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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step Jun 02. 2020

잊지 못할 THANK YOU

내가 기억하는 환자들 1

1990년 7월, 갑작스레 오게 된 미국 뉴욕.  미국행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영어라는 걸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었지만,  미국행 얘기가 나온 지 한 달여 만에 난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뉴욕에서 최단기 간호학사 프로 그램을 위해 6개월간의 짧은 ELS 교육과 하루 24시간이 짧았던 1년의 간호학 학사 공부를 근근이 해 내며 미국 간호사 자격증도 겨우 겨우 따 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졸업과 동시에 통역을 붙여가며 한 병원 인터뷰에 바로 취업되었다. 외국인 간호사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하면서 까지 고용하려 했던 병원들 대 부분은 간호사들이 가기를 무척 꺼려할 정도로 열악하고 위험한 지역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제한된 선택만이 있었기에 그나마의 기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귀머거리 벙어리와 같았던 영어 실력으로 병원에서 일을 하기엔 너무나도 벅찼다. 병원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못 되어 몸무게가 10 킬로 그램이나 줄었던 것 만 보아도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미국 간호사 초기 시절. 직장을 가야 할 시간 2-3시간 전부터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틸지 생각하면 두려움으로 밥맛을 잃었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직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유일하게 앉아 있는 조그만 동양 여자를 쳐다보는 경계심과 호기심 어린 이방인들의 눈동자들을 마주 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렵지 않은 척, 슬프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꼬박꼬박 열심히 일하러 다녔던 이유는 아마도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속 깊이 남아 날 힘들게, 아프게, 또는 슬프게 하는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인계를 위해 각 팀별 간호사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에서 한 발짝 뒤로 하고 조용히 서 있었다. 한 7-8개월 지나니 그것도 짬밥이 생긴 건지 그들의 입 모양이나 내 눈치로도 절반 이상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일반 내과 병동에서 최소 4-5팀으로 나눠 일하는데, 유독 다루기 귀찮고 힘든 환자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다른 팀에 지정되는 불이익을 당했었지만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 군말도 않고 죽어라 8시간을 일하고 조용히 퇴근하는 간호사. 그게 나였다.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고,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싸울 힘과 입조차 열 수 없는 상황임을 그들도 잘 알았기에  늘 표적이었고 난 이를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계 중 어떤 환자 얘기를 하는데 모두들 주춤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라운딩을 돌 때 난 바로 알았다. 그 이유가 바로 Mr. K 때문임을. 진료 기록엔 그의 예상 몸무게 450-500파운드, 200 킬로그램이 넘었다.  체중계가 잴 수 없는 몸무게. 침대가 작아 살들이 침대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환자 방에 들어가는 직원들에게 그는 엄청난 욕을 해 대었고,  병실 문이 늘 닫혀 있는 데다, 병실 밖으로나 안으로 코를 찌르는 그의 냄새가 그를 돌보기를 꺼려하는 원인들이었던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을 빠금히 열고 인계를 하는 주임 간호사에게 다시 그 환자에 대해 물어보니,  며칠 전 입원한 환자인데 밤이건 낮이건 10분 단위로 벨을 눌러 직원들을 불러댄다는 것이었다. 환자가 초기에 설사가 심해 입원했었는데 한번 치울 때마다 두 세명이 달려들어 최소 1시간 이상 치우고 씻겨야 하는데, 그 환자에게 지정이 되면 다른 환자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모든 업무가 늦어지다 보니 아예 벨 소리를 작게 하고 무시하거나 무조건 기다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인계 끝에 주임 간호사가 다른 간호사들은 중증환자들을 맡아야 하니 오늘은 네가 Mr. K를 전적으로 맡으라고 했다. 그렇다고 환자 수를 줄여 준거도 아니면서 선심 쓰듯이 나머지 6명 환자는 가벼운 환자들이니 괜찮을 꺼라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일단 다른 환자들을 먼저 보고 빠르게 투약과 상처 치료들을 끝내고 Mr. K에게로 갔다. 물론 그 사이에도 10분마다 울리는 벨을 대답할 수 없었지만 담당 조무사에게 무조건 가서 물어보고 혹시나 간호사를 찾으면 바로 보고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거의 가지 않고 가서는 벨을 끄고 돌아 서곤 했다. 그 환자 차례에 난 마스크와 장갑을 낀 채로 바로 침대 곁으로 가서는 어눌한 영어로 담당 간호사 임을 소개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다. 처음부터 소리를 지르며 나가라고 했다. 위협적이었지만 조용히 물러났다. 그리고선 다시 시작된 10분 벨 전쟁.  간호 병동 근처라 달리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는 시계를 옆에 두고 누르듯 10분마다 벨을 눌러 댔다.


