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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step Jul 01. 2020

영어 얼마큼 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미국으로 갓 이민이나 유학을 온 사람이라면 미국에서 오래 동안 살아가고 있는 주변 지인들에게 한 번쯤은 꼭 물어봤거나 물어보고 싶어 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30년 가까이를 미국에서 간호사로 살아오고 있다 보니 나 역시 이런 질문들을 참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 대답이 막힌다. 그 질문이라면 나 역시 스스로에게 하고 있고 또한 어느 누군가에게 물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저 역시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요"라고 사실대로 대답이라도 하면 그들은

"에이이~~ 그런 거짓말 하지 마세요. 너무 겸손한 척하시면 극혐이 될 수도 있어요!" 하며 깔깔 웃곤 했다.

난 겸손한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건데 라며 대꾸를 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갑자기 극혐으로 낙인찍힐까 싶어

그냥 웃어넘기거나 남들이 말하는 이렇게 해 보면 잘할 수 있을 거란 통상적인 팁 (TIP)을 주곤 한다.


제2 외국어는 무조건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는 명백한 사실이라던가 아님 만 14세 전에 그 나라로 가서 생활하면서 배워야지만 모국어 하듯 할 수 있다는 여러 연구 결과는 내겐 해당 사항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영어라는 걸림돌에 맞서야 하는 나를 가끔 절망하게 한다. 그 연구결과들이란 건 마치 만 23세에 미국을 건너온 내가 죽어라 밤낮 공부해봤자 12살에 이민 온 옆집 꼬마의 영어 실력을 평생 따라갈 수 있는 확률은 아예 없음으로 넌 그냥 일찌감치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따위 절망적인 연구 결과는 이미 나이 들어 미국에 와서 되지도 않을  힘든 영어 공부를 굳이 해 봤자 뭐해하는 나의 최대의 변명거리이자 공부 안 해도 괜찮아하는 위로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연구 결과와 상관없는 난 상황과 만나는 그룹에 따라서 영어를 정말 못하기도, 꽤나 하기도, 굉장히 잘하기도 한다.


나는 영어를 정말 못한다. 태어나자마자 영어가 모국인인 사람들이나 어린 나이에 이민 와서 혹은 조금 늦게 왔지만 스스로 피눈물 나게 공부해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이들이 비하면 나는 정말 수준 이하이다.


나는 영어를 꽤나 한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대 도시 근처로 이민 와 20-30년 살아오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는 난 그들과 마찬가지로 영어도 꽤 하면서 한국어도 자유자재로 되는 이중 언어자로 살고 있어 그럭저럭 꽤나 하는 편에 속한다.


나는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 한국에서 놀러 온 가족이나 막 이민 온 지인들에게는 미국은 말이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고 살아가면서 영어 때문에  살면서 크게 불편한 거는 이제 없어 라고 말할 정도로 잘한다.


호기롭게 시골서 서울로 상경한 지 4년 반이 채 못되어 미국행 얘기가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갑자기 미국을 오게 된 나에게 영어란 결코 넘지 못할 커다란 장벽이었다. 미국 오기 전에는 남들이 뭐라던 간에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정말  열심히 살아왔노라 스스로 자부해 왔었다. 하지만 그 자존감과 자부심을 바닥까지 끌고 가 나를 속상하게 만든 건 바로 넘기 힘든 영어라는 언어의 높디높은 벽이었다. 얼떨결에 온 낯선 나라 미국.  나보다도 몇 년 혹은 몇십 년 전에 이민이나 유학  한국분들을 만날 때면 너무나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았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 하는 질문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한 거 같다. 많이 물어보면 볼수록 어느 날 갑자기 영어가 들리고 영어로 거리낌 없이 말문이 툭 트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병원에서 일할 때 혹시라도 의사가 전화로 오더 할까 봐서 환자 상태를 묻는 보호자가 전화할까 봐서 일부러 전화기를 피했었다. 대신  동료 간호사가 전화받아 주고 대답해 주는 대가로 그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자처해서 해야 했다. 환자 보호자들이 들락 거리는 오전 근무 시간에는 그들이 환자 상태를 물어보면 대답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들이 방문하지 않는 이브닝이나 밤 근무를 선택해야 했었다.  나쁜 맘먹은 간호사들이나 간호조무사들이 자신들의 일들을 나에게 미뤘는데 그 사실도 모르고  수개월 수 년동안 그들의 몫까지 더 힘들게  했었어도 제대로 한번 따져 보지도 못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영어도 못하는 동양인 간호사라며 간호사 바꿔 달라고 소리치는 환자들에게 '나도 미국 면허 가진 간호사라고요' 같이 소리치고 싶은데 오히려 창피해하며 돌아서기도 했었다.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해 보겠다고 큰 맘먹고 샀던 녹음기 달린 라디오가  집에 와서 포장지를 열어보니 진열대에 오래 동안 전시되었었던 된 흠집이 난 것이어서 바꿔 보겠다고 갔는데 버벅버벅 소리 지르다 결국은 그 헌 라디오를 다시 들고 와서 얼마나 억울해했었는지 모른다.


이젠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된다. 피할 필요도 없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전화로 하는 대화가 자연스럽다. 나를 선택하지 않으려는 환자가 있을까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 남의 일을 해 주며까지  그들의 도움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내 업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업무만 철저히 하면 된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반드시 따져서 내 권리를 찾을 수도 있다. 밤 근무던 낮 근무던 내가 일하고 싶은 시간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미팅을 주관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누가 질문을 할까 혹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을까 지레 가슴 조리고 겁먹지 않아도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젠 살아 남기 위해 가슴 졸이는 영어가 아니라 매일 삶에 배어 있는 편안한 영어를 하게 되었다.


제법 편안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게 영어는 여전히  좁은 보폭으로 평생 걸어가야 할 끝이 보이지 않는 험한 길과 같다. 그 걸어가는 길에 이정표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어떤 길을 가야 조금 더 빨리 다음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는지 추측이라도 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어쩌다 험한 길도 지나고  빙 둘러 돌아가야 하는 길도 지나고  예상치 못한 바위가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곳을 지나서라도 먼발치에서 눈에 보일 듯 말 듯 정상의 깃발이 아련하게나마 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그 정상에 도달했을 때 깃발을 빼내 흔들며 언어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됨을 한없이 자축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힘든 길을 피해 그저 별 탈 없이 평탄한 길만 걸어 가려하는 나는 여전히 영어를 정말 못하는 사람이라는 카테고리에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때가 많다. 그러다 누군가가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 오기라도 하면 난 그 질문에 선뜻 대답을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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