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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파일럿 Sep 22. 2023

나 다시 돌아갈래

이전 글들에서도 여러번 언급 되었듯 항공기는 항상 맞바람을 맞으며 이륙과 착륙을 하게 된다. 이는 이륙시엔 맞바람으로 인해서 더 많은 양력을 생성하기 때문이고 착륙시에는 맞바람을 통해 더 짧은 착륙거리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람이 없는 날은 어떻게 정해?"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한다. 


일단 Wind calm이란 기준에 대해 알아야하는데 이는 미국과 그 외 국가들의 기준이 조금 다르다. 미국은 FAA라 부르는 미 연방 항공청에서 정한 기준이 따로 있으나 그 외의 국가들은 대부분 ICAO라 부르는 국제기구에서 정한 기준을 사용을 한다. 왜 미국만 다르냐고 묻는다면 그건 필자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여튼 FAA의 기준에서 Wind Calm은 활주로 표면에서 측정한 바람이 3kts (약 5kph) 미만인 경우 Wind Calm이라 부르며, ICAO에선 1kts (약 2kph) 미만인 경우를 Wind calm이라 부른다. 즉 직역하면 바람이 잔잔하다는 의미이기에 바람이 없는 비행하기 아주 좋은 날씨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활주로의 한 켠엔 Windsock이라 부르는 바람을 알 수 있는 기구들이 있다.>


바람이 항상 많이 부는 한국에 비해 미국의 서부 지역은 바람이 잔잔한 경우가 많은데 물론 해당 공항 차트에 다 나와 있지만 이러한 경우 개인의 편의가 우선시 되기 때문에 활주로를 정하기가 참 애매한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은 대부분이 관제공역이기 때문에 이착륙시 관제사님들이 지정해주는 활주로로 접근하여 이착륙을 하면 되지만 미국은 Uncontrolled Airport 즉 비관제비행장이 많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스스로 알아서 접근과 이착륙을 수행해야하는 점도 참 어려운 점 중에 하나였다. 


그 날의 비행은 유타주의 남부를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이었다. 전 날 조금 먼 곳을 다녀오며 늦게 착륙했으나 아침 일찍 비행이 있었기 때문에 피곤함과 싸우며 지금 우리 학교는의 좀비와 같은 상태로 공항에 도착해 브리핑을 하였다. 사실 잠을 너무 못 잔 탓에 피곤했기에 날씨가 안 좋으면 비행을 캔슬 하고 집에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하늘도 참 야속하지 비행하고 싶은 날엔 비와 안개를 마구마구 퍼붓더니 그 날은 정말 구름 한점, 바람 조차도 없는 너무나도 청명한 날이었다. 현대인들의 스팀팩인 커피 한잔에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으며 조종석에 탑승해 항공기를 이륙시켰다. 그나마 커피를 마신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고 그 날은 Monument Valley 상공을 날아서 가는 항로를 계획 했기에 기대를 가득 하며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익숙한 출항 절차와 또 한번 Good day!로 배웅을 해주는 쾌활한 관제사님의 목소리는 피곤했던 상태에서 한 알의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되어 기분이 좋아졌었다. 


옆자리 조종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몇시간이 지났을까 항공기는 유타주의 경계에 들어왔고 말로만 듣던 Monument Valley의 광경이 눈 앞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랜드 캐니언, Horseshoe Band, 등 여러 지역을 방문해 봤지만 그 많은 미국 자연의 장엄함 중에서도 이 곳은 특히나 정말 입을 다물지 못할정도의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고, 피곤함은 어느새 싹 다 가신채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감격이 온 몸을 휘감으며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고 있었다. 


<영화 Forrest Gump에 나온 Monument Valley, 필자는 Forrest Gump의 열렬한 팬이다.>


Monument Valley의 감동이 어느정도 지났을까, 우리는 계획했던 공항에 거의 다 와갔고 해당 공항에 착륙하기 전, ATIS(Automatic Terminal Information Service, 한시간마다 기상, 사용 활주로등 이착륙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알려주는 방송이다.)를 청취하며 사용 활주로, 기상 정보등을 수신하며 착륙 계획을 다시 한번 확인 하고 있었다. 해당 공항엔 약간의 바람이 불고 있었으나 착륙에 큰 무리가 줄 정도는 아니었고 주변 상황을 모니터링 하며 활주로에 아주 스무스한 버터 랜딩을 하였다. 아침엔 분명 피곤했으나 영화에 나온 그 곳을 봤다는 감동은 순간적으로 피로를 잊게 했고 청명한 가을 햇살 아래 다음 비행도 기분 좋은 비행이 될 것이라 예상하며 커피 한모금에 다시 한번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다시 이륙 할 시간이 되어 항공기에 탑승을 하였고 처음 가보는 공항이었기에 출항절차를 다시 한번 숙지하느라 살짝 긴장은 되었지만, 이제 집에 가서 집 앞의 IN n Out의 햄버거를 먹고 달콤한 낮잠을 잘 생각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졌었다. 다시 한번 ATIS를 통해 여러 정보를 획득한 뒤 해당 활주로로 이동해 집에 가기 위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우려와는 달리 주변에 트래픽이 없었기에 출항은 생각보다 순조로웠고, 비행 전 마신 커피의 카페인은 내 세포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서울 유명 클럽의 댄서들 처럼 쉐킷쉐킷 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퇴근길은 항상 너무나 즐겁다.>


