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반대
몇 주 만에 촬영 일정이 없는 주말을 맞이한 토요일이었다. 사업자에 N잡러, 맞벌이 부부에 아들 둘을 키우는 나는 사실 바쁨의 최상 버전쯤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귀한 휴일,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올여름 물놀이도 제대로 못 시켜준 것 같아서 물놀이하러 가까운 계곡이라도 갈까 했는데, 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 집회였다.
이미 방류를 시작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고, 일본은 30년간 방류한다는 계획이다. 설마 진짜 방류하진 않겠지 했는데 진짜 그날이 온 것이다. (미친거 아냐?제정신이냐고! )대통령도 현 여당 정부도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할 생각조차 없는 모습에 너무 답답하던 차였다. 생각만 하는 건 비겁한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비겁하게 투덜대고만 있었다. 뭐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었다. 마침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반대 긴급행동' 집회가 있다는 정보를 보았고 집회를 하는 사람들의 집회 문화를 믿고 있었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아침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오염수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 영향은 어디까지 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우려되는 상황과 현재 우리가 모여서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라고. 너희들을 위해서라도. 둘째는 멋 모르고 일단 간다고 했고 ( 뭐든 나간다면 좋다는 아이라) 첫째는 설명과 이해가 되어야 움직이는 아인데 가지고 선뜻 나섰다.
나는 어젯밤 밀린 일들과 생각정리가 필요해서 새벽이 다 되어 잠들어서 3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상태였다. 밥을 먹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일으켰다. 다음 주에는 시위가 있어도 촬영 때문에 가지 못하니 오늘이 아니면 힘을 실어줄 수도, 뭐라도 하고 싶은 이 답답한 마음을 풀 길도 없을 것 같았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주차를 하기로 하고 시청을 지나는데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서 질서 정연하게 깃발을 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었다. 반대편에선 소수의 어버이 부대가 모여 집회를 방해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거나 큰 깃발들이 휘날리는 걸 처음 보고 아이들이 조금 겁을 먹었다. 너무 씨그럽 다고, 꼭 가야겠냐고. 그래서 참여하다가 힘들면 나오는 걸로 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함께 이야기도 듣고 함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오자고 했다. 사람들이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나 싶어서 다들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는다면 나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생각보단 덥지 않았고, 조금은 울컥하기도 했다. 그래 사람들은 몸을 일으켜 이곳에 나옴으로써 목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다. 의견이 반영되길 희망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오염수가 정말 인체에 무해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정확히 설명하고 설득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럴 리 만무하다. 무해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으니까.
집회가 어느 정도 끝나고 용산 집무실로 행진이 이어졌다. 용산 집무실에 귀 닫고 입만 가끔 이상하게 여는 그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행진하고 싶었다. 그런데, 둘째는 지쳐서 아빠에게 이미 한참 전부터 안겨있었고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첫째도 언제까지 가야 하나 투덜투덜댄지 한참이었다. 프레스센터에서 시작한 행진이었는데 한국은행 코너에서 우리는 멈추기로 결정했다. 대신 행진 줄이 끝날 때까지 서서 응원을 하고 돌아섰다. 다시 돌아온 길을 따라 교보문고까지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는 길 시청 앞 광장에 “ 책 읽는 서울광장”이 열려 책도 비치되어 있고 빈백도 잔디에 펼쳐져있었다. 마침 다리도 아파 빈자리를 찾아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비치된 책 중에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있어펼쳤더니 첫 페이지부터 필요한 메세지다.
모든 인류를 위하여
가까이는 나와 우리 가족, 멀리는 인류와 지구를 위해 오늘 우리는 나섰다. 정부는 다른 목소리를 내겠다면 그만큼 분석하고 확인하고 우리에게 설명했어야 한다.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일본의 신빙성 없는 말들을 국민들의 말보다 중요하게 처리했다. 현 정부와 대통령이 일본 미국과의 동맹에서 잃을 것이 국민과 지구의 안위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대체 그게 뭔데. 현 대통령은 분명,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멀리 볼 줄 모르고 큰 숲을 볼 줄 모르며 사색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릴 수 있는 결정이리라. 이 광장에서 무슨 책이든 읽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책과 멀어져 탐욕에 빠져 산다. (그래, 나 좀 격양된 거 맞다)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하게 한 것은 초강력 인지능력이었는데, 바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다. 우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서문 중에서
오늘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고 소리쳤다. 그들은 한 번 도 본 적 없는 우리에게 자기가 마시려고 산 생수를 나눠주고, 아이들이 지칠까 봐 간식을 쥐어주었다. 그저 같은 생각으로 같이 걷고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인류가 이런 모습이 있었기에 우리는 여전히 진화하며 살아남아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에겐 조금 고된 시간이었을 수 있지만 중요한 일을 한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앞으로도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말자고 했다.
분명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다. 윤석열이라고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냐 그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준석은 이 와중에도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해서 달랐을 거 같냐고 방송에 나와서 이야기 하더라. 이 와중에도 문재인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꼴을 보고 있으니 화딱지가 안 날 수가 없다.
뭐라도 해야지. 그래서 오늘 여정을 글로 남긴다. 시간이 나면 작은 움직임이라도, 또는 공유라도, 나아가 몸으로 목소리를 내러 다음 주 광장에 나가길. 집회는 다음 주 토요일(9월 2일) 오후 4시에도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