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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다시, 발레를 결심한다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68화

by Sujiney

성장의 맛엔 중독성이 있다. 문제는, 발레의 성장이 노력에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오늘 10이라는 노력을 했다고 내일 10이라는 성과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외려 매일 열심히 하는데 퇴보하는 거 같을 때가 더 많다. 얄밉다.

몸이 굳은 나이에 배우는 성인 발레여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전공생에게도 발레의 신은 얄궂다는 걸 들었다. 국립발레단 이영철 무용수가 수석의 자리를 내려놓고 발레 마스터, 즉 지도자의 길을 걸을 때 했던 인터뷰에서였다.



이영철 당시 수석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해줬다.

"발레는 계단식으로 늘더라고요. 하나도 늘지 않는 것 같고, 심지어 퇴보하는 것 같을 때가 오래 가요. 그런데요, 중요한 건 그때 포기하지 않는 거였어요. 그냥 계속하면 어느 순간 쑥 올라가 있어요. 계단 하나를 갑자기 오른 것처럼요."


잘 하고 있어, 도라에몽도 응원해준다구! By Sujiney


이 말을 되새기는 2025년의 지금. 문득, 지난 여름 단독 인터뷰했던 빌 게이츠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은 수학적 아름다움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빌 게이츠는 발레는 못 배우겠네. 발레에선 1+1은 2가 아니니까. 1+1은 0이 되기도 하고 10 또는 100이 되기도 하니까. 빌 게이츠는 못하는 데 나는 하는 게 있다니, 왠지 신나지 않나. 이런 발상, 쪼잔하긴 하지만.

열심은 어찌보면 쉽다. 어려운 건 그 열심을 유지하고 다스리는 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고 시간과 돈을 들이는데도 왜 이렇게까지 늘지 않는거야, 라고 한탄할 게 아니다. 이런 아름다움을 찾아냈음에 행복해하며 잔잔하게 그러나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계속하는 게 중요한 것.


Vogue Korea 2025년 10월호.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서희 무용수가 과거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했던 아래의 말이 다시금 사무친다. 내가 발레의 ㅂ도 몰랐을 때, 대선배가 했던 인터뷰. 질문은 "어린 나이에 이미 많은 걸 성취했는데 앞으로 목표는"이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발레를 시작한 뒤 피곤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완벽 추구에 좌절도 많이 한다. 그래도 매일매일 다시 발레리나가 되기로 결심한다. 오늘도 노력해서 조금 더 발전된, 내가 원하는 더 나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다.”


그림 장 루이 포렝. Dancer Tying Her Dance Slipper 일부. 1891년. 퍼블릭 도메인.


그래 우리도 매일매일 다시, 발레를 결심하자. 발레가 곁을 주지 않더라도, 그냥 꾸준히 나만의 행복을 찾아내며 조금씩 조금씩 오늘의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계단을 하나씩 오르고 있을 거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다시 올라가면 되지. 어렵게 생각 말자. 몸만 다스리는 게 아님을, 발레로 마음도 다스리는 법을 이렇게 또 배운다.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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