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의 씁쓸한 현실
시민구단 대구FC의 FA컵 우승과 함께 K리그가 끝이 났다.
올 시즌 K리그는 나름 볼만한 스토리와 컨텐츠가 많았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그랬듯 K리그팬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씁쓸)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얼마 전 국내 공중파로 중계된 베트남 국가대표팀의 스즈키컵 결승전을 보고나서이다.
본래 이 대회는 국내에서 중계조차 되지 않는 변방의 작은 축구대회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팀이 참가하는 아시안컵이나 월드컵보다는 그 규모가 작을지언정 동남아에서 스즈키컵은 그 어떤 스포츠 이벤트가 부럽지 않을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대회이다. 동남아에서 스즈키컵은 이미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린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동남아 국가대표팀들이 월드컵 본선 진출하기도 힘들뿐더러 아시안컵 본선에서도 중동아시아/동아시아에 밀려 제 힘을 쓰기 어렵기 때문에 동남아 대표팀끼리만 경쟁하는 스즈키컵이 이들에겐 뜨겁게 경쟁할 수 있는 대회이다. 일본의 '스즈키'사가 이 대회를 후원한지도 이제 만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2002년 히딩크를 연상케할만큼 엄청난 인기를 현지에서 구가하게되면서 국내에서도 베트남 축구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 천정부지로 솟은 EPL 중계권료 때문에 EPL 중계를 포기한 SBS가 국내 최초로 스즈키컵의 중계권을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K리그 중계권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FA컵을 제외하면 정규리그는 단 한경기도 중계하지 않은 SBS가 동남아 축구대회를, 그것도 황금시대에 드라마까지 결방시키면서 중계한데에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SBS가 드라마까지 결방하면서 이 경기를 중계한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 축구는 케이블에서 중계가 되곤 하는데, 일반적으로 EPL 경기의 시청률은 1% 내외라고 한다. 보통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경기이거나 국내 선수(손흥민)의 활약 여부에 따라 시청률이 더 오르곤 하는데 그래도 2%를 넘기는 일은 흔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스즈키컵의 준결승 시청률이 1%를 넘은데 이어 결승전 1차전의 시청률이 무려 4%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한국시리즈 시청률 보다 높은 시청률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힘입어 SBS는 투자를 단행했다.
중계진을 현지로 보내 현장음을 오디오로 담으면서 동시에 박항서 감독 전용 카메라를 현장에 배치하여 경기내내 박항서 감독의 열정적인 제스처를 모두 담아내기로 한 것이다. 그냥 현지영상을 송출받아서 중계만해도 되는데 SBS는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기로 했고, 이 경기를 케이블 방송인 SBSsports가 아닌 공중파 방송인 SBS로 송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과..
스즈키컵 결승전과 이후에 나온 시청률 기록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K리그는 유럽 선진 축구에 비해 재미없다는 이유로 외면받아왔다. 그런데 우리보다 축구실력이 현저히 낮은 동남아시아의 축구 열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한국 축구팬들은 박지성, 손흥민 선수와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팬이라서 '보는 눈이 높다.' 라는 말마저 있었다.
축구팬들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과거에 자동차를 처음 개발했던 Henry Ford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고객에게 물어보고 제품을 개발했다면, 자동차가 아닌 더 빠른 마차를 개발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축구팬들도 자기자신들이 어떤 축구를 원했는지, 어떤 축구에 소비를 하는지 몰랐던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K리그는 스스로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보다 외부에서 핑계를 찾고만 있었다.
'K리그가 살아야 한국 축구가 살아 난다.'
'과감한 투자를 해야 K리그가 살 수 있다.'
축구인들은 늘 투자가 부족하다는걸 어필한다. 그렇다면 K리그가 성공하기 위해서 얼마를 투자해야 할까? 얼마를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투자와 비용은 한 끝 차이인데, 돌아올 수 있는 기대가치가 투입된 비용을 초과할 때 투자라고 한다. 지금 K리그는 돈을 넣는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한다.
현재 K리그 클럽 전부가 적자이며 2부리그 클럽은 대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투자를 주장하려면, 투자를 통해 성공적인 클럽을 사례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추가로 글을 써볼 예정인데, 필자는 전북 현대가 K리그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현실이 불편하다. 이를 반박할 글을 조만간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1부리그의 몇몇 팀이 매출을 수백억 발생했다곤 하나 이런 매출은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이루어진 광고계약들이다. 모기업의 스폰서 계약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금액이 정말 합당한 금액일까? 만약 합당하지 않은 금액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는 현대중공업스포츠의 울산현대는 지난해 모기업 제품인 현대엑스티어의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 뛰었다. 현대중공업은 경기장내 LED광고판과 메인스폰서에 대한 광고대금으로 지난해 96억원을 지급했다. (출처)
2017년 울산현대가 신고한 매출은 261억원. 이 중 모기업 계열사간 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매출은 199억원이다. 전체 매출 비중이 76%에 이른다. 놀랍게도 울산현대의 2017년 입장권 수익은 3억 4천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경기장 티켓을 1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지난해 1만원을 지불하고 경기장에 온 관객이 3만 4천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게 비정상처럼 보이는게 필자뿐일까..?
올 해 창단 이래 최악의 부진을 겪은 FC서울은 출범이후부터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던 유소년 아카데미사업인 FOS(Future of Seoul)의 규모를 내년부터 1/4로 축소운영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최용수 감독은 팀의 위용을 되찾겠다면서 외국인선수 국내 대표급 선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래의 이미지는 올해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강등된 '프로축구단' 전남 드래곤즈의 SNS 활용 사례의 일부이다. 놀라운 점은 아래 이미지가 무려 올해, 2018년도 포스팅이라는 사실이다.
