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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Jul 15. 2018

180715

오래된 사진첩을 들춰봤다. 강아지에게 사람 같은 이름을 붙이는 건 예전부터 좋아했고, 양꼬치는 어느 선배에게 얻어먹은 게 처음인 줄 알았는데 그 전에도 먹어본 적이 있었다. 어떤 사진에선 그때와 그 주변의 시간들이 동시에 떠오르는데, 어떤 사진에선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다.

다 정리한 줄 알았던 사진 몇장을 삭제하려다 그만 뒀다. 연이 끝나버려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거기 그대로 남아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부터 이미 사라지고 지나가버린 순간을 담은 것이니 사진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그것을 봐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고, 딱히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러 없앨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그녀들은 앞으로도 거기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기억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구멍이 난다. 늘 어딘가 줄줄 새고 있다. 부지런히 기록하지 않고 되짚지 않으면 적어도 내겐 전부 없던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 시간을 함께했던 누군가를 영영 만나지 못하거나, 떠올릴 흔적조차 남겨둔 것이 없다면. 그럼 아무도 기억하거나 찾지 않는, 그러나 분명 존재했던 순간이 송두리째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 아닌가.

비루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지난 시간을 지키려면 최대한 열심히 곱씹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아픈 기억이라도 성급하게 정리하거나 폐기하지 말아야지. 고통으로 생겨난 마음의 부스러기들은 언젠가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균열을 메워줄 수도 있을 것이다. 고요한 회복의 시작.


"...그렇게 해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경애의 마음>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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