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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종의 연대 Dec 05. 2022

숲이 돌보는 시간

전라남도 구례 ‘지리산게더링’과의 만남

하루 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생산성에 대한 강박은 휴식의 시간까지도 무언가를 더 잘 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여기게 한다. 서울에서 세 시간 반, 단풍이 한창인 계절에는 네 시간이 걸리는 구례에 다녀왔다. “숲을 삶의 중요한 기반으로 여기고 함께 돌보는” 지리산게더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돌보고 또 그들을 돌보는 숲은 우리 역시 기꺼이 맞아주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시간이기도 했다.



구례읍 봉서리에 위치한 작은 숲은 故김철호 선생이 이념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가꾸다가 한겨레에 기탁한 곳으로, 지역 활동가들과 연결되면서 현재 지리산게더링에서 사용하고 있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여성해방 마고숲밭”이 나오고, 함께 밥을 지어먹기 위한 공동의 부엌, 땅에서 얻은 것을 다시 땅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생태 화장실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지리산게더링은 작물을 심어 가꾸고, 밥을 지어 먹으며, 같은 지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독특한 형태로 지어진 부엌이었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식사 준비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다만 미리 안내받은 대로 집에서 가져간 각자의 식기와 수저, 약간의 먹을거리를 꺼내놓았다. 대야미의 농부가 기른 열무 한 봉지, 집에서 깐 호두, 친구에게 선물 받았다는 말린 망고 같은 것들. 이날의 메인 요리는 병아리콩과 감자, 당근, 버섯이 들어간 토마토 스튜였고, 레몬과 타임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구운 야채, 갓 딴 채소로 만든 샐러드가 곁들여졌다.



재료들의 맛이 풍성하게 느껴지는 식사 시간도 좋았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뒤에 이어진 설거지 시간이었다. 초벌 설거지는 톱밥으로 그릇을 닦은 뒤 열쇠 구멍 모양의 키홀가든(keyhole garden)에 비운다. 흙이 쏟아지지 않도록 고정시켜 놓은 대나무 막대기 주변으로 초록빛 자주빛 잎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샐러드에 들어간 채소들, 구운 야채나 스튜에 더해진 허브들도 여기에서 딴 것이었다. 초벌 설거지가 끝나면 미리 받아둔 싱크대의 물로 두 번에 걸쳐 그릇을 헹구어낸다. 물과 땅과 음식을 소중히 하는, 식사의 멋진 마무리.


좀 더 본격적으로 순환을 실천하는 형태는 화장실에서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모인 똥은 다시 일 년의 숙성 과정을 거치는데, 이렇게 하고 나면 냄새도 나지 않고 퇴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오줌은 따로 분리하여 모은 뒤 짧은 숙성 기간을 거쳐 액비로 사용된다. 마고숲밭에 자라는 작물들도 이 액비의 덕을 본다. 도시의 식사 재료들이 처음 자란 흙에서부터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데에 소요되는 물리적 거리, 노동, 각종 시설, 비용 등을 생각하면 이곳의 생태 화장실은 단순하고 정확한 순환의 경로를 구현하고 있었다.


숲의 공간들 가운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겨둔 숲”이 있었는데, 그러한 지향이 이곳을 ‘숲다운’ 숲으로 지키게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동물”(지리산게더링의 사람들은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심겨지고 수확되는 작물들, 혹은 베어지고 버려지는 나무나 풀들이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각자의 자리에 있던 본래의 존재가 살 수 있는 공간도 충분히 지켜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리산게더링이 가꾸는 작은 공간들은 숲을 배경 삼기보다는 숲에 비밀스레 안겨 있는 느낌이었다.




숲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그마한 공터에서 이루어졌던 숲 감각 활동의 시간 동안이었다. “여우의 발걸음”은 여우가 조심스레 걷는 모습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는데, 맨발로 숲을 걸으면서 발바닥에 닿는 땅의 모양, 마른 잎사귀, 작은 열매들의 느낌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사슴의 귀”는 양손을 귀에 대고 주변의 소리를 듣는 것이었는데, 새 소리, 귀뚜라미 소리, 자동차 소리를 하나하나 살피며 각각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시간은 ‘숲멍’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각자 숲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나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낮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가만히 앉아 돌로 지어진 담벼락과 그 위에서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단풍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오래 전 내게 이와 비슷한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동네 작은 동산의 바위 옆 움푹한 곳, 혼자만 아는 비밀의 장소를 찾아다니던 어린 아이의 시간.



우리가 다시 모였을 때는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고, 마고숲밭을 돌보는 것으로 하루의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세상을 만든 할머니 신의 이름을 본뜬 이 숲밭은 페미니즘 심볼을 품은 마고를 형상화하고 있었다. 우리는 길섶의 낙엽을 모아 밭을 덮어주었고(땅의 표면이 드러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비상사태라고 한다), 호미를 들고 생강을 캤으며(씨생강을 심으면 거기에 붙어 새로운 생각이 자란다고 한다), 오줌으로 만든 액비를 밭에 뿌려주었다. 동그란 호박과 아가콩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콩도 수확해보았다. 



반나절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채운 것은 이 계절의 공기와 온도, 바람의 느낌, 나무의 빛깔, 길에 떨어진 작은 열매들,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 같은 것들이었다. 숲을 돌보는 이들의 안내를 받아 우리도 숲을 만났고, 조금은 숲을 돌보았으며, 그 시간 동안 숲은 우리를 돌보아주었다. 밭에 낙엽을 덮어주는 것은 흙 사이에도 공간이 있어야 더 비옥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리산게더링과 보낸 숲에서의 ‘빈’ 시간이 우리를 조금 더 충만하게 해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평화로운 공간을 일구는 이들은 불과 며칠 전 지리산 산악열차 예산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원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하느라 경찰들과 맞섰고, 동료들과 함께 전국을 다닐 수 있는 투쟁열차를 구상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가꾸는 숲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은 아니라는 점,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시각장애를 지닌 이들에게는 적대적인 공간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또 그들이 싸우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여정이 그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지속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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