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녹음 버튼
피아노를 연습하다 보면, 감정에 깊이 빠져 마치 내가 위대한 연주자인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럴 때, 그런 환상을 산산이 부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녹음기다.
녹음된 내 연주는 내가 품었던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잘했다고 믿었던 연주는 야멸차게 부족함을 드러낸다. 사소한 실수는 차치하더라도, 내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조차 불분명하고, 음악의 흐름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녹음기를 통해 나는 내 연주의 민낯과 마주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문장을 써나갈 때는 내가 꽤 괜찮은 글을 쓰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프린터를 통해 출력된 글을 손에 쥐는 순간, 그 환상은 무참히 깨진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던 거지?’
문장은 산만하고 주제는 모호하다. 녹음기와 프린터는 그렇게 나를 돌아보게 하고,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녹음기와 프린터로 내 음악과 글을 점검하듯,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가 가장 좋았니? 언제 가장 슬펐니?'
이 질문들은 나를 거울 앞에 세운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결국 뒤돌아보았던 순간들이다.
회고의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고 배우게 한다. 그리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힘을 준다.
느림보였던 나는 세월이 흘러도 끊임없이 배운다. 언젠가 마지막 무대에서 “참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꿈꾸며, 오늘도 나는 글을 쓰며 피아노를 치며 생의 녹음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