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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Jun 21. 2023

지리산에도 지금 비가 오나요?

산책을 멈추고 돌아와서 쓰는 아주 늦어진 답장

은진님, 오늘 지리산 자락에도 비가 오나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느지막이 보내고 돌아오는 길, 비 온 뒤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걸음이 가벼웠어요. 불현듯 은진님께 서신을 써야지 싶어 더 걷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돌아와 컴퓨터를 켰어요.


제가 서신을 마지막으로 쓴 게 1년 6개월 전이더라고요. 그 사이 서신이 아니어도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고, 2월엔 곡성에서 만나기도 했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은진님은 제게 생일선물을 보내주셨지요.


은진님의 생일 선물은 아이템 자체가 신선하면서도 대담하고 취향저격이에요. 작년에는 떡을 한 상자 보내주셨고, 올해는 작약을 한 아름 보내주셨지요. 매년 어딘지 모를 배송지에서 온 큰 상자를 열어볼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일주일 뒤 활짝 피면서 색이 변한 작약 _ 은진님이 준 생일선물


작약을 보면서 은진님을 닮았다 생각했어요. 은진님 다운 선물이다 생각했고요. 투박하면서도 단단함, 그리고 과감한 아름다움이 느껴져요. 꽃이 활짝 피면서 색이 하얗게 변한 걸 보면서, 사진관에 들어서면서 소리 질렀잖아요. 일상에서 신선한 자극들을 느끼게 해 주어서 고마워요.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이어서 더욱.



거슬러 올라가 우리는 2월에 곡성에서 만났지요. 언제 한번 산청에 가야지 하는 막연한 바람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지만, 산청에서 멀지 않은 곡성에 취재가 잡히고 지도를 열자마자 보이는 건 산청이었답니다. 그래서 같이 동행하는 현진 님에게 은진님을 만나고 오자 했죠. 굽이굽이 산길을 운전해서 우리를 만나러 와주셨어요. 보라색 니트를 입고 환하게 반겨주실 때 그 얼굴이 사진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감정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은진님과 현진 님
미실란 옆 생태책방

곡성 미실란에서 밥을 먹고 생태책방에서 책도 한 권씩 고르고, 짧게 산책도 했지요. 뒤에 취재 때문에 헤어져야 했을 때, 진짜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일까요? 그 아쉬움이 나쁘지 만은 않았어요.


헤어지면서도 꽃그림 가득한 종이가방에 한가득 넣어주신 물품들은 정말이지 은진님만의 취향과 털털한 마음들이 무겁게 들어있었지요. 고로쇠액과 뽕잎소금, 그리고 산청맥주라니... 무겁고도 아주 유용했어요. 기차 타고 돌아오는 길에 현진 님이랑 맥주 마시면서 수다 떨다가 앞자리 손님에게 지적당한 건 조금 부끄러운 경험이지만요. (하하하)




장거리 취재를 마치고 늦은 시간 서울로 돌아왔고, 다음 날 오전 은진님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어제 두 분을 보고 '참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다' 하고 생각했는데 찍어주신 사진을 보니 저도 같이 빛나고 있더라고요.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그렇게 되나 봐요.



그 메시지를 받고는 한동안 바빠서 메말라 있던 제 감성에 소나기가 내린듯했지 뭡니까. 그래서 그때 당장이고 서신을 답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고도 몇 달이 지났네요.


서신을 멈 춘 동안 이어오던 사업 하나를 일부 내려놓게 되었어요. 여전히 분주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어요. 서신을 오래 멈추고 있었지만,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았는데 긴 기다림에도 재촉도 없이 무던하게 기다려주셔서 다시 이렇게 쓰는 날이 오네요. 서신을 쓸 수 있어서, 지난 시간도 돌아보고 은진님에게 받은 선물과 우리의 만남을 회고할 수 있어서 좋고요. (선물을 받아서 좋은 건 아니라는 거 아시죠?ㅋㅋ)


은진님도 이제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한 시간 보내고 계시겠지요. 저는 우리가 만난 창고살롱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제 일을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시켜 나가 보는 과정 속에 있어요. 그 사이 읽는 책들도 많이 달라졌고, 관심 분야도 달라진 것 같아요.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도 같고요. 물론 변하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요. 그런 변화 속의 과정에 굵게 자리 잡은 건 창고살롱이네요. (이렇게 갑분 창고살롱 광고인가 싶기도 하지만 ㅋㅋ) 제 삶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게 틀림없어요. 좋은 사람으로 연결되는 것이 변화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간 우리가 시간을 보내면서 변화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기회를 마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창고살롱 시즌 1 멤버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면...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어요. 점심시간에 아주 오랜만에 도착한 서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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