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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ystep Jun 28. 2020

까만 새들과 함께 날아 간 그녀

                    첫 사후 케어의 충격

Y 이니셜을 가진 그녀. 40대 중반의 깡마른 흑인 여자 환자. 어제처럼 오늘도 병실의 긴 복도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다른 환자들과 부딪힐까 염려가 되어 함께 잠시 걸어가며 조심하보았지만  듣는 둥 마는 둥 그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며 같은 길 같은 복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가끔 멈춰 서서 뭔가를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또 황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그녀의 항암 치료 시작은 그른 거 같다. 탈수와 영양 부실이 너무 심해 영양수액을 맞으며 항암치료를 위한 체력을 키우려 하는데 도통 아무런 변화가 없다.  입원 후 뭘 먹는 걸 본 적도 없다. 무엇을 씹고 삼키고 하기가 힘에 겨울만큼  약해져서 그럴 거다. 식사라고 해 봤자 건더기도 없는 맑은 수프에다  오렌지 주스와 우유 한 팩이 전부인데 그것조차 어느 것 하나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다시 쟁반에 들려 나온다. 영양수액이 충분히 칼로리를 채운 다지만 그래도 보기에 너무 안타깝다.


그녀는 위암 4기다.  몇 주전 암 제거 수술을 하려고 개복을 했지만 암이 중요한 장기들로 심하게 전이된 걸 본 외과 의사는 개복 10여분 만에 재 봉합을 했다고 했다. 4기 진단 후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사람이라고 하기엔 그녀의 몰골이 너무나 앙상해 해골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가 헐거운 환자복을 입고  복도를 왔다 갔다 할 때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녀를 위해 가던 길을 그냥 열어 주곤 한다. 어느 누구와도 말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많은 복도를 서성이기만을 반복하는 그녀를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렇게 모두 바라보기만 한다.


담당 간호사이기에 그녀의 기본 신상을 파악하다 보니 종교란에 종교 없음이라고 적힌 그녀가 맘에 걸린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위한 기도가 그녀를 만난 이후 수시로 흘러나온다. 가여운 마음에 어눌한 영어로 나마 몇 마디라도 하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강한 충동 때문에 링거를 바꾸는 짧은 시간을 내어  그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 본다.

"Y! 난 당신을 만난 순간부터 내가 믿는 하나님께 당신을 위해 기도해오고 있었어요.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어요. 언제 가는 우리 모두가 그 세계로 가고 거기서 결국은 다 만나게 되죠. 나의  믿음을 오늘 당신께 꼭 전하고 나누고 싶어요."그녀는 번복되는 나의 말에 민망하리 만큼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다. 아니 반응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사로 잡혀 있는 듯 전혀 듣지 않고 있다. 그런 그녀가 그 깊고 퀭한 눈으로 오른쪽 창문을 째려보듯 응시하고 있다가 갑자기 심하게 온 몸을 부덜부덜 떨기 시작한다.  누가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간 그녀는 한번 깊은숨을 길게 내뿜더니 다시 연속적으로 숨을 빠르고 얕게 내뱉으며 다급히 소리치기 시작한다.  "저리 가! 저리 가! 제발 사라져 버려! 빨리 창문을 닫아! 창문을 닫으라고! 저거 안 보여? 저 무섭게 생긴 까만 새들무리가 안 보여?  저 무서운 눈빛들 봐! 저 큰 날갯짓으로 날 데리고 가려고 창문을 깨려고 한다고!"  깡마른 두 손을 허공에 휘젓던 그녀가 나의 주머니를 거의 찢어낼 듯 거세게 잡더니 옷을 꽉 잡은 채로 나를 심하게 흔들어 댄다. 그냥 '후' 불면 날라 가 버릴 것처럼 말랐던 그녀의 어마 무시한 

순간 괴력에 나는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과 모습에 소름이 쫙 끼쳤지만 나는 쿵쾅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써 태연한 척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그녀를 진정시키며 옆에 서 있는데 내 옷을 꽉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내려진다. 그녀의 지쳐 보이는 등을 난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 쓰다듬어 주자 그녀는 푹 쓰러지며 바로 깊은 잠에 빠진다. 링거액이 달린 폴대를 붙잡고 밤이고 낮이고 잠을 설쳐가며 복도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저러나 싶어 마음이 너무나 아파온다.  밤이면 모두가 잠든 어둑한 복도를 서걱서걱 걸어 다니는 통에 밤 근무 간호사들이 깜짝깜짝 놀랬다던 말들이 떠 오른다.




