하게 착륙을 하였고 해당공항에 FBO (조종사판 고속도로 휴게소 정도의 느낌이다.)에서 커피와 쿠키를 즐기고 재급유를 한 다음 다시 라스베가스를 향해 지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라스베가스는 해당공항의 남서쪽에 있었지만 그랜드캐니언의 북쪽을 통해 날아가는 경로를 계획했기에 생각보다 산악지형의 영향은 덜 받는 지역이었고 서서히 저물어가는 노을과 함께 탁 트인 미국의 대평원과 간간히 보이는 시티뷰를 즐기며 North Las Vegas Airport에 또 한번 안전한 착륙을 하였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만 보면 "뭐야 왜 꼭 살아서 돌아가야한다는거야?" 라고 생각하실 독자분들이 많을 것 같다. 자 오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라스베가스에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The Strip이라 부르는 라스베가스의 메인거리에서 유명한 분수쇼마저 감상한 뒤 다시 피닉스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다들 공항에 모였다. 라스베가스에서 머무른 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다라고 다짐한 나의 결심은 돌아가는 길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라스베가스 공항에서 이륙한 시간은 시간이 꽤나 늦은 밤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8시 9시정도로 기억이 난다. 이러한 야간 비행은 눈으로 지형지물을 확인할 수 없기에 항공기에 내장되어 있는 GPS, VOR과 같은 여러 항법장치들을 같이 활용하여 비행을 하게 된다. 피닉스로 오는 길에는 거리를 조금 줄이기 위해 더욱 북쪽에 있는 Page까지 가지 않고 Flagstaff와 그 옆의 Sedona라는 도시쪽으로 남하한뒤 피닉스로 돌아오는 경로를 택했다. 이를 통해 연료도 줄일 수 있고 비행시간도 줄일 수 있었기에 확실히 이득이라 판단했단 것이다.
<라스베가스에서 입출항하며 볼 수 있는 시티뷰. 아직도 전율이 느껴진다.>
라스베가스는 도시 주변으로 산이 있었지만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편이고 GPS를 활용하여 비행을 하고 있었기에 꽤나 순조로운 비행이었다. 여름철엔 너무 덥기에 지상의 열기가 상승해 상공의 난류를 일으키는 Convective Turbulence라는 것을 걱정해야 했겠지만 필자가 비행하던 날엔 날씨가 선선해 정말 쾌적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라스베가스 출항관제소에서 "Contact Albuquerque center Good day!"라는 말에 역시나 Good day!라는 인사와 함께 다시 네바다에서 애리조나주로 넘어왔다. 애리조나에 넘어와서도 순조로운 비행은 계속 되었다.
밤하늘의 별은 민가 하나 없는 주변과 대비해 너무나도 밝게 빛나고 있었고 이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감동에 아주 가득 차있던 순간 갑자기 관제사님이 급하게 우리를 불렀다. "Cessna 0000 Do you need flight following? you are in mountaneous Area."라고 물어봤는데 이는 "ㅇㅇ아 너 산악지형인데 우리가 레이더로 경로 확인해서 관제 해줄까?" 라는 의미이다. 당시에 너무 편한 비행을 하고 있었기에 옆자리의 Safety Pilot과 상의를 해서 우리는 GPS있으니까 괜찮아요! 라는 답변을 하고 "아무리 밤이라도 한번도 안물어보던 저런걸 왜?"라는 생각을 하며 비행을 지속했는데 이 생각은 곧 나의 오만함이었음을 알게해줬다.
비행을 지속하던 도중 Flagstaff 근처에 들어서자 약간의 터뷸런스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비행할 때 필자의 학교는 서쪽에 태백산맥이 존재하였기에 이정도의 터뷸런스는 일상이었고 이제 슬슬 비행에 자신감이 올라왔기에 "에이 이정도 터뷸런스는 껌이네~" 하면서 비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내 터뷸런스는 조금씩 강해지기 시작했고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GPS의 관측 범위를 더 늘려 해당 지역의 고도를 확인했더니 산악지형에 근접했음을 깨달았고 그래서 터뷸런스가 심한가보다 라고 단순히 생각을 했던 것이다. 산악지형에서의 터뷸런스는 더욱 심각한데 이를 Mountain Wave라고 부른다. Mountain Wave는 강한 바람이 산맥을 넘을때 산맥의 영향으로 파동이 생기고 이로 인한 상승 및 하강기류에 의한 난류를 말하는데 범위가 100NM (약 190KM)까지 퍼질 수 있으며 상당히 강한 난기류를 일으킨다.
