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64화
일요일 출근인 오늘.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선배들에게 "약속이 있어서요"라고 했다. 반은 참, 반은 거짓. 약속이 나와의 약속이었기 때문. 되도록 매일, 발레 바를 잡는다는 것. 하지만 회의가 늦게 끝나 이미 클래스는 끝나버린 상황. 그럼에도 산 넘고 물 건너 발레학원으로 향한 이유. 공연 연습 때문이다.
나, 끼니도 거르고 발레하러 온 여자야, 이렇게까지나 발레에 진심이라고! 이렇게 우쭐대는 마음을 발레의 신이 읽었을까. 순서는 헷갈렸고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몰랐던 것임을 깨달았다. 보통 발레 클래스가 끝나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날아갈 것 같은데, 오늘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역시, 발레는 정석이다. 정답이 정해져있다. 그 정답으로 가는 지름길 따위, 없다. 호락호락하지 않지. 클래스를 건너 뛰고, 작품만 하려하는 꼼수 따위, 발레의 신이 용납할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동시에 떠올린다. 오히려, 정답이 있다는 건 뒤집어 보면 감사한 일이라고. 요행에 기대는 지름길이 아예 없다는 건 어찌보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것. 때론 구불구불 때론 급경사의 그 길은, 포기하지만 않으면, 느려도 작지만 확실한 성장을 준다는 것.
지난주, 존경하는 두 선생님이 이구동성으로 해주신 이야기가 떠오른다.
더시티발레의 이승용 선생님.
"여러분, 발레 너무 좋지 않아요? 아름답잖아요. 내 몸을 알고, 내 몸을 이용해서 나를 표현하는 일이잖아요. 정해진 틀과 원칙은 있지만, 그걸 지키면서 그로부터 오히려 자유롭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게 발레 아닐까요. 표현하세요. 스스로를 좀 더 꺼내보세요."
발레썸과 더시티발레의 최시몬 선생님.
"발레는 클래식이죠. 수백년간 지켜져온 룰이 있어요. 정답이 있다는 얘기지요. 그걸 지켜내야 발레입니다. 발레는 예뻐야 하죠. 발레라는 아름다움은 그 정답을 지키는 데서 나옵니다. 어렵지만 정답을 지키면 되는 거예요. 발레는 과학입니다."
정답이 있는 아름다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정답이 있다는 것만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솔직히 아직 모르겠지만, 마음이 놓인다.
By Suji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