급여를 받는 직장인들의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마케팅이라는 사실이 정말 놀라운데, 더 놀라운건 이런 회사의 1년 운영비가 100억이 넘는다...
모기업 POSCO에서 포항스틸러스와 전남드래곤즈에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필자가 포항 스틸러스 구단 관계자라면, 이런 팀과 동일한 지원을 받는 사실에 매우 괴로울것 같다.
전남 드래곤즈의 프론트는 인스타그램이 어떤 플랫폼이며, 자신들이 이 플랫폼으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를 전혀 고민하지 않은채 그저 '일'을 하기만 한 것이다. (지금도 이런 고민을 하고있는지 의문이다..)
야구 때문에 팬이 없고, 안방으로 중계되는 EPL에 비해 축구의 질이 낮아서 팬이 없고,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영입하는 중국의 슈퍼리그, 일본의 J리그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하여 스타 선수를 못사온다는 변명뿐이다.
그렇다면 K리그보다 수준이 낮고, 세계적인 스타 선수도 한 명없는 태국 프리미어리그와 말레이시아 프로리그의 성장은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손흥민 선수 같은 한국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던(뛸 수도 없지만)스즈키컵의 국내 시청률 20%는 또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남 일처럼 핑계만 대지말고 살 궁리를 해야하는거 아닌가)
지금 K리그는 이미 그 어떤 리그보다 과하게 돈을 낭비하고 있는 리그라고 생각한다.
K리그의 리딩클럽으로 분류되는 FC서울의 2017년 성적표를 근거로 평가해보겠다.
2017년 FC서울의 평균관중은 1만 6천명대라고 한다. (출처)
이 때 FC서울의 운영비는 대략 420억원대로 추정된다. (출처) 매출원가와 판매비, 관리비를 계산한 금액이다.
보통 IT 기업에선 유저 한 명을 유치하는데 투입된 비용을 계산하곤 한다. 이를 CAC(Customer Acquisition Cost)라고 한다. 상세설명 참고. 이걸 토대로 효율적인 마케팅을 해서 수익구조가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FC서울이 2017년 지출한 금액이 420억원이고, 이를 통해 경기당 1만 6천명을 모객했다. 정규리그 홈경기가 19경기였으므로 이를 계산하면 2017년 한 해만 30만 4천명 정도를 모객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CAC를 추산하려면, 420/30.4 (단위 만원)로 계산할 수 있다. 계산하면 13.82(만원)이 나온다. 한 명의 고객을 경기장에 유치하기 위해 FC서울이 사용한 비용이 13만원이라는 말이다. 입장권 가격이 1만 2천원인걸 고려하면, 거의 10배를 초과하는 비용을 부담한 것이다.
어쩌면 K리그에 과한 애정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이 계산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좀 더 구단에 유리하게(?) 계산을 해보도록 하겠다.
정규리그 외에 FA컵 한 경기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3경기를 포함하면 총 홈경기는 19경기에서 23경기로 늘어난다. 평균관중 1만 6천명을 여기에 대입해 계산하면 FC서울의 2017년 총 관중은 36만 8천명으로 증가한다. 이를 토대로 다시 CAC를 계산하면, 420억/36만 8천명. 11만 4천원이 나온다. 역시 한 경기 티켓값의 10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그래도 부정하고자 하는 팬들을 위해 원정경기의 입장수익도 배분받는다는 터무니없는 가정까지 해보겠다. FC서울의 관중을 2배로 하여 다시 CAC를 계산하면 5만 7천원이 나온다. 그래도 티켓가격의 5배에 이른다...
K리그는 투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왜 K리그에 투자가 필요한지. 그리고 K리그에 필요한 투자가 과연 돈이 맞는건지에 대해서.
가난해서 돈없으니 돈 달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보내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대신 생존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자신들을 팔아야 한다. 그게 비즈니스이고, 그게 프로페셔널이다. 지금의 K리그에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는 솔직히 아까운 수식어이다.
선수들의 부진을 탓하지도, 팬들의 외면을 탓할 필요도 없다.
제대로 일을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안정환, 이동국, 고종수의 90년대 K리그 트로이카니, 2002 월드컵의 열기니.
다 의미없을 뿐이다.
우리에게 투자하면,
n배로 돌려줄 수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투자하라
그리고 함께가자.
모기업에 돈을 더 쓰라라고 하기 전에,
시청에 추경을 부탁하기 전에,
왜 자신들에게 투자해야하는지를 스스로 입증하길 바란다.
자신들의 무능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행위를 계속한다면, '투자가 필요하다'던 축구인들 및 K리그 행정가들이 이 나라 축구의 미래를 스스로 죽이는 일이될 것이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눈치보고,
회장님이 바뀔 때마다 눈치보고,
공중파 중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신
남아있는 팬들이 완전히 외면하는 그 날,
정치인 또는 기업인의 의중의 변화에 의해 당신들의 소속이 해체되는 그 날을 두려워하라.
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승격도, 리그우승도 아닌 자생 뿐이다.
각 구단들이 운영비를 스스로 충당할만큼 돈을 벌 수 있다면, 모든 것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
사실 이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돈을 못버는 회사는 구조조정을 하게되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부도되는 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자본주의이다.
본질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 일을 하는 척하기 보다 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왜 '프로 스포츠'인가, 왜 '프로 스포츠' 여야 하는가를.
다음 글에선 'K리그에 투자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축구인들이 항상 언급하는 전북 현대에 대해 분석해볼 예정이다. 필자는 전북 현대 역시 K리그가 비정상적인 리그라는 분명한 이유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한 K리그의 마지막 보루(?) 사회공헌에 대한 이야기도 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