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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거 없잖아, 두려움도 내 편

Sujiney의 발레로운 매거진 74회

by Sujiney

잘하고 싶은 마음은 때로 독이 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왜 드는가.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에 생겨난다. 인생과 닮은 발레를 배우다보면 특히 그렇다. 발레를 성인이 되어 취미로 배우다보면 절감하게 된다. 내 몸이 내 맘 같지 않음을.

전공생이나 프로처럼 추고 싶은 욕심을 부리는 건, 물론 아니다. 몸이 굳은 나이에 시작했기에 한계는 또렷이 인정한다. 물론, 성인 취미발레인 중에도 재능이 있거나 움직임의 감각이 남다른 분들이 있다. 부럽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그렇지 않은 걸.

몸의 현실이 마음의 열심을 따라가지 못하다보면, 때로 적신호가 켜진다.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게 되고, 노력과 결과가 정비례하지 않음에 지친다. 그러다보면 내가 과연 할 수는 있는 걸까 의심하게 되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압도당한다.


매일의 발레 클래스뿐 아니라 공연 연습은 더더욱 그렇다. 소화를 하지 못하면 어쩌나. 틀리면 다른 동료들에게도 민폐인데 어쩌나. 그러다보니, 눈치를 보게 되고, 나도 모르게 몸이 굳고,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틀리게 된다.


하지만 그때, 이 말을 만났다. 전설의 발레리나, 실비 기옘이 했다는 말이다. 기옘이 내년 2월 예정된 프리 드 로잔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블로그에 쓰기 위해 리서치를 하다 마주친 말.

"두려움과 의심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의 작품을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징표이거든요. 그 두려움과 의심이 만들어낸 한계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예술가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용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와 같은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움이 거기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직시하고, 오히려 내편으로 만들어 이용하라는 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사실 좋은 것이라는 말.


리허설 중인 실비 기옘. 미국 워싱턴DC National Portrait Gallery 박물관 소장.



이 대목에서 이승용 선생님이 최근 클래스에서 해주신 말씀도 되새겨본다. 센터워크에서 뭔가 눈치를 보고 쭈뼛쭈뼛하는 우리를, 아니, 나를 보신 뒤.

"우린 잃을 게 없어요. 우린 지금 이 스튜디오에 함께 들어와있는 것만으로 다 같은 사람들이죠. 실수하면 어쩌나, 이런 생각 대신 그냥 잃을 거 없다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춰보세요."

두려움에 먹히지 말고, 두려움을 돌파해보라는 말. 실제로 그렇게 마음을 먹고 통베 파드부레 평생 스텝을 해봤더니, 그전보다 두 배 이상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 두려운 건 정상이다. 두려움에 먹히지 말고, 직시하고 돌파하자. 연습 때 넘어지면 어때. 다시 일어나면 된다. 이런 과정을 켜켜이 잘 쌓아나가면 실전에서의 나는 조금은 되고 싶었던 내가 되어 있을 수 있을 거다. 두려움도 내 편으로 삼아보자. 그렇게, 킵 고잉.

By Suji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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