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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안솔 Jul 23. 2023

속으로 삼킨 진심

내가 카톡에 답이 없으니까 전화해서 다짜고짜 안 묻는 말에는 왜 답이 없냐며 따졌잖아. 연락하지 말라는 거냐고. 사실 너에게 관심 없다는 표현이었어. 한번 만나니까 알겠더라. 너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다시 안 만나려고 했어. 첫 데이트 후에 내가 먼저 집에 잘 들어왔다고 문자 했었지? 아마 내가 먼저 했을 거야. 나는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먼저 문자 해. 상대의 진심이 안 궁금하니까 그의 연락을 기다릴 필요가 없거든. 나도 관심 있는 남자한테는 답장 꼬박꼬박 해.


네가 했던 말을 내가 기억 못 했었나 봐. 네가 말할 때 집중 좀 하라고 나를 다그쳤잖아. 사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야. 노력하지 않아도 쓸데없는 걸 잘 기억해. 그런데 이상하게 네가 했던 말은 머릿속에 잘 머물지 않더라. 네가 필요 이상의 정보를 줘서 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너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거 같아.


너는 네 외모 취향을 인정하지 않더라. 네가 외모 안 본다고 빠득빠득 우겨서 더 이상은 말 못 했어. 아마 외모 안 보는 남자를 안 만나봐서 네가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외모 안 보는 남자는 여자 외모에 대한 언급을 아예 안 해. 내 피부톤이 까맣든, 내가 어두운 색 옷을 입든, 내가 치마를 입든 바지를 입든, 내가 화장을 했든 안 했든. 어쩌다 내가 예뻐 보이면 예쁘다고 해주는 게 다야. 네가 내게 했던 이 모든 외모 지적질 자체가 외모를 보는 거란다.


세 번째 데이트 때 너의 단골 펍에 나를 데리고 갔잖아. 거기서 여성 직원의 마스크 벗은 모습을 처음 본다며 그녀의 얼굴을 평가했고 그녀의 골반이 예쁘다며 몸매 평가도 했고. 분위기를 망칠까 봐 정색은 못 했는데 사실 놀랬어. 뭐 이런 남자가 있나 싶어서. 내 앞에서 묻지도 않은 딴 여자 얘기를 왜 하는데? 나를 안 좋아하든지, 나를 무시하든지 둘 중에 하나거나 둘 다이거나라고 생각했어. 이게 너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너는 진짜 문제다.


내가 생각이 멋있는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니까 생각이 멋있는 게 뭐냐며 나를 몰아세웠잖아. 나는 전형적이지 않고 열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던 것 같아. 넌 또 그게 뭐냐고 따져 물었어. 너는 내 생각과 같으면 멋있는 거고 다르면 안 멋있는 거 아니냐며 결론을 냈고 나는 더 이상 반박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생각하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은 가치관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상대의 의견을 편견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야. 답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상대가 잘못된 생각을 가졌으면 근거를 들어 상대를 계몽시키고,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의 차이를 인정해 주는 게 열린 사고라고 생각해. 너에게 없는 거.


긴 잔소리 끝에  “자기 걱정돼서 그래. 내가 한번 보고 말 여자한테 이러겠어?” 그러더라.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지만 제발 나를 한번 보고 말 여자처럼 대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결국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내가 누구를 걱정할 상황이 아닌데 나도 참 오지랖이다. 나는 네가 진심으로 너의 취향에 부합하는 여자를 만나면 좋겠어. 네가 어떤 여자와 잘 맞는지 모르는 거 같아서 옆에서 지켜본 봐를 솔직하게 말할게. 모든 걸 가진 여자를 만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니 네가 우선순위를 잘 정하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많은 걸 갖췄는데 다 갖춘 여자를 만날 필요가 뭐가 있어? 서로 부족한 걸 채워가면 되는 거지. 너를 화나게 하지 않는 온순한 여자면 좋겠어. 그 여자가 조금 예쁘고 스타일이 여성스럽다면 그녀가 너의 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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