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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나 Nov 14. 2023

인간의 꽃과 열매


변질된 선에서 솟는 것만큼 지독한 악취도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도 신의 경우에도 한낱 썩은 고기일 뿐이다. 만약 의식적으로 내게 선을 베풀려고 하는 계획을 품고 내 집으로 누군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될 경우 나는 그의 선행이 내게 베푸는 결과, 즉 그 선이라는 것이 내 핏속에 섞일까 두려워 입과 코와 귀와 눈을 흙먼지로 가득 채워 질식하게 만드는 저 아라비아 사막에 건조하고 뜨거운 모래폭풍을 피하듯 달아날 것이다. 그건 안 될 일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연스러운 악행을 당하는 게 낫다. 내가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추위에 떨 때 따뜻하게 해 주고 또는 수렁에 빠졌을 때 나를 끌어내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게 선을 베푼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의 일은 뉴펀들랜드종의 개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자선은 인간애가 아니다.                                       
p109

 나는 얼마 전까지 가능한 한도 안에서 닥치는 대로 자선을 베풀려고 해 왔다. 예를 들자면 길 가다 마주치는 거의 모든 자선 모금가들에게 내 계좌번호를 적어주며 자동이체 걸 수 있도록 서류에 사인을 해 주었고 휴게소 화장실에 붙어있는 딱한 사연의 스티커를 보면 볼일을 보는 동안 문자를 보내곤 했으며 내 눈에 딱해 보이는 이들에게 선뜻 정기적으로 후원을 했다. 그리고 최대한 무심한 척했지만 내심 그 사실이 뿌듯했다. 난 비교적 좀 더 선한 인간인 것 같아서.


나는 초라한 누더기 차림으로 호수에서 얼음을 자르는 어설픈 아일랜드 인부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나은 고급 옷이라 할만한 것을 걸치고도 덜덜 떨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몹시 추운 어느 날 물에 빠졌던 인부 하나가 몸을 녹이려고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는 바지 세벌과 양말 세 켤레나 껴입고 있었는데 모두 더럽고 낡은 것이었음에도 내가 내주는 여벌의 옷을 사양해도 좋을 만큼 내의를 잔뜩 갖고 있었다. 요컨대 이렇게 물에 빠지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정말 필요했던 일인 것이다.
p111

 그렇게 마구잡이의 자선을 행하면서 한편으론 의문스러웠다. 사람이 다른 이를 보고 불쌍하다 생각한다는 것이 괜찮은 것일까? 불쌍한 것과 불쌍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누가 정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이 어쩌면 자신의 생활 방식을 통해 그가 구하고자 하는 그 비참한 상황을 가장 열심히 더 만들어내는 사람 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1명의 노예를 판 수익금으로 나머지 9명의 노예들에게 일요일만 자유를 주는 위선적인 노예 주인과 다를 바 없다. 또 가난한 사람에게 부엌일을 시킴으로써 자비를 베푸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일은 자신이 하는 편이 훨씬 더 자비로운 일이 아닐까?
p112

 아프리카에서 자선을 베푸는 한 여인의 방송을 보았다. 그녀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한식당을 운영했고 직원으로 그 지역의 농아들을 고용했다. 그녀의 가게엔 14명의 농아가 일을 했다. 농아들이 계속 찾아왔지만 그녀는 더 이상 직원을 뽑을 수 없다고 했다.

