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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안 Jan 07. 2024

눈이 오는 날은 서오릉에 가자

작년에 정말 기뻤던 바로 그 장면 _스누트 스쿨 글쓰기 과제 1회차

  


3년 전, 남편은 파란 지붕 건물에 들어가 쉬는 날 없이 일하다 디스크가 터졌다. 3개월쯤 휴직하고 누워만 지내다 재활을 위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허리로 다시 카메라를 잡고 그 경직된 조직으로 걸어가야 할지, 포기라는 용기를 품어야 할지 도돌이표 물음이 우리의 숨통을 조여왔다.   

   

어디든 좀 나가서 걷자.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좀 풀리려나. 둘이 무작정 집을 나섰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인지 서오릉엔 사람이 없었다. 남편과 말없이 숲길을 한참 걸었다. 어떤 시름들을 소복소복 밟아 눌렀다. 그 걸음의 끝에 전화를 받았다. 남편에게 새로운 일을 제안하는 전화였다.      


 눈이 오는 날은 서오릉에 가려고 그날 이후 벼르고 있었는데 그간 눈이 뜸했고, 적설량도 적었다. 또 얼추 내렸다 싶은 날엔 여유가 없었다. '눈이 오는 날은 서오릉에 가보세요'. 정작 나는 그 후로 가보지 못했으면서,   그 근처 사는 이에게 꿀팁처럼 전하던 말이었다.


2023년 마지막 토요일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나는 오후에 예정된 촬영을 눈 핑계로 취소했다. 연말에 한 해를 뒤돌아볼 시간도 없다고 투덜투덜 대던 날들이었는데 갑자기 생긴 여유가 반가웠다.      


서오릉에 가자!      


남편은 단번에 좋다고 채비를 했다. 첫째 아이는 친구와 영화를 보러 아침부터 나갔다. 우리는 둘째하고 눈에 굴러도 좋을 만큼 무장해서 집을 나섰다. 혹시나 눈이 그칠까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서오릉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흰색으로 덮인 숲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해보고 싶은 건 다 했네”, 중얼거렸다. 응? 그러고 보니 올해 초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한 적이 있었나?     


사실 올해 목표한 바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는 것이 목표였다면 목표였다. 아이 둘을 키우며 일 욕심이 많았던 나는 언제나 바쁜 사람이었다. 그 와중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새해라고 목표를 더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니 간간이 힘들었고 가끔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무사히 시간을 지나온 자체로 다 한 느낌이 들었다. 연말에 느끼고 싶은 마음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겠지.   

  

가장 기쁜 날이 언제냐는 질문에 일로 성취했던 어떤 날이 떠올라 글을 썼다가, 내게 가장 기쁜 날이란 어떤 날인가 되물었더니 오늘 같은 날 아닌가. 무탈한 것에 감사하고 소소하게 생각했던 것을 이룬 날, 밀린 일이 없고 가족들이 각자의 이유로 행복한 날. 그날 마침 눈이 내려 서오릉에 왔으니 나에겐 두 번 물어볼 것도 없이 가장 기쁜 날이고 말고.




* 스누트 스쿨 @snoot_school 의 <이충걸의 글쓰기 클래스 > 수업을 들으며 쓴 글을 피드백을 통해 퇴고한 글입니다.

*사진은 3년 전 그날 눈오는 서오릉을 직접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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