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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Jul 02. 2023

자유를 꿈꾸던 사람이 엄마가 되면

엄마도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나요?


초등학교 때 별명이 대통령일 정도로, 내 꿈은 대통령이라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때 당시 월급이 400만 원 ( 90년대 초반 기준, 정확히 진짜 월급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단번에 그 꿈을 접었다. 월급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일이란 무엇인지도 잘 모를 학생 때부터 나는 매일 정시에 출근하는 회사원이 아니라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프리랜서가 먼지도 모르면서 왠지 단어가 멋지고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도 나는 자유로움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삶을 꿈꿨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몰라서 자주 꿈은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그 중심에는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가 나에겐 중요한 기준이었던 것 같다.



막상 졸업할 때가 다가오고 사회로 나올 때 즈음엔 프리랜서고 뭐고 어디 회사에 들어가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줄 알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뭐 일을 배우려면 조직에 들어가서 시작하는 것 또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3년 정도는 회사에 다니면서 인맥과 능력이 쌓이면 나와야지 생각했었다. 뭔지도 잘 모르는 프리랜서가 되든 내 사업을 하든 하겠다고 막연하게나마 흐릿한 방향을 잡고서. 어쨌거나 누구 밑에서 일하는 건 가능한 젊어야 기회가 많다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렇게 3년 반, 그 조직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퇴사했다.


지금 12년 차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생각해 보면,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는 프리랜서가 뭔지 정말 몰랐던 것 같다. 어쩌면 좋은 면만을 바라봤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이런 삶의 방식이 맞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앞서 꽤나 길게 나의 삶에서 꿈꿨던 직업에 대한 히스토리를 설명한 이유는, 그런 삶을 진짜로 살게 된 계기이자 그 삶의 가장 큰 변수였던 “가족의 탄생”에 대해 앞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사진을 찍으러 전국을 다니고 사진관도 운영하고, 때론 외국도 가고, 어디서나 작업을 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1인 사업자이자 사진작가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11살과 6살 아이를 둔 엄마라는 것.


‘서울의 엄마들’책에 실린 나


프리랜서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엄마라는 위치는 때론 유용하고 때론 절벽에 겨우 붙어있는 30센티 정도의 길을 아슬아슬 걸어가는 것 같은 곳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요즘 디지털 노마드는 어쩌면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양립하게 하는 좋은 방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렇다고 그 삶이 쉽냐고? 물론 아니다.


남들 사는 방식,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하게 직장 다니면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레퍼런스도 많고 주위의 이해를 받기도 쉽다. 그러나 조금만 달라도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 모든 삶의 방식을 유연하게 받쳐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엔 대한민국은 조금 멀기도 하고, 그럼에도 많은 시도를 통해 이전보다는 나아지는 것도 같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드러낼수록 사회는 겨우 조금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한 두 가지의 시스템으로는 노마드맘이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하고, 원하는 방식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그렇잖아도 사회, 가정, 네트워크, 수많은 시도와 개인의 노력 등이 입체적으로 작용을 해야 아이가 자란다. 거기에 엄마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놓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쉽지 않지만, 나만의 방식과 시도들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예시가 되겠지.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볼 예정이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가족이 생기면 벌어지는 일을 통해, 디지털 노마드도 결혼을 포기하기보단 선택지에 놓고, 출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도 한 스푼 넣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는 아이들이 크고 나면, 지금과는 또 다른 방식의 노마드가 되어 있을 거다. 지금도 좋지만,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너무 설렌다. 그 설레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살진 않는다. 하지만 그려보는 그림이 설렌다는 사실이 지금의 삶의 방식이,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이미 말해주는 것 같다.


나 여기 있노라. 나의 이야기가 여기 있노라.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대니 샤피로 지음


나는 지난 일주일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아이가 변명이 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고군분투하며 지나왔다. 여기,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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