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닙니다
길고 긴 하루의 시작은 잔뜩 찌푸린 하늘과 함께였다. 시커멓게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며 하루가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은 오래전부터 마음먹었던 부모님 전화기를 바꿔드리기로 한 날이었다. 사 드린 지 오래되어 언제 제 기능을 상실할지 모를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몇 번이고 바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멀쩡한 물건을 왜 버리냐는 부모님 뜻을 거스르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내와 뜻을 모아 부모님 몰래 일을 저지르기로 한 게 그날이었다.
내려오시기 일주일 전부터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시장조사를 하고 시간에 따른 동선을 짜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내가 부모님을 모시러 역에 간 틈을 이용해 아내가 휴대폰 매장에 가서 미리 서류를 작성해 두고 도착하자마자 순서대로 일을 끝내려던 계획은 할아버지 할머니 마중을 나갈 자신이 없다는 딸아이의 비협조로 일찌감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주차를 해두고 내가 모시러 가면 그만이었지만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를 거리가 꽤 되는 공영주차장까지 걷게 할 수는 없어서 최대한 도착시간에 맞춰 택시정류장 인근에 정차한 후 딸아이가 역 대합실로 가서 모셔오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그걸 거부한 것이었다. 결국 아내가 휴대폰 매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나와 동행해서 어르신들을 모셔오기로 했다. 거기서부터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공영 주차장 진입로 공사로 인해 역 인근에는 마중 나온 수십대의 차량들이 정차하면서 한순간 교통이 마비되었고 30분이나 지체된 끝에 겨우 빠져나와 도착한 휴대폰 매장은 예상외의 많은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야 상담을 시작했지만 일주일 전 예약상담할 때 미리 말해두었던 기기의 재고 확보가 되지 않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그마저도 매장에는 재고가 없어 퀵으로 받아와야 한다는 매장 직원의 말에 또 한 번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가까스로 개통을 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데이터 이동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필요한 앱을 다운로드하기 위해 아이디를 입력해야 하는데 너무 오래된 폰이라 그런지 키보드 입력에서 자꾸만 오류가 생겼고 여차저차해서 앱을 다운로드하였지만 그다음에는 와이파이 수신이 되지 않아 한참 동안 씨름을 해야만 했다. 시간은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2시 가까이 되었기에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단은 내가 PC를 이용해서 하기로 하고 정해둔 식당으로 향했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주변 카페나 공원에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시점이었지만 현실은 주말을 맞아 나들이객으로 마비가 된 도로 위에서 정체가 풀리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였다. 좌불안석의 심정으로 안절부절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도착했지만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식탁 위 구석 자리에 노트북을 펴놓고 두 분의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던 데이터를 옮기느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보니 앞에 계신 부모님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엔 이미 예매해 둔 열차 시간이 다 되어 더 이상 어딘가로 이동이 불가능했기에 남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전화기 쓰는 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드렸다. 기존에 쓰던 전화기가 홈버튼이 있던 것이었기에 당분간은 적응이 안 되실 것 같아 필요 없는 앱을 다 삭제하고 전화, 카메라, 음악에 관한 것만 초기 화면에 배치해 드렸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어머니께서 쓸데없이 오래 사는 바람에 자식, 며느리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며 탄식이 섞인 말씀을 하시는데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더라면 그런 말씀까지 꺼내지는 않으셨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자니 모든 게 내 탓인 것처럼 느껴졌다. 거의 정신을 놓다시피 한 아들이 혼자서 동분서주하며 일처리 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부모입장에서 무심결에 하신 말씀이겠지만 그날따라 유독 그 말씀이 아프게 다가왔다.
친하게 지내시던 친구분들 대부분이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나셨거나 먼 곳으로 이사를 가셔서 주변에 가깝게 지내는 이웃 하나 없는 두 분이 열차시간에 맞춰 떠나시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앞으로 이렇게 찾아오실 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그 말씀이 예전에는 그저 예사말로 들렸는데 언제 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때가 되고 보니 이제는 그게 현실이 될까 두렵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께서 가져다 주신 참기름 병을 꺼내려고 무심코 열어 본 쇼핑백에는 100만 원이라는 현금이 들어 있었다. 집에 잘 도착하셨냐고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드렸더니 그 돈으로 곧 다가올 손녀와 며느리 생일 선물을 사 주라고 말씀하셨다. 선물 사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냐는 말씀을 또다시 하셨다. 더 이상 듣고 있기 힘들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그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 아내와 의논했다. 매사 단순하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버리는 아내답게 잘 보관해 뒀다가 다음에 뵐 때 그대로 갖다 드리면 되지 그게 무슨 고민이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지만 고스란히 돌려드릴 그때까지 들고 있어야 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버린 셈이 되었다. 생각이 복잡해져서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늦은 밤 출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며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포근해질 4~5월쯤 부모님을 모시고 두 분께서 살던 고향 땅을 한 번 밟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없던 길이 생기고 기존에 있던 마을이 통째로 개발이 되어 사시던 곳이 어딘지 찾기가 힘들어졌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가며 찾다 보면 충분히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번씩 지나가듯 고향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마다 꼭 모셔다 드리고 싶었는데 더 늦기 전에 그 소원을 이뤄드리고 싶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맘이 조금이나마 편할 것만 같다. 하나의 미션이 끝나자마자 내게는 수행해야 할 미션이 또 하나 더 생겼다. 다음 미션은 부디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 가득 담아 간절히 빌어 본다.
아버지, 어머니! 6주 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