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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Jul 21. 2022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벌써 180일이 지났어요. ㅠㅠ


DDP에서 열리는 <팀 버튼 전>에 다녀왔다.


디테일한 것부터 간단한 습작까지 결과물이 풍부해 볼 것이 많았다. 이 정도로 보여줄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지구 반대편에서도 전시회를 열 법하다고 생각했다. 전시회 벽면을 가득 채운 수많은 '끄적거림'은 그의 성실함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남들 다 한다는 sns를 뒤늦게 한꺼번에 시작했다. 인스타, 네이버 블로그, 브런치. 그중에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인 만큼 업로드 전 가장 신경이 쓰였다. 애초에 뭘 쌓아놓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제는 반대로, 차분하게 '뭔가'를 남겨보고 싶어서, 기록해 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정작 뭔가를 남기려고 하다 보니 과연 이걸 남겨놔도 괜찮은 걸까 의문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너무 가볍고, 이 이야기는 너무 쓸데없는 것 같고, 이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이건 너무 짧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조각난 사건들은 임시저장 서랍에 띄엄띄엄 먼지처럼 쌓여갔다. 실제로 업로드되는 글은 점점 적어졌고 몇 달째 그렇게 끊겨버렸다. 바빴다는 것을 어느 정도 핑계로 삼을 순 있겠지만 어쩔 수 없이 쉬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팀 버튼 전>을 다녀왔다.


찢어진 종이에 휘갈기듯 그린 스케치나 커피 자국이 그대로 남은 냅킨 위의 드로잉은 언젠가 다른 유명한 작가의 전시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이런 걸 버리지 않고 모아둔단 말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감독이라거나 어렸을 때 좋아했던 캐릭터의 생성과정이라거나 몽환적으로 꾸며놓은 무대장치라거나 그런 것보다 대충 쭉 찢어 놓은 종이 쪼가리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었다.


글의 주 무대는 별게 없었다. 주로 집, 정원, 집 앞, 혹은 집 근처. 팀 버튼이 커피를 마시다가 떠오른 생각을 순식간에 그려낸 것처럼 찰나의 감정들, 그런 것들이 적혀있었다. 사소하고, 아주 작고 미세해서 말하거나 적어놓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소한 감정들 말이다. 다른 게 있다면 아주 성실하게 따로 시간을 내어서 남겨놓았다는 것.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찰나는 그들에 비해 보잘것없었나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누구의 것이라도 그렇다. 빈말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겐 더욱 그렇다. 원래도 삶을 사랑하긴 했지만 한차례 우울의 사춘기에 흠뻑 빠지고 나온 후엔 모든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해졌다. 아, 그래서였는데.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나의 그 모든 빛나는 순간에 대해 뭐라도 남겨 놓고 싶어져서.


재능이나 성공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쓰는 것보다 읽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는 그들을 따라갈 재능 같은 건 이번 생에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은 더 성실히, 조금은 더 정성스럽게, 잘, 살아가고 싶다. 훗날 과거의 나를 사랑스러워할 '뭔가'를 남겨놓음으로써.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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