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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Apr 30. 2017

170429



지하철이 끊겼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택시를 잡아탔다. 퇴근 즈음엔 머리가 복잡해서 더 이상 생각이 들어찰 자리가 없었다. 오늘 먹은 음식들, 오늘 겪은 일들 모두 소화시키지 못했다. 신경쓰는 만큼 말하고 몸을 움직였다면 이 정도로 괴롭진 않았을 텐데, 하는 것 없이 앓기만 한다.


곯을 대로 곯았는데 멀쩡히 돌아가는 시스템 앞에서 좌절감을 느낀다. 오늘도 마찬가지. 삶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외치는 글을 걸었는데, 정작 우리 삶은 나아지는 게 없다. 아픔을 새기는 시간은 정말 길었는데, 그걸 정리하는 일은 왜 이리도 빠른가. 고통은 무거운데, 이를 표현하는 말은 왜 이리도 가벼운가. 여기에 나도 어느 정도 일조했다는 걸 잘 알기에 자꾸 멈칫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착실히 일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내일, 내일 모레 계획 없던 여행을 할까 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할 여유가 남아있지 않다.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왜 감정을 쏟고 있나, 나도 모르겠네. 라디오에선 뜻모를 가사를 읊는 밝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대책없는 희망의 노래. 어쩐지 더 어지러워졌다.


... 그러므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틀렸더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다투고 대결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점.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이용할 거라는 점. 자기 합리화와 변명을 성찰과 참회인 척 교묘하게 속일 수도 있다는 점. 나아가 논리와 합리로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할 거라는 점. 무엇보다 기대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점.

더불어, 선명하게 나쁜 것을 색출해내는 일만큼 복잡하게 나쁜 것을 감각해야 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게 슬픈 사람들 사이에 민감하게 아픈 사람들도 있다는 점. 모호하게 다친 사람들에게는 다른 종류의 위로가 필요하다는 점. 아니라면 언젠가 나도 그런 말을 필요로 할 때가 있었고 애매하게 그게 도움이 됐고 모호하게 괜찮아졌던 것인지도. 임현, <고두>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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