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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와 프린터

나의 영원한 선생

“이제부터 너의 선생은 누구인지 아니?”

마지막 수업 날, 지도교수가 내게 물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나를 보며,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단 한 단어를 건넸다.

“녹음기.”

그 말은 오래도록 내 안에 선명한 메아리가 되어 머물렀다.


피아노를 연습할 때면, 내 감정에 깊이 잠겨 마치 내가 위대한 연주자가 된 듯한 달콤한 환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러나 그 환상을 여지없이 산산이 부수는 엄정한 존재가 있다. 바로 녹음기다. 녹음된 내 연주는 내가 품었던 자만심을 야멸차게 깨뜨린다. 잘했다고 믿었던 순간들은 부족함을 드러내고, 음악의 흐름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녹음기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내 연주의 민낯, 꾸밈없는 진실과 마주한다.


글쓰기 또한 그 엄격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컴퓨터 자판 위에서 문장을 써내려 갈 때는 제법 괜찮은 글을 쓰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프린터를 통해 출력된 종이를 손에 쥐는 순간, 그 환상은 산산조각 난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거지?' 문장은 산만하고, 주제는 안개처럼 흐릿하다. 녹음기와 프린터는 그렇게 나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하는 엄격한 선생들이다.

이 길은 고독한 투쟁과 같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부하고, 가장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을 통해 나는 단련된다. 창작의 길이란, 내 안의 목소리와 끝없이 의심하며 대결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내가 왜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지?'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하지만 며칠간의 침묵을 깨고, 기어이 다시 자판을 두드리고 다음 악보를 뒤적이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세상의 속도와 늘 불화했던 느림보였다. 서툴렀고, 숱하게 머뭇거렸다. 경주로에 서면 백 미터 달리기는 늘 꼴찌의 몫이었고, 남들 앞에 서는 일은 두려움의 장막 뒤로 숨는 조용한 아이였다. 심지어 합창 시간에도 나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확한 음정과 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난생처음 D학점이라는 침묵의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존재 자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느린 그림자 같았다.


삶에서 '돌아본다'는 것은 결코 멈춤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느린 걸음으로 과거를 깊이 응시하기에, 발아래 단단한 땅을 확인하고 다음 한 걸음을 힘껏 내디딜 수 있다. 어제의 나를 정직하게 마주했던 그 성찰의 시간이 오늘의 나를 세운 굳건한 주춧돌이었다. 더디지만 꾸준히, 나는 나를 돌아보는 힘으로 전진해 왔다.


세월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녹음기와 프린터가 나의 연주와 문장을 무심히 비추듯, 나 역시 삶을 조용히 돌아보며 모난 곳을 다듬는다. 가슴 한쪽에 조용히 속삭여 본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 낮은 기대가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오늘도 건반을 누르며 세상의 소음을 잠재우고, 한 줄의 문장으로 오늘의 나를 깊이 새겨 넣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영원에 닿을 듯한 생의 녹음 버튼을 누르듯이 이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잔잔한 선율과, 하루를 마무리하며 딛고 일어서는 짧은 글 한 줄이 나의 삶의 여백에 조용히 스며든다. 이 미약하고 소중한 기록들이 느림보의 시간을 매일 새롭게 꽃 피우는 조용한 동력이다. 나는 그 기록을 통해 영원히, 그리고 천천히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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