순조로운 이륙 후 다시 애리조나 주로 들어왔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필자는 애리조나 주의 피닉스에 살고 있었기에 애리조나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집에 왔단 생각이 들었다. 해외 여행을 하다 서해, 동해, 남해에 들어왔을 때 "아 이제 집에 다 왔구나." 라고 느끼는 여러분의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익숙한 관제사의 목소리와 익숙한 풍경은 가뜩이나 피곤해 했던 찰나에 한 줄기 희망과 같았다. 하지만 딱 한가지 고려하지 못했던 점이, 피닉스로 가는 길에 세도나라는 도시에서 재급유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유타에서 급유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재급유를 하지 않았고 세도나라는 도시에서 급유를 하도록 계획했던 것이다. 물론 세도나 역시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에 그 곳을 다시 가볼 수 있다는 점 역시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Sedona의 풍경, Sedona는 미국내에서도 기운이 좋은 지역으로 꼽힌다.>


세도나는 참 아름다운 곳이지만 조종사들에겐 에로사항이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첫번째로 세도나는 03과 21이라는 활주로를 사용하는데 03번 활주로를 사용하면 착륙시엔 괜찮지만 이륙시엔 바로 앞에 지형이 높은 곳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항공기의 최대 퍼포먼스를 이끌어내거나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순항고도까지 올라가야한다. 그대로 올라가다간 앞에 존재하는 지형과 충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도나는 비관제 공항이지만 트래픽이 상당히 많은 공항이다. 미국에선 자가용처럼 비행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역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러 세도나에 많이 방문하였다. 따라서 이 곳에 입출항 할때는 항상 많은 신경이 곤두섰던 곳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세도나 공항에 접근할 때는 크게 에로사항이 있진않았다. CTAF라 불리는 공용주파수로 다른 항공기의 항적을 파악하며 내 위치를 보고했고 03번 활주로에 안전히 착륙을 할 수 있었다. 착륙 후 터미널로 간 뒤 시동을 끄고 세도나의 명물인 쿠키를 먹으러 가는 발걸음은 무엇보다 가벼웠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FBO에는 커피와 다과 등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세도나 공항의 쿠키는 정말 맛있기로 유명했고, 늦은 오후에 가면 쿠키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행히 그 날은 쿠키가 여러개 준비되어 있었고 이 맛있는 쿠키를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빠져 정말 정말 피곤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날이에요."라는 말과 함께 집에 갈 준비를 끝마쳤다. 


<세도나 공항의 GPS기반 접근 차트. 지도에도 지형이 높다고 나와있다.>


쿠키와 커피를 다 즐기고 재급유도 끝났다고 하기에 다시 항공기에 탑승해서 이제 진짜 집에 갈 생각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딱 한가지 우려가 있었는데 보통 착륙시에 사용한 활주로를 이륙시에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필자는 03번 활주로로 착륙을 했기에 이륙도 당연히 같은 방향으로 해야했고 위의 지도에서도 보이다시피 03번 활주로로 이륙을 하면 바로 앞의 높은 산이 존재하고 있기에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공기에 탑승한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TIS를 청취했지만 ATIS에서는 야속하게 Wind Calm이라는 소식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날씨엔 Calm Wind Runway라는걸 적용할 수 있다. Calm wind Runway는 바람 풍속이 5kts미만인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인데, 당연히 바람이 한점도 없었기에 필자는 21번 활주로로 이륙을 해서 가면 되겠다는 생각에 21번 활주로로 이동을 했다. 활주로에 진입하기전 공용주파수에 "We are taking off from Runway 21 Southbound."라는 방송을 하고 활주로에 진입하려는 순간 왠걸 갑자기 조용하던 주파수에 "Are you taking off from 21?" "You are not supposed to take off from 21 man."과 같은 나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조용하던 공용주파수가 광장시장 마약김밥집 마냥 시끄러워지니 조금 당황했으나 다시 한번 "지금 Wind calm이기 때문에 Calm wind runway를 사용할 수 있어!" 라는 말과 함께 활주로로 진입하려 했으나, 역시나 돌아오는 건 여러 사람들의 질타뿐이었다. 하지만 내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여러대의 항공기가 03번 활주로로 접근 중이라는 소식에 의지를 꺾고 03번 활주로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너무나도 피곤했기에 5분이라도 집에 일찍 가고 싶었던 필자는, 투덜거리면서 03번 활주로에서 이륙을 한 뒤, 소심한 반항의 일환으로 관제구역을 벗어나자마자 Phoenix APP에 컨택을 했고 옆자리 조종사가 "쟤네는 자기네 비행하는 거 밖에 잘 몰라서 그래, 너무 신경쓰지마."라는 귀여운 위로와 함께 피닉스로 돌아와 다시 한번 버터 랜딩과 함께 Monument Valley의 감동과 세도나에서의 삐짐이 공존 했던 그 날의 비행도 안전하게 끝이 났다. 


오늘은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여러 감정이 들었던 날이라 평소보다 좀 길어진 느낌이지만 이정도는 "아유 쟤 진짜 억울했나봐!" 와 같은 애교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바람이란 느끼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한 여름에 뙤약볕에 있는 사람에겐 강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기분 좋음이라면 조종사에겐 안전한 착륙을 방해하는 눈엣가시 같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결국 인생 역시 모진 풍파가 닥치겠지만 이 것 역시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조금은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요소로 변하지 않을까? 자 그럼 이번 한주도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Have a Safe F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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