그 다음날 인계 중에 Y가 내가 출근하기 한 시간 전쯤에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말기 암 때문에 그녀는 심폐소생술도 기관삽입으로의 생명 연장도 이미 포기한 상황이라 그녀를 다시 회생시키려는 의료 조치나 노력은 전혀 필요치 않았었다.  인계하던 간호사는 자신의 퇴근시간이 다가오기 단 한 시간 전에 일어난 일어서 다른 마무리해야 할 환자 챠팅들과 인계 준비로 너무 바빠 그 죽은 환자의 사후 뒷 처리를 전혀 못했다고 양해를 구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에게는 난생처음 닥친 사후 케어인지라 주임 간호사에게 이 일은 경험 있는 간호사에게 맡겨 달라고 조르듯 부탁해 보았지만, 네 담당 환자이고 다 처음이란 걸 겪어야 배우는 거라며 사후 케어 경험이 있는 한 간호사를 불러 설명해 주라 일렀다.  노련한 그 간호사는  "그거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아" 라며 나에게 설명을 두 어번 해 주었고 난 그녀의 말을 따라 학습하듯이 머릿속으로 수없이 순간 예행연습을 했다.


(지금도 마찬 가지 겠지만, 그 당시 일했었던 뉴욕의 병원에서는 환자가 죽으면 의사가 그 자리에서 죽음을 선포했다. 그 이후에는  간호사들이 시체 몸에 부착된 의료 기기들이나 링거 주사기들을 제거했다. 그리고선 시체를 깨끗이 씻은 뒤 임시 비닐포와 끈으로 머리와 몸을 꽁꽁 싸매는 것까지 해야 했다 (종교에 따라 조금씩 묶는 법이 다르기도 했다).  물론 간호조무사가 거의 함께 했지만 결국은 사후 케어의 모든 것은 간호사의 전적 책임이었다. 이렇듯 사후 케어가 끝나면 가족들은 자신들이 미리 준비한 장의사를 부르고 호출된 그가 부리나케 병원으로 와서 시체를 운반해 나갈 때 간호사는 양도 확인 사인을 해 주면 되었다. 가족이 없거나 미리 죽음에 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절차를 기다리며 시체는 시간씩 하얀 시트가 덮인 체로 병실에 그대로 놓여 있다가 병원 지하에 있는 임시 영안실로  옮겨지곤 했었다.)


그리 복잡한 절차가 아니었음에도 처음이라는 긴장감에 난 어지럽고 아찔함을 느꼈다. 그렇다고 마냥 순서를 읊조리며 서 있기만 하다간 밀리고 밀릴 업무들 생각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싶었을 때 한 간호조무사와 함께 Y의 방문을 용감히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머리 위로 하얀 시트가 덮여 있는 것이 보였다. 주춤주춤 거리다 난 떨리는 손으로 그 시트를 열어젖혔고 그 순간 자신 있게 함께 병실을 들어왔던 간호조무사가 소스라 치게 놀라 악 하는 짧고 높은 비명을 지르고 밖으로 뛰어 나가 버렸다.  난 그녀에게 도대체 뭐 하는 거냐고 빨리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온 입이 얼어붙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체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려 애쓰는데도 고개 조차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간호조무사처럼 당장이라도 따라 뛰쳐나가고 싶은데 나의 온몸과 내 발목은 누군가가 꽉 잡고 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 꽁꽁 얼어붙어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그녀의 왜소한 몸은 괴기 영화에서나 볼 법한 무서운 형체로 변한 듯이 이리저리 뒤틀려 있었고 그녀의 퀭하던 깊은 두 눈도 무섭게 부릅떠져 있었다.  어제 그렇게 두려움에 떨며 무섭다고 내 유니폼 주머니를 꽉 잡고 필사적으로 저리 가 저리 가 하던 그녀의 고개는 오른쪽 창문을 향해 꺾여 있었고 깡마른 그녀의 두 팔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뭔가를 강하게 밀쳐 내려했던 것처럼 가슴에 팔꿈치는 붙인 채 허공을 향해 뻗쳐 있었다.


