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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Oct 18. 2023

광명원에서

지금보다 더 어리고 완고했던, 학생 시절의 일이다.


서울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시각 장애인 관련 시설로 봉사 활동을 간 적이 있다. 그렇다고 내가 꼭 행동하는 지식인이라거나 엄청나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런 유형의 사람이어서는 아니었고, 학과 차원에서 조를 짜주고 해당 기관과 연결해줘서 몸만 가면 되는 그런 봉사 활동이었다. 마침 나도 아주 착한 사람까진 못 되어도 이런 일에 보람차게 따라갈 정도는 되었고.


(약간의 측은지심과 약간의 뿌듯함이 모든 도덕의 원동력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칸트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만.)


시각 장애인, 그 중에서도 성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겨우’ 시각 장애 하나만 가진 사람은 더욱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다른 지체 장애나 혹은 발달 장애까지 동반된 시각 장애인 정도는 되어야 우선 순위가 생기고, 그마저도 대기가 아주 많다고. 이런 아이들을 위탁할만할 시설이 마땅찮아 매일 두 시간씩 왕복 운전하시면서도 감지덕지라고 말씀하시는 보호자도 있었다. 이런 일화를 소개하며 당장 장애인 관련 기관을 늘리고 예산을 확충해야한다는 주장을 하자는 건 아니다. 내가 정책과 예산 분배의 우선 순위를 재단할 역량까진 없고, 그냥 현실이 그랬었다는 것이다. 뭐, 이게 딱히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다.


치과대학생들의 봉사활동인만큼 몇 명의 아이들을 구강검진하고, 교수님 지도 하에 스케일링과 간단한 충치 치료 정도 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넉넉히 남아 말동무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간단한 의료 시술을 마치고서, 어린 학생들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며 건강에 도움될 만한 것들을 주지시켜줬는데, 다들 정신 지체가 조금씩 있던 환자들이었던지라 잘 전달되었을진 모르겠다.



그 중 허리가 유독 굽어있던 한 아이가 기억에 남는다.

 

여느 아이들처럼 필요한 시술을 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친구와의 시간이 다 되어 끝나갈 무렵에 또 어디 아픈 곳은 없냐고 물었는데, 허리가 자주 아프다고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렇게 구부정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추간판이 탈출 안 하고 배기나. 나 또한 허리 통증으로 몇 달 간 침상 안정 생활을 해 본 사람으로서 자세와 운동이 허리 건강에 매우 중요함을 알고 있고 주변인들에게도 상당히 많이 강조하는 편이었다.


그 친구에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허리가 굽은 친구에게 허리 좀 펴서 앉고 반듯이 걸어다녀야한다고, 혹시나 이해를 못할까봐 직접 자세도 잡아주고 손발을 써가며 열변을 토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아 얘기하고 약간의 다짐을 받고서야 만족했다는 듯이 혼자 뿌듯해 한 기억이 난다.


이른 아침 출발에 올려다보았던 파란 하늘에 붉은 빛이 드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마무리하고 귀가하자는 전달이 왔다. 마지막 환자였던 허리가 굽고 앞을

못 보는 어린 친구가 작별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가다말고 뒤로 돌더니 손을 휘저으며 더듬거리는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저는 똑바로 서서 다니면 머리를 부딪혀 다치게 돼요. 저번에도 아빠 차에 타다가 머리 다쳐서 병원갔어요. 아빠가 조심하라 했거든요."


두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굽힐 필요를 모르던 나는, 저 말 이후로 구부리는 법을 조금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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