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초 Aug 30. 2024

아직도 괜찮지 않아요.

주민등록교부제한 신청, 성공했습니다.

이웃집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웃집 남자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냥, 그 집에 여자가 살지 않는지, 그 여자가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는지 등등을 물어봤다는데 왜 그 남자는 그 말에 대답을 해줬을까?

요즘엔 잘 안 보인다고 얘기했다는데 내가 요즘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는 어떻게 기억한 걸까?

내 모습을 그렇게 기억하고 남에게 전달하면서 단 한 번도 내 생각은 해보지 않은 걸까?


이사를 간 뒤로, 주소지 이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지냈다.

월세는 꼬박꼬박 내면서 지역 월세지원 같은 혜택은 알아보지도 않고 숨죽이고 지냈다. 벗어나서 웃으면서 지내고, 항상 밝게 인사하면서 사랑받고 자란 것처럼 티 내려고 애쓰면서 누군가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괜찮은 것 같았다. 


경찰이 다시 연락을 했다.

이전 주소지 관할 경찰이 내게 또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실종신고를 하길 원한다는데 이상해서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물어도 답이 없었다. 3번을 더 묻고 전화를 끊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아버지 회사 번호였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회사에서 잘 지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신과에 다시 갔다.

뜬금없이 조울증이라 오진받고, 잘못된 약을 먹다가 죽을 것 같아서 다시 이전의 의사를 찾아갔다.

잘 지내냐고 물어서,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약물보다는 심리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스마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법무부에 지원을 받는 범죄피해자 상담지원센터였는데, 역시 경찰 신고기록 등이 있거나 확연한 범죄 피해자가 아니면 도와주기 힘들다고 했다. 다시 또 우울해졌다. 그러다가 기운이 났을 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다시, 여성긴급전화(1366)였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겪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게 가했던 위협과 지속적인 경찰 연락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꾸 나를 찾아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할까 봐 휴대전화를 탈탈 털었다. 경찰통화기록, 가해사실에 대해 나눴던 카톡, 무음으로 온 카톡, 받지도 않는데 100건 넘게 쌓인 부재중 전화기록들. 하나하나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도와줄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 내용에 따라 팩스로 상담확인서를 관할 지역에 보내줄 테니 전화를 한 상태로 주민센터에 방문하라고 했다. 처음으로, 도와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22년 8월 31일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주민등록등초본 교부 제한이 훨씬 쉬워졌다.

기존에는 상담확인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 증거(경찰신고기록, 진단서) 등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상담확인서 하나로 신청이 가능해졌고, 주변 주민센터에서 바로 신청이 가능해졌다.


신청을 위해 주민센터에 방문했다. 이런 일로 방문했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서류를 팩스로 전달받고도 관할 주민센터의 주무관의 침묵을 견뎌야 했다. 


"이걸로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팩스를 전달받은 후 주무관이 말했다. 직인이 찍힌 원문이 아닌 팩스로 전달받은 공문이기에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교부제한 신청 대상에 조부도 추가했는데 조부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라서 힘들다고 그랬다. 직접적 가해자가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조회하면 결국 알게 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내가 법적으로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알아보겠다고 했다. 


뻥 뚫린, 민원인이 오가는 그 공간에서 30분 넘게 그 사람의 가능하다는 말을 기다리다가 결국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청만 하면 된다더니 저 멀리 신입 공무원을 불렀다. 내 앞에서 이런 서류니 입력해 보라고 했다. 내 앞에서 내 정보를 가지고, 학습이 이루어졌다. 


처리가 끝나고 나가려고 하니 주무관이 내게 그랬다.

 "다음에 이런 일 하려고 할 때는 제대로 된 서류 가지고 오세요."

다음에, 이런 일, 제대로 된 서류. 나는 안 되는 일 억지를 부려서 겨우 된 사람 같았다. 다음에, 이런 일, 제대로 된 서류. 나는 전화로 내 사정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하고, 이제는 동사무소에서 제대로 된 피해자가 맞는지 심사까지 당하고 그마저도 할 수 있었음에도 겨우 해준 것처럼 동정 섞인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제대로 된 처리 절차가 없었다. 


서류 양식은 있어도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느 정도 해야 되는지 처리에 대한 기준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기다려야 했던 것뿐인데 왜 내가 억지를 부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지.


동사무소를 나와서 빈 골목길로 접어들자마자 한참을 울었다.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 대신 서러워서 울었다. 왜 나는 당연한 일 하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심사를 당하고, 얼마나 피해자다운지 소명하고, 얼마나 더...


아무튼, 지금은 무사히 주소지 이전을 마쳤다. 기꺼이 도움을 주시고, 서툰 내 전화를 어떻게든 받아주신 1366 상담원님께 정말 감사하다. 억울함에 북받친 내가 내는 목소리는 아무래도 침착하지도 않고 이성적이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당황했고 긴장했고 무서웠다. 전화 예절이나 얘기해야 하는 것들이 정돈되지 않았다. 이런 전화도 받아주시고 처리 과정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했다.


괜찮은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괜찮지 않다는 말을 몇 번을 더해야 할까.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책임지고 싶어 하는 엄마를 내가 책임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