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지 Mar 23. 2017

그날들의 기억



재작년 여름, 광화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를 취재한 적이 있다. 매일 발제 스트레스를 받다  겨우 선택한 아이템이었다. 하루 종일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으며 광화문 광장을 찾는 이와 지키는 이를 기록했다.


 그때 한 외국인 부부가 광화문을 둘러보다 우연히 세월호 분향소를 찾다. 분향소 앞을 기웃거리면서도 선뜻 들어오지 않았던 그들은 "대체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작년 봄, 제주도로 가는 여객선, 고등학생, 수학여행, 304명. 짧은 영어로 손짓 발짓 섞어가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국의 뉴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되물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일 년 전 일 아닌가요?"


 그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그가 내뱉지 않았으나 덧붙이고 싶던 질문이 무엇인지 너무나 자명했기 때문이다. 왜 희생자 가족들이 이곳에 천막을 치고 있는가, 세월호는 왜 아직도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했나, 한국 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 또한 납득할 만한 답을 들은 적 없는 물음들. 그냥 어색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때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었다. 그날 만난 한 희생자 아버님은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몰래 천막에 들어가 운다고 했다. 근처 도로에서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 천막이, 그에겐 꾹꾹 눌어온 감정을 터트릴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러면서 광장에 늘어선 천막들을 곧 재정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계절을 무사히 넘기고, 긴 싸움을 하기 위해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아닐지. 그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뜨개질을 배우고 있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하다 보면 잡념을 지울 수 있다고 했다. 기약 없는 시간을 버티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생각해보면 다들 내뱉지 않을 뿐, 진상 규명에 지난한 세월이 걸릴 거란 걸 알고 있던 것 같다. 3년 전, 미수습자 가족들이 머물던 진도체육관에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때 동치미를 담그는 데 일손을 보탰다. 겨울도, 김장철도 아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집밥을 먹이고 싶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식당 이모는, 이들이 견뎌야할 매서운 계절을 미리 준비했던 것 같다.


솔직히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에 찾은 진도였는데,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왔다. 자원봉사자들은 체육관 2층에 머물렀다. 1층에 있는 미수습자 가족들을 말 그대로 관망하는 위치였다. 먼발치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노트에 몇 문장 끼적이는 일이 얼마나 철없고 속편한 일인지, 그곳에 가서 깨달았다. 긴 시간을 함께 버텨 주지도 못하고 며칠 있다 떠날 사람이 어줍잖게 글을 쓴다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누군가 온종일 바다만 바라보며 버텼을 오늘 하루, 나는 열심히 떠들고 종종 웃고 간간이 뉴스를 챙겨보며 보냈다. 여전히 그 속편한 관망자 위치에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끄러움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어지러운 글을 쓴다. 인양이 구체화됐다고 이런 기록을 남기는 것도 참 새삼스럽지만 지금 아니면 또 그간의 기억들을 쏟아낼 수 없을 거 같아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왜 이토록 이기적인지.

작가의 이전글 17032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