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앞에 다다랐다.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그녀가 손을 흔들고는 백화점쪽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보고 있었다. 차를 몰아 세미나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머리속에 그 어떤 슬픔이 일었다. 뭐지? 이 감정이 뭘까? 왜 이러는 걸까? 나는 그 길로 차를 몰아 부울고속도로를 달렸다. 세미나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 이 감정을 알고 싶었다. 차는 서생바닷가에 섰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담배를 끊었는데 몹시도 담배가 당겼다. 바람이 후덥지근했다. 여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한동안 바다와 마주 앉아있었다. 그렇다고 정리되는 건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국도를 따라 왔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그녀였다.
"세미나는 끝났어요? 점심은요?"
"응 끝났어. 점심은 아직이야"
"그럼 이쪽으로 와요. 점심먹어요."
그녀는 8층에 와서 전화를 하라고 하고는 끊었다. 8층에 도착해 전화를 거니 상호를 알려주고는 거기서 기다리면 곧 올라갈거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 가져다 주는 물을 따라 한잔을 했다. 물 한컵이 단숨에 들어갔다. 한참 피크인 점심시간인지라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사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그렇게 살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서오세요하는 종업원의 소리에 문쪽을 보니 그녀가 들어오는게 보였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와 웃음을 머금은 채 의자에 앉았다. 마치 한마리의 나비가 꽃 위에 앉는 것 같았다.
"우리 파스타랑 피자먹어요."
"....."
그녀가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하고는 네프킨을 펼쳐 내게 건냈다. 네프킨을 받아 옆자리에 놓고 시선을 다른쪽으로 돌렸다.
"왜요? 세미나가 잘 안됐어요?"
"....."
"무슨 문제가 있었어요"
"아니야. 아무일도 없어"
"근데 왜 기운이 없어 보여요. 샘 답지 않게"
여자들의 촉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들에게는 어떤 비밀을 가질 수가 없는 것 같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고 보면 모든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인 듯 하다. 그때 주문한 것들을 종업원들이 세팅을 했다. 그녀들이 떠나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실은 세미나에 안갔어."
"네? 그럼 지금까지 뭘 하신거에요? 어디 있었어요? 혼자 있었어요? "
그녀는 몇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뭔지 모를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한구석이 정리되지 않은 서랍속 같았다. 모든 걸 쏟아 부어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냥 혼자서 바닷가에 있다가 왔어."
"...."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
우리는 둘 다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에는 둘 다 절반을 남기고 식사를 마쳤다. 그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 쳐다 보세요."
"...."
"우리 그냥 마음가는 데로 맡겨봐요."
나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 우리라고 했나? 그런거 같았다. 그녀는 분명히 우리라고 했다. 우리라니? 그렇다면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그녀가 재차 나를 보며 말했다.
"나 쳐다봐요. 제 눈을 봐요. 보세요"
그녀를 쳐다보는 게 쉽지않았다. 그녀의 재촉에 내가 그녀를 봤다. 그녀의 눈가에 약간의 미소가 보였다. 그러고는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난 샘이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아요. 나도 했거든요."
"...."
"근데 그거 고민한다고 뭐 해결이 되요? 안되요. 우리 그거 그냥 마음가는 데로 가봐요. 난 괜찮아요."
그녀는 나보다 대담했다. 그녀가 이끄는대로 가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에스컬레이트에서 그녀가 내 팔뚝을 살짝 껴안았다. 그리고는 힘을 꽉 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매장으로 가면서 손을 전화기모양으로 하고 귀와 입에 갖다 대었다. 나중에 전화하겠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