그 벨에 반응하며 10분마다 달려가는 조그만 간호사. 갈 때마다, "May I help you?" 어떤 때는 도움이 필요한 게 맞았지만,  대부분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거였다. 점심시간이 다가 오려하는데 또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용변을 기저귀에 했으니 갈아 달라고 했다. 담당 조무사를 불러서 같이 케어를 해야 하는데 조무사가 발 빠르게 자기는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케어는 시작을 못 하겠다고 거절하고 다른 환자에게로 갔다. 이에 조무사의 행동을 보고를 하자 주임 간호사도 수 간호사도 그냥 조무사가 오기까지 1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면서 무척 바쁘다며 사라졌다. 다른 팀들 간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들도 유난히 중증 환자들이 많고 바쁘다고 둘러 대었다.


축 처진 어깨로 환자에게 들어가서 천천히 말을 했다. 모두가 너무 바빠서 나 혼자 당신을 케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난 당신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니 도와 달라고 했다. 갑자기 휘둥그레진 그의 눈을 보고선 희망을 가졌다. 너처럼 조그만 여자가 날 혼자서 케어하겠다고? 장난이야 하면서도 날 시험해 보고 싶은 듯이 쳐다보던 그 눈을 잊을 수 없다.


대야에 물을 받아오고, 어른 기저귀, 가운, 침대 시트 세트를 다 주변에 놓고 가운을 펼쳤다. 기저귀만 갈기엔 엄청난 소 배변 때문에 등위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젖어 있었고 피부들도 빨갛게 변해 있었다.

물 대야를 한 개 더 준비하고, 오염물 가득한 기저귀를 빼기 위한 사투가 벌어졌다. 환자에게 도움을 달라고 한번 더 크게 요청했다. 왼쪽 다리 이렇게 올려 주세요. 이번엔 오른쪽요. 몸을 반대쪽으로 틀어 보실래요? 조그만 더요 등을 외치며 내 온몸으로 그를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고 밀며 케어를 시작했다. 

그 목소리 크고 덩치 큰 환자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나의 말을 들으며 도와 주려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신 목욕이 마무리되기까지 1시간 30분 이상이 걸렸다. 그에게 로션을 발라주고 나서 날 도와주어서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우리 둘이서 팀워크가 좋아서 너무나 잘 끝냈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 돌아 서는 순간, 그가 한마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Thank you!"


그 이후 우리 병동에서는 그의 벨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병동 간호사들과 조무사들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날 이후 난 몇 날 며칠을 몸살로 앓았지만,  그 환자가 호전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난 충분히 뿌듯했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진 미국 간호사로 나아가기 위해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2-3 명에게도 벅찼던 그 환자 케어를 조그맣고 마른 동양인 간호사가 혼자서 했다는 사실은 병동을 뒤집어 놓을 만했다. 편견을 가지고 과체중 환자를 힘들다고 불평했고, 그를 귀찮고 힘든 마네킹 마냥 취급했던 그들에게 환자가 많이 도와주던데 했던 나의 그 한 마디 말이 그들의 눈과 귀를 뜨게 하기에 충분했었던 거 같다. 

나에게 도움을 주어서 고마웠다고, 우리의 팀워크가 최고였다는 말을 들은 Mr. K는 그 이후로부터는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다른 간호사나 조무사들도 도와주면서 회복이 빨리 호전되어 퇴원을 했다.


나는 안다.  1시간 30분 동안 자기 때문에 전쟁 같은 목욕을 마치고 나서 오히려 자기에게 감사하다고 웃으며 나가는 작고 왜소한 한 간호사의 얼굴과 가운에 비처럼 흘러내리던 땀방울들을 그가 어떤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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