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이나 매장대신 인간퇴비장례
소박한 삶의 터전인 작은 화분 안이 비좁아 힘들어하는 식물들을 도저히 더는 외면할 수 없어 오랜만에 분갈이를 하던 지난 봄날 저녁이었어요. 신문지를 깔고 화분에서 조심스레 식물을 분리하는 작업을 마친 뒤 모종삽으로 흙을 퍼 새 화분에 뿌려 넣을 때 흙이 손에 닿은 순간 저는 흠칫 놀라고 말았답니다. 토양의 감촉이 이토록 기분 좋은 느낌을 선사하다니요! 흙을 만지는 동안 저는 마치 숲 속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나무의 정령이 된 것처럼 황홀하고 몽환적인 상태를 경험했어요. 그 촉촉하고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촉감이라니. 게으른 식집사는 일 년 만에 흙을 만지고 까맣게 잊고 있던 그 경이로운 느낌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졌답니다. 비록 공장에서 비닐봉지에 담겨온 원예용 상토였지만 흙은 흙이었으니까요.
흙을 만졌을 때 세상 근심 걱정이 다 사라진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어요. 우리 모두 사람의 근원인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예정이기에, 그리고 흙은 어머니 같은 존재이니까요. 우리는 지구 위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지구는 우리의 어머니이자 집이에요. 영어로 흙은 Earth이고 지구도 Earth입니다. 예술적이며 거대한 유기체인 지구는 제일 앞글자 E와 마지막 글자 h를 빼면 art예요.
도자기공방에 잠시 몸담았을 때 동네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미술 수업과 도자기 만들기 수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흙을 만지는 두 시간 동안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도예수업을 매일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조를 정도로 푹 빠졌답니다.
"선생님! 저는 도자기 만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우리 XX가 도자기를 좋아한다니 선생님도 행복해진다. 흙을 만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지?"
"네! 기분이 아주 좋아요! 저는 꼬부랑 할머니돼서도 도자기 할 거예요!"
"나는 파파할아버지 돼서도 할 거야!"
순수한 아이들이 깔깔대며 흙을 조물조물 만지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저도 더 신이 나 열정적으로 가르쳤던 그때가 그리워요. 모든 걸 정리한 뒤 호주로 떠나며 공방에서 빚은 도자기들과 아이들의 사진과 웃음소리만 남았지만 어렸던 아이들에겐 더 많은 것들이 생생하게 간직되고 있으리라 믿어요. 흙을 만지며 뼛속까지 스며든 원초적 즐거움은 두고두고 남아 살아가는 동안의 정신적, 감정적 자양분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영국에 머물 때 흥미롭게 본 영상이 있어요. 사람이 죽었을 때 화장을 하거나 매장하지 않고 화학물질 사용 없이 친환경적으로 처리해 퇴비화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어요.
'뭐? 시체를 퇴비로 만든다고???'
몸이 나라고 여기던 그때 받은 충격은 몹시 컸지만 곱씹을수록 현명한 시체처리방식 같았어요. 이런 신박한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해 낸 분도 훌륭하고 사후에 선뜻 퇴비가 될 준비를 하는 분들도 대단해 보였어요. 대기오염물질이 발생하는 화장과 공간 부족 및 관리의 어려움을 야기시키는 매장은 탄소를 배출한다고 합니다. 죽으면서까지 어머니인 지구를 괴롭히는 건 자식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기에 퇴비장례에 더욱 관심이 가 정보를 검색해 보니 과학적으로는 시신을 퇴비화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자연친화적인 장례방식이며 경제적으론 화장이나 매장보다 비용이 점차 저렴해지고 있어 미래에 보편화될 사후처리방식으로 보입니다. 시신을 풀, 나무, 미생물 등과 함께 밀폐된 용기에 넣어 자연 분해되도록 하고, 이후 퇴비로 만들어 유골함에 담거나 요지에 뿌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퇴비화는 기존의 매장이나 화장 방식보다 환경부담을 줄이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직 일부 국가에서만 합법화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장례방식은 아니라고 해요.
"평생토록 날 지켜주고 보듬어준 지구에서 내가 죽게 된다면, 내가 가진 것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 카트리나 스페이드(리컴포즈 대표)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1519894.amp
아직 서약하지는 않았지만 장기기증을 먼저 하고 남은 육신을 퇴비화한 뒤 이 세상을 뜨는 게 이번생 지구에서의 제 마지막 과제입니다. 잠시 빌리는 이 몸과 학대받고 살해당하는 동물들, 그리고 위기의 지구를 위해 채식을 한 지도 어느덧 7년이 되어갑니다. 균형 잡힌 채식 식단으로 건강을 되찾았기에 죽어서 장기를 나누게 될 때 기증받으시는 분의 몸에 누가 되지 않게 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인간의 사체도 다른 동물의 사체처럼 토질을 비옥하게 하는 살림의 기능을 할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 형제자매, 또 우리들 자신도 그 시체는 살림의 귀환, 그 대열에 합류할 것이고 그렇게 변이와 이동의 생명 드라마에 참여할 것이다. 역사의 무대에서 우리들의 죽음은 단절과 종말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자연사의 무대에서는 도리어 변이와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경우 변이와 이동은 물론 공간적 연속을 함의한다. 우리 몸을 채우고 있는 생명과 비생명의 물질은 죽음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이라 불리는 엄청난 사건을 통과하고서도 공간적으로 일정한 연속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단순한 물질을 넘어서 있는 우리의 몸 또는 존재는, 기억이라는 정신작용 덕분에 죽음 이후 시간적으로도 일정한 연속성을 유지한다. 죽은 이의 존재와 정신은 누군가에 의해서 기억되고, 추모되고, 보존되고, 후대에 전달된다. 인간 정신을 인간 물질에 완전히 환원시켜 이해하지 않는 한, 인간은 그 정신의 삶을 이어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석영 <수목인간>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에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언젠가는 다시 전부 한자리에 모인다. 모두 죽어서 영혼상태가 된 그들은 하늘의 풀밭 어딘가에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살면서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회상한다. 그런데 이때 지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는다고 한다. 이렇게 언젠가는 모두가 죽을 운명인데 그것을 잊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고 화를 냈다는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싸우고 집착했다는 것이다. 삶이 놀이라는 것을 잊고 너무 심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다들 한바탕 웃는다고 한다. - 유대교 신비주의 종파 하시디즘 현인들 이야기 중에서
중략
결국엔 모든 것이 죽지 않는가?
그것도 너무 일찍
내게 말해보라, 당신의 계획이 무엇인지.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이 거칠고 소중한 삶을 걸고
당신이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미국 시인 Mary Oliver의 '여름날' 중에서
이제 채식화가가 그린 그림들을 감상하실 시간입니다.
시체는 아니지만 눈감고 누워있거나 잠자는 그림들을 모아 올려봅니다.
살아있는 동안 모두 행복하세요!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그림은 인스타그램 @nonichoiart 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