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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un 22. 2018

180622

"...나와 아내에게는 부조리에 맞서 싸우라는 가르침만큼이나 당장 우리에게 닥친 부조리를 모면할 수 있는 요령도 간절히 필요했다. 나는 그런 태도가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백 대표의 조언을 아무리 모아도 한국 요식업과 자영업의 어떤 부조리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모든 푸드트럭 운영자들이 백 대표의 코치를 충실히 따르면 골목의 전쟁은 더 격화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백 대표의 조언이 소중하고 고맙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정신만큼이나 생존의 감각과 현장의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나는 그게 정치인뿐 아니라 생활인들에게도 필요한 삶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바르게 살면서 동시에 잘 살고 싶지 않나."


'부조리에 저항하는 정신만큼이나 생존의 감각과 현장의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 모두 바르게 살면서 동시에 잘 살고 싶지 않나', 라는 문장을 곱씹는다. <한국일보>에 게재된 지 좀 된 칼럼인데, 어제 우연히 내 타임라인에서 발견하고(장강명이란 이름보다 '골목식당'이라는 키워드에 끌려 클릭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다. 장강명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고, 그의 소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에세이는 대체적으로 '좋다'. 그는 좀 비루해보일 수도 고민을 '없어보이지 않게' 잘 털어놓는다. 나는 구구절절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여러모로 정신 사나운 시기다. 개인적인 일이든, 회사 일이든 내가 손 쓸 수 없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불쑥불쑥 답답하고, 때론 무력감을 느낀다. 신념이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건 감정 소모가 큰 일이고, 나는 벌써 지쳐버린 것 같기도 하다. 장강명의 표현처럼, '피 끓는 시절'이 이미 끝나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나만의 동굴을 만들어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는데, 내게 얽혀있는 일이 많다보니 요즘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어쨌든 버텨야 하니, 숨을 잘 고르고 있자고 다짐할 뿐이다. 모든 일에 관망하고 침묵하는 저열한 사람이 되진 않을테지만 나를 지키기 위한 요령을 익히는 것에도 힘을 쓸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뜻밖의 타협점이나  해결책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르게 살면서 동시에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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