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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May 02. 2017

첫 감정, 통과의례.


밝게 웃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다.

단지, 내겐 침묵도 아름다웠던 것뿐이지.

아니, 숨겼다. 어쩌면 난 철저하게 숨겼다.


침묵의 순간이 모두 정적이지는 않았다.

수많은 감정들이 쉼 없이 들려왔는 걸.


당신의 언어가 낯선 적은 없었다.

그저 가끔 두려웠을 뿐.

그저 가끔 이 막혔을 뿐.


아무도 헤어진 적은 없었다.

그저 모두가 쉽게 넘었던 노란 선 뒤로 돌아간 것뿐.


'아름다워라, 아름답구나' 노래해야 했을 시간에

슬픔과 눈물에 집중한 .


그 모든 것이 시작인 것을,

우리 모두가 모를 리 없었다.


한 번, 두 번, 쿵쿵대는 날 선 도끼질에 휘청거리다 

이내 넘어가는 커다란 나무를 

어쩐지 상쾌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떠올려보자.



나무가 넘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냅다 뛰며 

달음질을 하던 우리의 손에 

잘 갈린 도끼날이 들려있진 않았는지 반성해보자.



그날 우리는 웃고 있지 않았는지, 

그날 우리는 그 나무를 꼭 베어야만 했었는지.


수십 년을 좋은 흙과 바람에게 빚지며 청량하게 자라던 

그 커다란 나무의 이파리가 어땠는지 상상해보자.

푸르렀는지, 그리고 또 눈부셨고 푸르렀는지.


'쉬이, 쉬이, 웅, 웅' 대는 바람소리 잦던 시끄런 나무지만

저가 내고 싶은 소리 한번 내어봤는지 떠올려보자.

사실은 난 무엇이 가장 거슬렸는지.


내 마음의 소리인지 나무를 스쳐대는 바람소리였는지.



몸에 묻히고 싶지 않은 유일한 찬란함이 시간이라면

나는 오히려 시간이 되어 어딘가에 묻었으면 했다.

먼지 털듯 가볍게 '툭, 툭' 털어내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그런 지독한.


시간이 되려는 것은 억지로 밀어붙여 이루어서는 안 되는 

지독하고 꾸질 꾸질한 고질의 갈증이라는 것을

당신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가을이었고 당신은 여름이었다.



우리는 계절이었고 우리는 동시에 존재했다.




옷깃에 스미려다 소매끝에 남아버린 

당신과 나는, 그저 서로의 날이서고 

강렬한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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