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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Jul 31. 2021

부산 가는 길

with 거짓의 조금

부산 갈래?


우리에게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다를 보러 가자 한다. 여유가 좀 적은 양일 땐 강원도, 체력이 좀 충전이 돼있다 하면 부산이었다. 정말 드물게 서해안일 경우는 당일치기가 대부분이었다. 


익표는 이틀 전 휴가가 끝났고 여느 때처럼 출근하고 돌아온 금요일 저녁(바로 오늘), 부산에 가자고 했다. 부산은 내 고향이고, 내 부모님의 집인데 익표는 자기 집인양 주기적으로 그리워했다. 한 번도 부산에 가자는 말에 거부한 적이 없거니와, 대부분 먼저 부산 가자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번에도 나는 다녀오면 피곤할 것이라는 우려에 머뭇대고 있는데, 캐리어를 꺼내서 짐을 모조리 챙겨놓고는 


" 다른 거 다 챙겼고 자기 것 만 챙기면 돼"

라고 했다. 


나는 내려가는 차 안에서 오늘 배송받은 '거짓의 조금'을 다 읽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 짐을 챙겼다. 차에 타서 첫째가 화장실 간다고 집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니, 둘째가 쉬 마렵다고 다시 또 올라가고 그렇게 어물쩡 시간을 줄줄 쓰며 출발. 




지금이 여름의 한 복판에 있고, 우린 지난가을부터 순탄치 않았다. 아니다 그렇게 치면 지지난 가을부터였다. 남편이 경복궁 뒤에 있는 파란 지붕 건물로 출근을 할 때부터. 아니다 그렇게 치면 내가 둘째를 임신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순탄치 않았던 길은 거슬러 대략 4년을 올라갔다. 돌다리를 건너다 헛디뎌 무릎의 인대 두 개가 끊어지고 수술을 하고 그 와중에 대상포진에 후유증까지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남편은 파란 지붕을 벗어나 지붕 없는 하얀 건물로 복귀했고 나는 수개월 만에 통증 없는 시간을 마주했다. 통증이 없다는 것 자체로 삶의 질은 꽤 높아진다. 내가 걷기 시작하고 남편이 여름휴가를 맞이하고서 우린 어떤 분기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휴가에 우린 분명, 충전을 하긴 했나 보다. 


부산을 갈 체력과 시간을 마주하는 일이 흔치 않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기엔 딸린 자식 둘과 그들만큼의 많은 짐이 있었다. 차로 왕복을 하기엔 2박 3일도 피곤한 일정에 속한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만삭일 때 마지막으로 이렇게 주말을 이용해 한번 내려간 적이 있다. 엄마 생일날 서프라이즈로. 그러고 4년이 지나도록 나는 겨우 세네 번 정도 부산에 갈 수 있었다. 어렵사리. 그러는 데에는 주말에 항상 바빴던 내 일의 특성이 한몫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어딜 갈 수 있다는 것이, 내겐 오랜만에 겪는 생소한 기쁨이다. 이건 지금 촬영을 모두 중단한 상태에서나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복귀가 두렵기도 하다. 꽤 오래 익숙한 일이었으나, 이 평범한 기쁨이 꽤 달콤해서.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다녀오는 길이 피곤할 것이 뻔히 예상이 되지만, 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길은 피곤을 무릎서는 것을 용인하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강행한다. 지금은 새벽 1시 38분을 지나고 있고, 3시에 목적지에 도착 예정인 우리는 부산으로 가는 길이다. 


거짓의 조금은 딱 반 읽었고, 한 시간 뒤 부산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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