<위의 지도에서 보이는 130은 13000ft를 말한다. 즉 고도가 약 4km가까이 되는 엄청난 고고도이다.>
이러한 지형을 통과할 때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계기의 도움을 받아야하는데 야간이었고 인기척이 적은 동네 상공이었기에 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갖고 있던 차트들이 조종실 내에 벚꽃처럼 흩날리고 머리를 월미도 디스코팡팡처럼 이리저리 휘날리며 터뷸런스와 정신없이 싸우면서 계속 비행을 하고 있는데 아뿔싸 갑자기 좌측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바람과 터뷸런스가 항공기를 때렸다. 한국에서 비행하며 터뷸런스엔 면역이 생겼다 자부했는데 간만에 강력한 터뷸런스는 조금씩 겁이 나게 만들었다. 두번째 맞은 터뷸런스는 더욱 강력했고 어이쿠야 라는 탄식과 함께 항공기를 겨우겨우 안정시켰는데 항공기의 우측을 본 순간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항공기는 야간비행을 할 때 6개의 필수 라이트가 있는데 그 중에 NAV Light라 불리는 항행등과 Strobe Light를 켜고 비행 중이었다. 이 Strobe Light는 상당히 밝기에 주변을 어느정도는 식별 할 수 있는데 내 눈에 보인 항공기 우측 창문엔 조금 과장을 보태 약 200m 옆에 산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산과 충돌하기 일보직전이었던 것이고, 빠르게 항공기를 안정시키지 못했다면 아마 필자는 지금쯤 요단강 건너가 주님 곁의 어린양이 되어 뛰놀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 놀라 GPS로 주변을 확인해 본 결과 필자는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한 골짜기에 위치해 있었고 이는 정말 호랑이 굴에 들어가면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날 잡아먹어주세요~!라는 시그널을 보내는것과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잘 차리면 살 수 있다 했던가, 순간적으로 학교 다닐때 공부했던 것들이 SSD 부팅속도만큼 빠르게 머리에 떠올랐고 최대한 빠르게 고도를 상승시키면서 바로 Albuquerque Center에 Flight Following을 요청했다. 그러자 관제사는 "너 그럴 줄 알았다~"와 같은 말투로 산악지역을 벗어날 수 있는 방위와 고도를 불러줬고 등에 흐르는 수많은 식은 땀 줄기들을 옷에 적시며 해당 지역을 벗어나 안전하게 피닉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환하게 켜진 활주로의 빛들이 그렇게 반가운 적은 간만이었던 것 같다.>
피닉스 공항에 안전히 착륙을 한 뒤 시동을 끄고 항공기를 정리한 다음 다시 터미널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다리를 정말 후들거리며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후들거리는 다리로 안전히 착륙을 한 것도 참 대단한 것 같다. 아마 인간의 생존 본능이 아니었을까 싶다. 옆에 있던 Safety Pilot도 어느정도의 경력이 있는 조종사였는데 자기도 이렇게 아찔한 경험은 정말 오랜만이라며 둘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살아돌아옴을 축하했고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정말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란 걸 느낀, 제 2의 인생을 선물 받은 것 같은 밤은 이렇게 끝이 났다.
오늘은 터뷸런스에 관한 나의 오랜 기억을 꺼내봤다. 터뷸런스는 분명 조종사와 승객 모두에게 정말 불편한 존재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조종사도 기체를 안정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할 것이고 승객 여러분 역시도 불안하고 불편한 비행은 원하진 않을테니까. 하지만 터뷸런스가 강한 지역을 지나오면 또 항공기는 안정이 되고 그 밑으로 펼쳐진 수많은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인생 역시 터뷸런스가 강하게 치는 것 같은 때가 있지만 이는 또 언젠간 발 아래 펼쳐진 수많은 장관이 펼쳐지는 날이 있을 수 있단 뜻이겠지.
그럼 글을 줄이며 모든 분들이 또 한번의 활기차고 행복한 한 주가 되길 바란다! Have a safe F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