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때마다 고생한다는 연희의 증세를 듣고 얼마 뒤에 나는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그리고 거기서 먼지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다. 재채기를 시작하면 쉽게 멈추지 않기는 했으나 그때는 그런 게 병인 줄은 몰랐다. 돌보고 관리해야 하는 종류의 것인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곧바로 연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일들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때의 내 감정이 좀 묘했는데, 염려하는 연희의 말을 들으며 어쩐지 연희가 사는 방향 쪽으로 나도 조금은 옮겨졌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게 싫지 않았다." (임현, <이해없이 당분간>)
어쩐지 학교에 갔던 내가 잔뜩 심통이 나서 돌아온 날이었다. 무작정 전화를 걸어 그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우리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그는 늘 그렇듯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허름한 야상을 입고 왔는데, 그날은 그게 그리 밉지 않았다. 감기에 골골거리면서도 내 뜬금없는 투정을 받아준 게 고마웠다.
그를 따라 이비인후과를 간 게 아마 그날 데이트의 전부였을 것이다. 그 흔한 프랜차이즈 분식집조차 찾아보기 힘든 광화문은 어린 커플이 마음 편히 데이트할 동네는 아녔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 가득찬, 하얗고 깔끔한 그곳에서 어쩐지 나는 위화감을 느꼈고 우리의 가난함을 실감했다. 그 기억만 생생하다.
폭 안으면 서로의 겉옷에 묻은 찬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운 계절이었다. 많이 시렸지만 그래도 둘다 없는 게 많은 사람이었기에 꽤 의지하며 지냈던 것 같다.
우리는 여러 계절을 통과하며 열심히 싸우고 투닥거리다 여름즈음 헤어졌다. 이제는 그 기간을 복기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지만, 몇몇 장면은 여전히 고맙게 남아있다.
전혀 다른 관계 그리고 전혀 다른 상황인데 왠지 이 구절을 읽으며 그때가 많이 떠올랐다. 함께 가난했던 우리는 서로 저런 감정을 조금씩 느끼다가 끝내 멀어졌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