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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웬 May 14. 2023

문득 사는 게 힘들다 느껴질 때

그래도 살아야 하는 겁니까?

시간 날 때면 유튜브에서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매일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여러 다양한 사례를 보며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하고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게 일종의 루틴처럼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유튜브의 알고리즘 탓인지 언뜻 눈에 들어오는 영상이 하나 있었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사회 초년생의 첫 차량 추천>이었던 것 같다. 호기심에 클릭을 했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옵션 포함해서 3천만 원 내외의 신차를 거리낌 없이 추천하는 영상을 보고 저게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는 일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관련 영상을 줄줄이 이어지는 것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일부의 사례일 수도 있겠지만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영상들을 보니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거의 풀옵션에 가까운 준중형 세단이나 SUV 차량을 첫 차로 계약하고 출고했다는 영상과 함께 적게는 수십 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튜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그런 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적금을 깨면서까지 가진 돈 탈탈 털어 10년이 넘은 300만 원짜리 중고차를 첫 차로 구매하고 이후 딸랑 에어컨만 옵션으로 넣은 1,500만 원짜리 소형 승용차를 3년 할부로 사서 12년째 타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 아내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시대가 그렇게 바뀐 걸 어떡하냐며 나중에 우리 딸은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확신을 할 수 있겠냐고 내게 되물었다. 그 물음에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다. 뭐든 친구들이 갖고 있는 최고 사양의 신제품만 선호하는 아이의 성격상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변변한 재산이 없는 지금의 내 현실과 내가 살아온 길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가진 것 한 푼 없이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시작했던 장사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지난 세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그렇게 살면서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 줄 알고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목돈을 통장에 넣어놓고 사는 줄 안다. 내 주변 사람들만 해도 그렇게 보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대학 후배 하나는 학원을 차려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내게 2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 있어도 선뜻 내줄 리 없었겠지만 그만큼의 자금은 없다고 거절했다가 그 무렵부터 나는 고향 땅에서 천하의 몹쓸 놈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그 오랜 세월 동안 돈 벌어서 뭐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장사가 안되면 문을 닫고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는 게 낫지 않냐고 나름 걱정스러운 말투로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거지처럼 살아도 인간이 할 도리는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가진 재주가 이것밖에 없어서 다른 것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거라고.


최근 들어 머릿속이 복잡한 일들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얼어붙은 경제 상황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닫아 고객 수가 급감을 했고 덩달아 매출도 떨어졌다. 해가 바뀌고 인건비 상승까지 이어지면서 삶의 여유가 없어졌다. 그 와중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사춘기를 넘기며 부쩍 말을 듣지 않는 딸아이를 관리하는 것도, 멀리 떨어져 살고 계신 연로한 부모님을 살피는 것도 오롯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이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하겠지만 솔직히 내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짐을 나눠 들자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하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에게 알리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내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살고 있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봤다. 부모형제, 친구를 막론해 그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고, 뭔가 하나라도 받은 게 있다면 그 이상으로 갚으려 노력했고 지금까지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노라 자부했는데 그게 잘못인지 모르겠다. 세상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떳떳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하게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놓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이대로 더 살아 뭐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든다.


내 욕심 차리지 않고 항상 주변을 살피며 뭔가 하나라도 더 해줄 것이 없나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바보인 것일까? 이 나이 먹도록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내가 멍청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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