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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린뒤맑음 May 24. 2023

고집이 필요할 때가 있다

고집있다는 건 그만큼 주체적이고 색깔이 분명하다는 것

고집이 세다는 말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회사에서 채용할 때 거르는 후보자, 결혼하면 안되는 사람의 특징이 바로 고집 센 사람이라 하던가. '고집 세다'라는 표현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타인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고, 단체생활에 융화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뭍어 있다.


과연 고집은 나쁜 걸까?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화합과 양보, 배려와 희생, 둥글둥글한 표현과 정서적 유대, 오랜 근속연수, 가정의 평화와 같은 게 우선시되는 가치라면 조직 내 모난 돌의 고집은 나쁠 것이다. 누군가의 아프지만 맞는 말, 대단한 인사이트가 뭣이 중하겠나. 그 고집 때문에 더 중요한 게 흔들린다면 말이다.


커리어 초반에는 사실 난 참 고집이 없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뭘 해본 경험이 없으니 자신감이 없었고 의견이 없었고 내 인풋도 없었다. 회사에도 별다른 제안이나 건의를 하지 못했다. 그저 네네하며 주어진 일만 수동적으로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지 못했다. 고집이 없어서. 아무래도 좋아서.


하지만 고집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살다보면 내 입장을 상대에게 분명하게 전달해야 할 때가 온다. 광고주로서 에이전시에게 회사의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거나, 마케터로서의 나의 입장을 개진해야 한다거나, 또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켜내야 하는 순간도 온다.


고집 자체는 나쁘지 않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나와 다른 것을 배우고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고집있는 마케터를 응원한다. 고집이 있다는 건 그만큼 주체적이고 본인 의견에 자신 있으며 본인의 색깔이 분명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금씩 경험치를 쌓아나가며 서서히 의견과 고집이 생기는 나 자신도 응원한다. 마케터 입장에서 다른 부서 설득하느라, 에이전시와 커뮤니케이션하느라, 모두가 나몰라라하는 일을 어떻게든 제대로 끝마치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도 그렇게 점점 고집이 생기고 있다. 경력과 고집은 그렇게 함께 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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