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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Aug 03. 2023

영혼의 안식처를 찾아서

감은사지 동서 삼층 석탑을 가다

몇 년 전 [리얼타임 - 영감의 순간]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자우림의 김윤아 등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의 리츄얼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해질녘 정목 스님이 감은사지 석탑을 도는 장면이었다. 해질녘에는 언제나감응하는 나이지만, 그 고요하고 묵직하지만 외롭고 단단한 기운들을 꼭 대면해보고 싶었다.


이번 휴가 때 경주와 울산의 경계에 있는 산속 깊은 곳 리조트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찾은 곳은 바로 감은사지. 최근 몇 년간 경주를 올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경주 중심지와 거리가 있고 아이들이 함께 있다 보니 포기했었던 곳을 이번에 방문하게 되었다.



682년 건립된 감은사는 터만 남아있고 그 앞을 지키던 3층 석탑 두 개는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탑으로 남아있다. 그 옆은 당나무가 지키고 서있었다. 석탑만큼이나 압도적인 분위기에 나무 주위를 한참 서성이고 바라보았다. 해 질 녘에 감은 사지를 오겠다는 오랜 숙원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비록 한쪽 석탑이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서 완전한 장면을 담지는 못했으나, 이 또한 지금만 볼 수 있는 장면 아니겠나. 나는 다음에도 꼭 이곳을 다시, 여러 번 오게 될 것을 직감했으니까 아쉽지 않았다. 그 많은 날들 중 하루뿐이다.


내가 수많은 생을 돌고 돌아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드물게 사람들이 왔다가 금새 사라졌다. 나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그 자리에 오랫 동안 남아 여러 방향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말로 설명을 하려 애쓰기 보다 그냥 느끼고 담았다.


얼마나 많은 생을 돌고 돌아 현생에 당도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몇십 년을 살아 지나오면서 오늘 여기 서있는 나에게 비추는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사진도 몇장 남기지 않았다. 그 순간을 느끼고 싶어서. 기억할 수 있게 몇장만 남기고서 카메라는 넣어두었다.



감은사지 서쪽 석탑


정목 스님은 감은사지를 쉬고 싶을 때 찾는 내 영혼의 안식처, 언제나 나를 일깨우는 곳이라고 했다.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와닿는 거예요. 그냥. 넋 놓고 살다가 영혼이 다시 탁 들어온 느낌이랄까요. "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감은사지에 도착하면 어렴풋이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를 일깨우는 곳이 있다는 건 참 드문 행복 아닐까 한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는 스튜디오도 있고, 집에도 나만의 공간을 작게나마 마련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정리도 하고 줌 회의도 하고 책도 읽는다. 하지만 영혼의 안식처라고 명명할 곳은 아직 없다. 정해져 있는 장소는 없지만 노을을 찾아가거나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으러 달려가곤 한다. 정해진 곳이 없어서 자주 그런 안식처가 필요할 땐 방황도 한다. 그래서일까, 감은사지를 보고 여기다 싶었던 것 같다.


언젠가 삶이 지치고, 영혼이 나를 따라오는 속도가 느려 기다려주어야 하는 그 시간이 오면 나는 다시 감은사지를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면서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탑에 닿는 빛이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볼 것이다.


감은사지에서 내려오며 보이는 동네 풍경



내가 보았던 [리얼타임 -영감의 순간] 다큐멘터리 링크를 공유한다. 이 영상에서 정목 스님은 9분 15초 동안 감은사지 석탑 주위를 걷는다. 넘어가는 시간 목탁을 쥐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걷다가 서서 옷 메무세를 바로 하고 다시 또 걷는다. 아마도 이 영상을 보고 나처럼 감은사지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 질 녘에 가기를, 그리고 나와 함께 그 감응을 나눠주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2yblHo3Jz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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