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린뒤맑음 Mar 01. 2021

마케팅은 해야겠고 B2C 마케팅은 못 뚫겠어서

B2B 마케터가 되었습니다

마케터.

그 세글자가 박힌 명함을 너무나 갖고 싶었고, 회사에 속하지 않더라도 마케팅이라는 일이 타인을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취준생 시절부터 마케터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브런치에 글을 발행해왔다. 뭐 어찌저찌 마케팅으로 이제 겨우 밥벌이 하는 사람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내 직무가 그 이름도 낯선 건설업 B2B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건설업계가 어떤 곳인지, B2B 마케팅은 또 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 일을 일단 해보기로 결심했는지에는 크게 다음의 4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1. B2C 마케팅보다는 낮았던 B2B 마케팅의 취업의 문턱


제목에 쓴 것처럼 이 이유가 가장 컸다. B2C를 하고 싶었지만 채용에 번번이 떨어졌고 나에게 오퍼를 준 곳은 B2B 기업이었다. B2C 마케팅은 B2B 마케팅보다는 역사도 깊고 그만큼 연구된 바도 많아 이미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론과 고인물이 형성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학부 때 배웠던 마케팅 이론과 참가했던 마케팅 공모전도 모두 B2C 마케팅이었다. 또 구직자 입장에서도 실생활에 잘 와닿지 않는 조선, 에너지, 건설 같은 산업재보다 일상에서 보는 식품, 의류, 화장품 등 소비재를 더 친숙하게 느끼고 관심갖는 게 자연스럽다.


이 풍부한 레퍼런스와 높은 인지도의 환상의 콜라보로 B2C 마케팅으로는 수많은 구직자가 몰려 내가 취업에서 가장 피하려고 하는 요소인 극악의 경쟁률이라는 멋진 결과가 나타난다. (물론 이시국에는 어디든 취업경쟁이 빡세긴 하다)


B2B는 B2C에 비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역사도 짧고 인지도도 낮기 때문에 취업의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느꼈다. 내가 최근에 지원했던 B2B, B2C 두 기업 모두 내부 추천으로 내 채용이 진행되었는데 직무 지식과 스킬에 대한 질문의 깊이는 B2B 면접에서보다 B2C 면접에서 훨씬 깊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가고 싶어서 빡세게 면접준비하고도 B2C 면접에서는 탈탈 털렸던 내가 상대적으로 준비를 덜하고 갔던 B2B 면접에서는 감사하게도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Image by Nattanan Kanchanaprat from Pixabay


2. B2C업계 급여 수준보다 높은 B2B업계 급여 수준


직장인이라면 대체가 어려울 정도의 특출난 존재가 아닐 경우 회사에서 정하는 동년배 구성원들의 급여 수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고, 회사의 급여 수준은 보통 그 회사가 속한 업계가 어떤 업계인지에 따라 그 범위가 결정된다. 업계에서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높을수록 회사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되고 직원들의 급여수준도 높아지는 구조이다.


업계의 수익 구조와 직원 급여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많겠으나, 정보가 제한된 취준생의 판단을 위해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다소 심플하고 극단적으로 비교해보면 개인에게 천원짜리 컵라면을 파는 식품업계보다는 기업에게 수 억원짜리 중장비를 파는 건설업계가 더 고부가가치 업계일 것이다. 따라서 B2B업계의 전반적인 급여 수준도 B2C업계보다는 높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왕 제조업 기업의 인하우스 마케터가 될거라면 B2C 소비재 업계보다는 부가가치가 높고, 급여 수준도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B2B 산업재 업계를 선택해보기로 했다. 돈은 중요하니까!



3. B2B 마케팅의 성장 가능성


B2B 마케팅은 B2C 마케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분야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기존 대면 방식의 B2B 영업에 제약이 발생하며 최근 들어 B2B 마케팅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다. 그런 측면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코로나19 덕분에 취업한 케이스라고도 볼 수 있다.

 

여튼 신생 분야라는 건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개척해야 해서 고생길이 활짝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그만큼 내가 의견을 제안하고 내 재량을 발휘할 여지도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회사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하는 해외취업을 놓지 않고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내가 조직에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업무 경험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마케팅 조직도 작고 마케팅 체계도 덜 잡힌 B2B 업계로의 진입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다.



Image by Gino Crescoli from Pixabay


4. 그밖의 심리적, 개인적 이유


1) 일단 일해보고 판단하자


다양한 종류의 불합격을 반복하며 노동시장에서 가치없는 노동력 판매자임을 확인한 내가 이 기약없는 취준을 이어가기보다는 일단 나에게 계약을 제의한 곳에서 일해보자라는 생각이 컸다. 다니다가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두면 되지 않는가.


2) 직무 고집은 컸지만 업계 고집은 특별히 없었음


마케터가 될거야! 라는 고집은 있었지만 무슨 산업의 마케터가 될거야! 라는 고집은 없었다. 소비재 세일즈를 하면서 어떤 물건이 나에게 친숙하고 좋은 것과, 그게 일의 대상이 되었을 때 내가 즐거운가는 다른 얘기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업계에 대해 내가 그쪽 일을 즐길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B2C 마케팅으로 내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B2B 마케팅으로도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건설업 마케팅이 재미가 없다고요? 식품일도 딱히 재미는 없던데... 난 그냥 먹는 걸 좋아하는 먹순이었을 뿐. (옴뇸뇸)


3) 남성적인 업계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


나는 평생을 남녀성비가 균형잡힌 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왔다. 가족구성도 엄마 아빠 나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여2 남2 가정이였고, 유초중고대를 공학으로 다니며, 대학교 전공도 경영학이었으니.


그랬던 내가 다녔던 전 직장은 인생 처음으로 내가 속한 집단 대부분의 구성원이 여자였던 곳이었다.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고 유대감이 있다는 점은 무척 편했고 좋았지만, 동시에 서로가 너무 마음이 잘 통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내 각도랑은 다른 각도를 만나는 게 내 삶의 비전인데 여긴 다들 너무 똑같아! 나 스스로가 한쪽으로 치우쳐진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의외로 일터에서의 성비 균형도 직장 선택 시 고려할 요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직장에서는 성비가 균형잡힌 업계, 또는 남성적인 업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안 그래도 마케팅은 여성분들이 많이 활약하시는 분야이다. 마케터로서 여자들과 오래도록 함께 일할 여자인 내가 흔히 말하는 아재스러운 업계의 대표주자인 건설업에서 마케팅을 하는 것도 균형잡힌 내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취업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 중 하나이고, 모든 취업에는 당연히 나름의 선택의 이유가 있다.


건설업 B2B 마케팅에 대해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내가 뭐라도 되는 듯이 이렇게 글을 써도 되나 한참 고민했지만. 신입사원의 지식 수준과 시점에서 내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생각하고 있는지, 2021년 2월 현재의 나라는 사람의 일 선택 기준은 뭔지 한번쯤 정리해보는 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스팅을 발행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참 많이 닮아있다. 2021년 2월의 나에게는 이런 게 중요했고, 그래서 이렇게 살기로 선택했다.




배경사진: Image by Dimitris Vetsikas from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