이건 데자뷔인 게 틀림없었다. 나는 이미 Y의 죽은 모습을 날 살았을 때 똑같이 보았지 않은가.    잠시 나는 그녀가 그냥 깊은 잠에 빠진 거라고 순간적으로 착각이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녀를 마주 한 난 눈앞의 충격적인 모습에 소리 없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얼굴에는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놀란 가슴은 어쩔 줄 모르고 얼어붙은 몸과 더불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힘겨운 세상살이 마지막 순간 조차 극도의 두려움과 싸우다 외롭게 홀로 이 생을 마감했을 그녀를 떠 올리자 안타까움과 연민이 몰려왔다.


나 자신도 모르게 주 기도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두려움이 엄습하면 습관처럼 나오던 버릇이었다. 점점 내 목소리가 내 귀에 크게 들릴 만큼 몇 번이고 주기도문을 쏟아 낸 후에야 더욱 정신을 차리고 나서 그녀에게 들으란 듯이 혼잣말을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 순간의 두려움을 떨쳐 버리려고 나에게 최면을  걸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꾸 떠오르는 괜실한 미안함을 떨꿔내어 보려고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떠나 간 이 세상. 너무 곤하고 지치고 아파서 훌쩍 그렇게 떠나 버린 이 세상.  암의 고통으로 진통제 조차 듣지 않았던  당신에겐 아무 미련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이 세상. 그런 당신이  왜 그토록 떠나기를 무서워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돼요. 저 굳게 닫힌 병실 창문 밖으로 당신 눈에만 보였을 수많은 까만 새떼들. 그 무리가 검은 날개를 세차게 치며 창문을 깨고 날아 들어와서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가려 했었겠죠. 그 두려움 때문에 작은 병실 침대에서 조차 그 깡마른 한번 제대로 뻗어 보지도 못하고  밤낮 복도만을 서성이다가 허무하게 떠난  Y. 이렇듯 당신은 온몸으로 나에게 당신의 두려움을 전해 주고 가 버렸네요.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당신의 두려움을 들어주고 당신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눠 주었었다면 극심한 공포 속에 질린 채로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어도 되었을까요?


결코 돌아오질 않을 그녀의 대답을 하나님께 대신 구해 보며 난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부릅뜬 두 눈을 천천히 감겨 주었다.  비틀린 몸도 최대한 바로 눕히고 이미 굳어져 가고 있던 팔들도 정말 힘겹게 가슴 켠에 함께 모아주고 나서야 그녀의 온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하얗게 머릿속이 비워져 가고 있는 듯 정신이 없었지만 수없이 되뇌며 연습한 그대로 Y를 정성스레 씻긴 후 미리 준비해 간 하얀 비닐 포로 그녀의 머리와 앙상한 몸을 꼼꼼하게 싸매고 하얀 시트를 다시 덮어 주었다


그렇게 병실을 나와 병동으로 걸어오는 길이 수 만리처럼 느껴졌다. 막바로 다른 간호 업무를 할 수 없었을 만큼 진이 다 빠져 쉼을 가지려 간호사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놀라서 병실을 박차고 달려 나갔던 그 간호조무사가 두 눈이 충혈되고 퉁퉁 부은 체로 의자에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날 보자마자 또다시 크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첫 사후 케어를 혹독하게 혼자 치르고 돌아온 난 그녀의 퉁퉁 부은 눈을 바라보며 그녀를 위로할 힘도 없었고 그럴 처지도 못 되었다. 그녀의 울음보다 더 큰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눈물 한 방울 조차 두려움으로 말려 버렸기에 그렇게 난 그녀를 외면한 체 아주 오랫동안 아니  Y의 몸이 영안실로 내려 보내 졌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그냥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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