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가는 길
내 고향은 부산이다. 아직 부모님이 부산에서 살고 계신다. 요즘은 KTX가 워낙 빠르고 부산행은 빈도수도 많은 편이라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다. 그런데 출장으로는 전국을 누비면서 1년 동안 부산 부모님 댁에 가지 못했다. 나는 홀로 시간을 사용할 수 없는 양육자이고, 남편과의 조율이 필요하고 그런 상황들은 이미 출장 때 수없이 조절해서 썼기에 여력이 없었다는 게 맞겠다. 그래서 이번 휴가는 부산으로 간다. 지금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글을 쓴다.
년 중 가장 덥고 사람들이 제일 많이 부산을 가는 여름 휴가 피크는 피하고 싶지만, 아이 학교와 학원 모두 방학이라 어쩔 수 없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만 해도 자유롭게 남들 다 일할 때 휴가를 갈 수 있었는데, 왜 다들 이 더운 날 젤 비쌀 때 휴가를 갈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됐다. 프리랜서임에도 이때 휴가를 가야하는 이유는 양육자인 이유가 가장 크다.
아무리 전국에 인터넷이 깔려있고 모바일 기기등으로 업무 처리를 할 수 있어도 휴가 기간엔 평소처럼 일처리를 할 수 없는 만큼 휴가 앞뒤로 일이 많아진다. 이렇게 해서 휴가를 가야하나 고되서 지칠 때쯤 휴가가 시작되는 거다. 또 다녀와서는 어떤가. 휴가 때 미뤄둔 일들이 몰려오니 휴가 막바지에는 괴로움도 몰려온다.
돌아와서 가능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휴가 출발전 우선 집안 정리가 우선이다. 떠날 것에 급해서 집을 엉망으로 해 두고 떠나면 돌아와서 피로가 중첩된다. 그래서 밀린 집안일과 청소까지 하느라 더 분주하다. 출발하는 오늘 아침에서야 짐을 챙기면서, 며칠간의 업무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빨래를 개고, 냉장고 체크를 하고, 남편은 설거지에 청소에 각자 집안을 돌봤다. 분명 휴가라고 해서 몸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여러 번의 경험 끝에 가기 전 정리를 하는 것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서, 휴가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며칠 아니 한 2주간 짬짬이 야작(야간작업)을 했다. 남편도 나도 각자의 일을 마무리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러느라 낮에도 피곤하고 집도 엉망이었다. 그렇지만 비어있을 집을 청소 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떠나야한다. 이렇게라도 며칠을 업무에서 벗어나야한다. 업무도 일상도 반복되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돌아보기가 어렵다. 문제가 있어도 관성대로 하기 쉽다. 몸은 쉬라는데, 사회적 책임감에 계속해서 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걸 인지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춰야 한다.
나는 평소에도 잠시 멈춤을 잘 하는 편이다. 하루 중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색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뇌를 좀 쉬어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맞이하는 거다. 중학생이 될 때부터 아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는 걸 알려주셨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어떤 건지 모를 때, 아빠는 어려우면 머릿속에 장미 꽃 한송이를 바라보라고 했다. 나는 가끔 장미를 바라본다.
또한 일주일에 하루 쯤은 온전히 내 시간을 쓰고 혼자 소화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비워둔 날이 있어야만 업무의 과중을 조절하기 용이하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지난 몇달은 그런 시간을 가지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들도 많았고, 다양한 연결과 관리해야하는 업무도 많았다. 평소에 그런 시간을 가진다 해도 휴가는 휴가대로 필요하다. 그러니까 인류는 휴가라는 단어를 만들고 사용하기 위해 제도를 마련하고 사용하고 있겠지.
저녁 노을이 우리를 맞이할 시간에 부산에 도착 할 것이다. 좋아하는 다대포에서 그간 못본 노을을 뜨겁게 맞이할 생각이다. 그리고 평소에 전화도 잘 못드리고, 챙겨드리지도 못하는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것이다. 휴가간다고 예민하고 분주한 엄마를 기다려준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실컷 하고, 바다에서 넋놓고 윤슬을 바라볼 것이다. 챙겨가는 책 5권 중에 단 한권도 완독하지 않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 읽고 싶은 부분만 곱씹으며 흡수할 것이다.
짧은 며칠이라도 그렇게 쉬어가는 동안 나이테 같이 진한 선이 생기고, 당장은 모를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거같다. 그래야 바쁜 하반기를 잘 보낼 수 있겠지. 인생은 길고도 짧으니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