 그녀의 가게에는 잘 차려진 한식을 팔았다. 부유한 손님들은 흡족히 음식을 먹고 돌아갔다. 그곳에서 번 돈으로 그 지역 아동들에게 빵을 사다 주었다. 아이들은 빵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서 그녀를 기다렸다. 빵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질서를 무시하고 뒤에서 뛰어나온 아이들은 빵을 얻었고 뒷줄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빵이 모자라 빈손으로 돌아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빈손인 아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빵을 나누어 주는 그 일이 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희비를 갈라놓았다. 질서를 무시하고 본능을 따른 아이는 웃고, 꾹 참고 기다렸던 아이는 슬픔에 빠졌다. 방송이 끝난 후, 빵을 얻지 못한 아이의 눈에 가득했던 절망과 슬픔이 그녀의 아름다운 한식당과 함께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식당에서 먹는 불고기와 돌솥비빔밥 값이면 빵 몇 개를 살 수 있을지, 아름다운 한식당 밖엔 몇 명의 농아가 이들을 부러워하며 고용의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그런 삐딱한 물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생활이 조금 어려워졌던 어느 날, 나는 그동안 해 왔던 후원을 하나씩 정리했다. 그 일로 내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정리한 후원금으로 내 삶의 부족해진 부분을 채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후원금을 정리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은 후원을 받던 이들을 갑자기 나보다 못한 위치에 데려다 놓았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내가 더 못한 위치의 누군가에게 내게 남는 것을 베푸는게 과연 진정한 의미의 선함일까 의심이 되었다.

 자선은 일류에 의해 높이 평가받는 거의 유일한 미덕이다. 아니 그건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러한 과대평가는 바로 우리의 이기심 때문이다.
이곳 콩코드에서 어느 화창한 날 건장하고 가난한 한 사람이 내게 마을 사람 하나를 칭찬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 남자가 가난한 이에게 친절을 베푼다는 것이다. 이들 자선가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의 정신적인 아버지들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p112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행을 베푸는 행위를 추켜 세운다. 자선은 항상 지나치게 미화된다. 그것은 선행과 자선, 그 행동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라고 소로우는 말한다. 그의 정확한 문장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행한 것은 자선도 선한 일도 아니었다. 내 밥그릇에 남는 것을 나눠 주는 것, 내가 모자라면 더 이상 나누지 않는 것, 그 정도의 일은 개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자선에 의당 따라야 할 찬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받쳐 인류에게 축복을 안겨준 모든 이들을 공정하게 대하기를 요구하는 것뿐이다. 나는 인간에게서 고결한 행위와 자비로운 마음을 가장 높이 평가하지는 않는데 그것들은 이를테면 인간의 줄기와 잎에 해당한다. 그 풀이 시들면 사람들은 환자를 위한 비천한 용도로, 그것도 주로 돌팔이 의사들이 애용하는 약초로 쓰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꽃과 열매다. 인간의 향기가 내게 풍겨 오기를. 그 성숙함으로 우리들의 인간관계에 풍미를 더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인간의 선함이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행위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늘 남아도는 것 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의식적이지도 않은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수많은 죄를 감춰주는 박애다. 자선가 자신이 헤어난 슬픔에 대한 기억으로 마치 공기처럼 인간을 감싸면 그것을 연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절망이 아니라 용기를 질병이 아니라 건강과 안정을 함께 나눠야 한다.
p113

 이 문단을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는지 모른다. 자선과 같은 선해 보이는 행동은 단지 잎과 줄기일 뿐이며 우리는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꽃과 열매를 맺는 데까지 자라가야 한다는 말.


 진실로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 일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으로 선함을 베푸는 존재가 아니라 늘 남아도는 것으로, 의식도 하지 않고 풍겨나가는 것이 선한 향기인 그런 사람, 소로의 문장 속에 그런 사람이 언젠가는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보면 헤어 나왔거나 헤어 나와야 할 슬픔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완전히 헤어 나온 슬픔에 대한 기억은 그 사람의 향기가 되고 그 향기는 다른 인간을 감싸 그를 온전히 위로할 수 있게 된다.  내 슬픔이 누군가에게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이 어찌 간절히 바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것만이  진정한 연민이자 최선의 선이라는 그의 말을 부정할 여지가 전혀 없는데.


  가진 슬픔이 조금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슬픔을 고치처럼 뒤집어쓰고, 누에처럼 죽었다가, 나비처럼 다시 살아 나와야지. 그것만이 인간이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인류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박애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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